소크라테스 회상 14-2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크게 애지학(愛智學, 철학)에 부지런히 힘써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학문이야말로 고아유덕(高雅有德)에 달하기를 원하는 인간에게 필수(必須)의 사물을 가장 잘 가르쳐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공부한 것에 관하여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질문당하여 조금도 대답을 못하니 나 자신이 가련해지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 길 외에는 달리 자신을 개량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말해보게나, 에우튀데모스. 자네는 지금까지 델포이7)에 가 본 적이 있는가?”
“네, 두 번 가봤습니다.”
“그러면 자네는 신전(神殿)의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8)는 말을 보았겠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이 문구에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마음에 새겨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아닙니다,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마저 모른다면 다른 일은 알 리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네는 자신의 이름만을 알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예를 들어, 말을 사는 사람들이 순한 말인지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말인지, 힘이 센지 그렇지 않으면 약한지, 발이 빠른지 그렇지 않으면 느린지, 그 외에 말의 용도를 보고 성질이 좋고 나쁜지를 모두 조사해 볼 때까지는 자기가 말에 대해 알려고 하는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 가를 음미(吟味)하고 자신의 역량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자신을 알고 있는 자라고 생각하는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역량을 모르는 인간은 자신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리고 또, 자신을 안다는 것은 다대한 이익을 낳게 하고,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다대한 해독을 낳게 한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일 것이네. 왜냐하면 자신을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판별할 줄 알 것이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일을 실행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입수하여 유복하게 지내며, 자신이 모르는 일은 이를 피해서 과실을 범하지 않고 영락(零落)의 몸이 되는 것을 면하는 것일세. 또 이것에 의해서 남을 감별하는 힘도 생기고, 따라서 남과의 교제에서 이익이 되는 것을 손에 넣고, 해가 되는 것을 피할 수도 있는 것일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모르고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사람들은 남에 관한 것이나 세상일에 관해서도, 또 마찬가지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도, 자신이 하는 일도, 자신이 교제하고 있는 인간에 대해서 끝까지 알지 못하고, 그 모든 것에 과오를 범하여 선(善)에 실패하고 악에 빠져드는 것일세. 그런데 자신이 하여야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여, 그 성공에 의해서 유명해지고 존경을 받는 것일세.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들은 서로 기꺼이 교제하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입장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로 조언을 구하는 것일세.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을 지도자로서 받들고, 그들에게 의지하여 운명의 호전(好轉)을 꾀하며,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 모든 사람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그들을 경애하는 것일세. 그런데 자신의 할 일을 모르는 사람들은 선택의 방법도 틀리고, 무엇을 기획해도 실패하며, 그러한 일들로 손실을 보거나 징계를 받는 것 외에도 그 때문에 평판이 떨어지고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며 경멸을 당하면서 불명예스러운 일생을 보내는 것일세. 또 국가도 스스로의 힘을 모르고 자기보다 강대한 나라와 싸우는 나라는 모두 멸망하거나 자유를 상실하는 것을 자네는 익히 보아 알고 있을 걸세.”
그러자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다.
“과연, 소크라테스.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것은 안심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음미를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은지, 바라건대 이것을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네는 선이란 어떠한 것인지, 악이란 어떠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것도 모른다면 저는 노예보다도 하찮은 인간이겠지요?”
“좋아, 그러면 나에게도 그것을 설명해 보게나.”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건강이 선이고, 병은 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이들 쌍방의 원인이 되는 것, 즉 음식물, 일상 습관 등 모두 건강으로 인도하는 것은 선이고 병으로 인도하는 것은 악입니다.”
“그러면 건강이나 병도 무엇인가 좋은 일의 원인이 되면 선이고, 나쁜 일의 원인이 되면 악이 아닐까?”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 건강이 악의 원인이 되고, 병이 선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말이야, 무운(武運)이 따르지 않은 병역(兵役)이라든가 파멸을 낳는 항해라든가 그 밖의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강건한 신체로 종군한 자는 생명을 잃고, 병약해서 뒤에 남은 자는 생명을 보존하게 되는 때일세.”
“그렇군요, 그러나 선한 경우에도 역시 체력이 강건한 사람은 종군하고, 약한 사람은 뒤에 남는 것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어떤 때는 이익이 되고, 어떤 때는 손해가 되는 것이 선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물론 그것은 그 논법으로 한다면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智)는 틀림없이 선입니다. 왜냐하면 현명한 인간이 무지한 인간보다 훌륭하게 행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일까? 자네는 다이달로스9)가 단지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미노스에게 잡혀 강제로 노예가 되어 조국도 자유도 모두 잃고, 아들을 데리고 도망을 기도하다가 아들을 잃고 자신도 다시 잡혀서 만이(蠻夷)의 나라로 끌려가서 다시 노예가 된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는가?”
“들었지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파르메데스10)의 이야기를 못 들었는가? 이 사나이는 지혜로웠기 때문에 질투의 대상이 되어 오디세우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누구나가 이야기한다네.”.”
“그 이야기도 흔히들 하지요.”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혜가 있기 때문에 유괴당하여 대왕(大王)11)의 궁정에 보내져 그곳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행복은 의심할 바 없는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그것이 대단히 의심스러운 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면 그럴 수 있겠지, 에우튀데모스.”
“하지만 행복의 어느 곳이 의심스러운 것입니까?”
