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아관련 질문
2001년12월 등록자 신**
제 목 서양 철학사 읽으면서 질문이.
여름에 서양 철학사 강좌 듣고 겨울 방학 되어서 책 읽고 있는데. 질문이 있어요.
*램브레히트 서양 철학사 75쪽을 보면, 플라톤은 1) 개별자들이 실제로 관여하고 있는 이데아와 2) 마땅히 관여하여야 할 이데아와의 분명한 구별을 짓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두 가지 이데아에 대해서 저는 구별이 잘 되지 않네요, 좀 알려주셨으면..
*그리고 플라톤을 보면,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말들이 나오잖아요, 목적론에 대해선 고등학교 때도 많이 들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더 이해가 안 되네요, 목적론이란 것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요.
2001년12월 등록자 philebus(독자)
제 목 서양 철학사 읽으면서 질문이.(플라톤)
약간 다른 방향에서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플라톤이 그러한 구분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대화편 전체의 의도를 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마땅히 관여하여야 할 이데아에 대해(또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이데아에 대해) 거의 99%의 지면을 할애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데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여야 하는가를 실제 작품으로써 보여주고 있는 거죠.
예컨대, 국가는 올바름(정의)에 대해, 향연이나 파이드로스는 에로스에 대해,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에 대해, 뤼시스는 우정, 라케스는 용기, 프로타고라스는 덕에 대해, 카르미데스는 지혜 또는 절제라고 번역될 수 있는 이데아에 대해, 테아이테토스는 지식에 대해, 소피스트는 존재와 비존재에 대해, 파르메니데스는 하나에 대해, 필레보스는 선에 대해 등등입니다.
현상계에 있어 각각의 개별자에 대해서나 먼지, 진흙, 머리카락과 같은 하찮게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데아의 존재를 인정하긴 합니다만, 일단 그런 것들이 대화편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파르메니데스 편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하기를 올바름이나 아름다움과 같은 이데아를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먼지나 진흙과 같은 것에 대한 이데아를 생각해 보려 하면 곧 자신이 황당하고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당황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에 대해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은 자네가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며, 충분한 훈련을 쌓게 되면, 그 어떤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죠.
현실에 있어 개별자들의 이데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위와 같은 정도이고 사실 대화편 전체로 보면 별로 비중이 없습니다.
후세의 철학자들이 이데아론의 타당성을 논하면서 인간이나 물고기나 말이나 로켓이나 그와 같은 것들의 이데아가 있겠는지 없겠는지를 열심히 따진 거죠.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이데아가 개념이나 성질 정도의 의미로 희석된 감도 있습니다.
이데아론 비판의 핵심은 이데아가 과연 개개의 사물에 어떤 방식으로 관여하고 있는 가인데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 편에서 스스로 그 점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고,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도 원칙적으로 플라톤의 자기비판에서 한걸음도 더 앞서지 못하고 답습하고 있죠.
플라톤은 위에서 예로든 중요한 이데아들에 대해 변증법적 문답을 주고받으며 그 실체에 다가가려 시도하고 있고, 그 이야기 가운데 인간사에 있어 우리가 똑바로 쳐다보고 이해하여야 하는 여러 가지 점들에 대해 당시의 학설과 많은 일화를 섞어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하여 그가 중요하게 취급한 이데아는 선과 악, 높음과 낮음, 빠름과 느림, 길고 짧음, 아름다움과 추함, 하나와 여럿 등 경우에 따라 정 반대되는 개념으로 옮아갈 수 있는 이데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데아에 대한 탐구가 지성을 움직이는데 좋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죠.
또, 우리가 올바름(정의)에 마땅히 관여하여야 한다는 얘기는 틀린 얘기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핵심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핵심은 어디까지나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이죠.
마찬가지로 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이 마치 화두처럼 머릿속에 있어야 하지만, 거기서 좀 다른 길로 나아가 우리가 마땅히 관여해야 할 이데아라든가 하는 말은 플라톤의 의도와는 좀 거리가 있는 걸로 생각되네요.
아무튼 이데아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자 한다면 직접 대화편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이상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