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스테네스
안티스테네스
(1) 안티스테네스는 안티스테네스의 아들로 아테네 태생.
그러나 그는 순수한 아테네인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그것으로 그를 모멸한 사람에 대해서 ‘신들의 모친도 부리기아인이다’라고 그는 응수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모친은 트라키아인으로 생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가 타나그라의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을 때 소크라테스에게 아래와 같은 말을 하게 한 것이다.
만일 그의 양친이 모두 아테네인이었다고 한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뛰어난 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또 아테네인들이 대지에서 태어난 토착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을 경멸하면서, 그렇다고 그들이 달팽이나 메뚜기보다도 고귀한 태생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최초에 변론가인 고르기아스의 제자였다. 그가 대화편 가운데, 그리고 특히 <진리>와 <철학의 권유> 가운데 변론가식의 문체를 도입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2) 그러나 그 뒤,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가담하고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자신과 함께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도록 권했을 정도로 그는 소크라테스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다. 또 그는 페이라이에우스에 살고 있으면서 매일 40스타디온(약 7.4킬로미터)의 길을(아테네까지) 가서 소크라테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로부터 ‘가난에 견디는 것을 배우거나 또 ’정념에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을 보고 배우거나 해서 그는 ’키니코스적인 삶의 방식‘의 창시자가 된 것이다.
(4) 또 어느 때에는 오르페우스교의 비의(秘儀)를 치르는데 제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이 의식을 치른 자는 저 세상에서 많은 혜택을 얻을 것이라고.
그러자 그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죽으려 하지 않는 거요?’
조금의 제자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은 지팡이로 그들을 쫓아내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왜 그처럼 엄격하게 제자들에게 대하느냐고 물었을 때에는 ‘의사도 환자에게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카톤이 <잠언집> 가운데서 쓰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추종자들의 손 안에서 놀 정도라면 까마귀 무리 속에 몸을 던지는 편이 낫다고 늘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쪽은 죽은 자의 유해를 먹이로 삼는데 다른 한쪽은 살아있는 사람을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5) 이 세상에서 최고의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것은 행복한 채로 죽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 때 그에게 노트를 잃어버렸다고 울상이 되어 말하자 ‘종이 위가 아니라 마음속에 그것을 기록했어야 했다’고 그는 말했다.
쇠는 녹이 슬어 부식되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질투가 많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성격에 의해서 좀먹게 된다고 그는 자주 말하고 있었다.
또 불사(不死)이길 원하는 사람은 경건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또 국가가 멸망하는 것은 열악한 사람들을 뛰어난 사람들로부터 분리하지 못할 때라고도 말했다.
또 어느 때 악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자 ‘나는 무언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나 걱정이다’라고 그는 말한 것이다.
(6) 그는 어느 때 나쁜 자들과 어울려 다닌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그때 그의 대답은 ‘의사도 환자들과 함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열을 내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다.
철학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자 ‘자기 자신과 사귀는 능력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7) 여러 가지로 배울 것이 있는 가운데 무엇이 가장 필요한 것일까라고 질문을 받자 ‘배운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는 또 플라톤이 자만하다고 늘 비웃고 있었다.
축제 행렬이 행하여지고 있었을 때 사나운 말에 시선이 가자 그는 플라톤 쪽을 돌아보고 ‘나는 벌써부터 자네도 콧대가 높은 사나운 말처럼 보였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플라톤이 언제나 말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어느 때 그는 와병 중인 플라톤을 찾아가 플라톤이 그 안에 토하고 있었던 세숫대야 속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곳에 담즙은 보이는데 자만은 보이지 않는군’
(8) 그는 아테네인들에게 당나귀는 말이라고 표결하도록 권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를 바보스럽게 생각하자 ‘하지만 실제로 제군들이 있는 곳에는 아무 훈련도 쌓지 않고 있는데, 단순히 거수로 뽑힌 장군들도 있지 않은가’라고 그는 말했다는 것이다.
(9) 조각가 앞에서 물건을 만들고 있는 젊은이에게 ‘자네, 부디 말해 주게. 만일 청동(의 상)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자랑할 것으로 생각하나’ 이같이 그는 물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해 ‘그러면 자네는 부끄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혼이 없는 것(동상)을 기뻐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기뻐하다니’ 이같이 그는 말한 것이다.
폰토스 출신의 청년이 소금에 절인 생선을 실은 배가 닿으면 충분히 보살펴드리겠다고 그에게 약속을 했을 때, 그는 그 청년과 함께 빈 자루를 가지고 밀가루를 팔고 있는 여주인의 점포로 갔다. 그리고 그 자루에 밀가루를 가득 채운 다음 떠나려고 했다. 거기에서 점포의 여주인이 대금을 청구하자 ‘이 청년이 지불해 줄 겁니다. 소금에 절인 생선을 실은 그의 배가 도착하면’
이같이 그는 말한 것이다.
한편 그의 학설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그는 덕은 가르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덕이 있는 사람이 고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11) 또 (그에 따르면) 행복해지는 것은 덕만으로 충분하고 소크라테스적인 강함 이외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은 것이다.
그리고 덕은 실천 가운데 있는 것이고 많은 언어도 학문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13) 사려(思慮)는 가장 굳건한 방벽이다. 그것은 무너지는 일도 없는가하면 배신에 의해서 적의 손으로 넘어가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흔들림 없는 이성의 작용 가운데 방벽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는 (아테네의)성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키노사르게스(‘흰 개’란 뜻)의 체육장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 상례였다.
키니코스(犬儒)학파라는 명칭도 거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14) 모든 소크라테스 문하 가운데서 이 사람(안티스테네스)만을 테오폰토스는 칭찬하고 그는 놀랄만한 재능의 소유자이며 풍부한 기지의 대화로 어느 사람이건 자신의 뜻대로 이끌었다고 말하고 있다.
(15) 이 사람(안티스테네스)은 또 디오게네스의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나 탈라테스의 ‘자제심’, 그리고 제논의 ‘불굴의 정신’과 같은 사고방식에 길을 연 것이고, 그 사람들의 (사상의) 나라에 초석을 세운 것은 그 자신인 것이다.
또 크세노폰은 그에 대해서, 교제하기에는 더없이 즐거운 사람인데 다른 일에는 매우 자제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17)그런데 티몬은 그의 책의 양이 너무나도 많은 것에 대해 그를 비난하고 그를 ‘온갖 것을 다 끄집어내 지껄이는 사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그는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디오게네스가 그를 찾아가 ‘벗은 필요치 않겠군’ 이같이 그에게 물은 것은 마침 그가 질환을 앓고 있을 때였던 것이다. 또 다른 날 디오게네스는 단검을 지니고 그를 찾아왔는데, 그때 그가 ‘누가 나를 이 괴로움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라고 말했기 때문에 디오게네스는 단검을 보여주면서 ‘이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나는 괴로움에서라고 말한 것이고, 삶에서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 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전양범 옮김 제 6권 안티스테네스에서 임의 발췌 -
이승과저승 생각 : 聖人의 문하에서 賢人이 나온 것으로 안티스테네스가 소크라테스로부터 어떤 점을 보고 배웠는지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