“아무 곳도 의심스럽지는 않아. 만약 우리들이 미(美)라든가, 힘이라든가, 부(富)라든가, 명예라든가, 여러 가지 이러한 것을 행복 속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 말일세.”
“그러나 그것은 포함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이 없어서는 아무도 행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포함시키도록 하세. 그러나 그러한 것에는 많은 고통이 수반될 걸세.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미모에 매혹되어 타락하고, 많은 사람들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여 자기보다 강한 것에 맞서다 쓰라림을 맛보며, 많은 사람들이 재산이 있는 탓으로 응석받이로 자라나 남의 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많은 사람들이 명성과 정치적 세력이 있는 탓으로 대단한 재난을 만나는 것일세.”
“아아, 그렇군요. 행복에 대한 상찬(賞讚)도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고백합니다만 무엇을 신께 빌면 좋은지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자네는 아마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네. 그러나 자네는 지금 평민(平民)에 의해 통치되고 있는 국가의 원수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니까, 평민정체(平民政體)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을 테지?”
“그것에 대하여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평민을 모르고 어떻게 평민정체를 알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면 평민이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평민이란 무어라고 생각하나?”
“저는 국민 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이란 무언지 알고 있는가?”
“물론입니다.”
“그러면 부자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을 가난한 사람이라 부르고 어떠한 사람을 부자라 부르는가?”
“필요한 것에도 돈이 모자라서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난한 사람, 필요 이상으로 있는 사람들을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들은 알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극히 조금밖에 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할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저축까지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것을.”
“정말 그렇습니다. 상기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실 민왕(民王)이라고 하지만 통치력이 없어서 마치 빈민과 같이 범죄를 범하는 자가 많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자네 말대로 한다면 우리는 민왕도 평민 속에 포함하고, 극히 적은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도 가계(家計)를 훌륭히 처리해 나간다면 부자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여기에 이르러 에우튀데모스는 말했다.
“이것도 또 동의(同意)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우둔함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러다가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대단히 의기소침(意氣銷沈)하여 통절히 자신의 우둔함을 느끼게 되었고, 참으로 자기 자신은 일개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돌아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 의해 이런 꼴을 당한 사람들은 대개 두 번 다시 그에게 접근하려 들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무리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가 만약 자기 곁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도저히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후 에우튀데모스는 불가피한 일이 있을 때 이외에는 결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게다가 그의 일상생활을 자신도 얼마쯤 모방하였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이렇게 된 것을 알고부터는 그를 골탕 먹이지 않았고, 몰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는 일이나 일상생활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극히 간명하게, 또는 극히 알기 쉽게 설명해 들려주었다.
7) 포키스(보이오티아의 서쪽에 있는 나라)의 서쪽에 있는 작은 도시.
아폴론의 신탁소가 있다.
8) 델포이 신전에 새겨져 있던 격언은 상당히 많았던 것 같으나, 그중 특히 유명한 것이 이 말이다.
9) 다이달로스는 전설적인 크레타의 명공(名工). 이름은 그리스어로 솜씨 좋은 공장(工匠)을 의미한다. 아테네인으로 에렉테우스의 손자인 메티온의 아들 에우팔라모스와 알킵페의 아들. 비견할 자 없는 명 건축가로 신상(神像)의 발명자이다. 자매인 페르딕스의 아들 탈로스를 제자로 삼았으나, 그가 톱과 녹로(轆轤)를 발명해 냈기 때문에 자기를 능가할까 봐 두려워하여 아크로폴리스에서 밀어 떨어뜨렸다. 다이달로스는 아레이오스 파고스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크레타 왕 미노스에게로 도망갔다. 소를 사랑한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이를 위해 목제 암소를 만들었는데, 그녀가 괴물 미노타우로스을 낳자 이것을 넣어두기 위한 미궁(迷宮) 라뷔린트를 지었다. 테세우스를 사랑한 아리아드네를 위해 미궁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실패를 입구에 달아 놓고 실을 따라 귀로를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미노스는 화가 나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둬버렸는데 그는 자기와 아들의 날개를 만들어 달고 탈출해서 시칠리아 왕 코카로스에게 갔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너무 높이 날아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버려 바다에 추락해 죽었다.
그를 추격해 온 미노스는 코카로스의 딸들에게 살해당했다. 다이달로스는 또 톱, 도끼, 아교, 배의 마스트 등의 발명자로 되어있으며, 그의 유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단히 오래된 시대의 유물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10) 보통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VIII 34~60)에 있는 이야기이다.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하기를 꺼려 미친 척하고 있는 것을 나우프리오스의 아들 파르메데스가 간파하고 강제로 토진(土陳)시켰다. 이 폭로에 원한을 품고 오뒷세우스는 파르메데스가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와 내통했다고 발표하고, 미리 몰래 그의 침상에 감추어 놓은 금화를 끄집어내어 이렇게 뇌물을 받아먹었다고 외치고는 그를 죽였다고 한다. 크세노폰이 생각하고 있는 전설은 이런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파르메데스에 대해서는 크세노폰의 <<변명>> 26절에도 언급되어 있다. 사실 파르메데스의 죽음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되었고 죽인 사람도 죽인 이유도 한결같지 않다. 살해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11) 페르시아 왕.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덕이 있는 사람의 곁에서 그의 언행을 지켜보고 그를 모방하는 것이 최선의 배움이 되겠다.
다음으로는 사려(思慮)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은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하여 자신을 길들이는 것이다.
책을 읽겠다면 良書를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