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페미니즘 논쟁을 보며

이승과저승 2023. 8. 23. 14:34

: 맑은 가을 10월 어느 날
: 광장
등장인물 : 김 선생, 이군

 

김 선생 : 어디에서 오기에 그렇게 얼굴이 상기되어 있나?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군 그래.

 

이군 : 예 저쪽에서 아까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여성문제에 대해 서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인데요, 잠시 구경하다 보니 저까지 흥분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김 선생 : 일하던 중에 잠시 머리도 식힐 겸 바람을 쐬러 나왔네.
그래 그곳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주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던가?
보아하니 자네도 그 토론에 참여했던 것 같은데 괜찮다면 어디 한번 들어보세.

 

이군 : 예 그러죠.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제 의견을 조금 비치다 왔습니다만…….
우연히 모였는지 아니면 여성문제에 오래 관심을 가진 누군가가 사람들을 불러내었는지, 아무튼 연령층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인 것 같더군요.
진지하게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요.
또한, 과격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온건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들의 이야기는 남자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며 살아가는 여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인습과 굴레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는데 그러한 굴레로부터 여성들은 자유로워져야 하며 그렇게 되는 것을 여성해방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김 선생 : 그러네, 나도 심심치 않게 그런 이야기를 듣곤 하지.
그리고 그것은 그러한 차별을 느끼는 여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 목소리가 크든 작든 지극히 온당한 이야기가 될 것이네.
그런데 여보게, 한 가지 묻겠는데 자네가 만일 새 집을 짓는다고 가정하고 그 설계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때 자네가 그 일을 할 사람을 지정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는가?

 

이군 : 그야 건축 설계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김 선생 : 그 설계사가 남자인가 여자인가는 상관이 없나?

 

이군 : 없죠.

 

김 선생 : 그럴 테지, 그럼 자네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식당을 골라 가야 할 경우에 어느 식당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어떤가?

 

이군 : 그야 제가 아는 한 음식을 가장 맛있게 잘 만드는 곳으로 가야지요.

 

김 선생 : 그 요리사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관계없단 말이지?

 

이군 : 그렇습니다.

 

김 선생 : 그럼 자네가 병이 나서 의사의 진료를 받아야할 경우는 또 어떤가? 어떤 의사를 찾고 싶은가 말일세.

 

이군 : 역시 가능하다면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습니다. 남자 의사든 여의사든 상관없이 말이지요.

 

김 선생 :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집식구들끼리 그 도둑을 물리쳐야 할 상황이 되었다면 그때 필요한 것은 무엇이 되겠는가?

 

이군 : 힘센 사람이나 무술을 할 줄 아는 사람, 또는 그 도둑을 도망가게 만들 수 있는 지혜나 기술이나 도구를 갖춘 사람이 되겠지요.
다른 것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김 선생 : 그도 역시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겠지?
그러한 조건을 갖추기만 했다면 말일세. 물론 그런 여자가 흔치 않다는 것은 별개 문제이네. 지금 내가 이렇게 질문하는 의도와는 연관이 없는…….
그럼 다른 예는 그만 들기로 하고 우리는 이렇게 단정 지어도 좋을지 어떨지 말해 보게.
, 우리가 어떤 특별한 것을 구하려 할 때나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할 때 우리가 찾는 것은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그 부문의 전문가라는 것 말이네.

 

이군 : 당연한 말씀입니다.

 

김 선생 : 그럼,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여성들은 어떤 점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이야기하는가?

 

이군 : 그들은 아마도…….
예를 들면 같은 실력을 가진 2명의 전문가라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여자보다는 남자가 낫다는 그런 생각을 막연히 가지고 있으며 그런 생각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의식적 무의식적 행동들이 여자들에게는 차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닐는지요.
, 여자들이 항변하는 점은 뚜렷한 이유 없이 여자라는 한 가지 점만으로 남자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며 어떤 때는 모욕에 가까운 취급을 당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 : 그러네. 그들이 각자의 욕망에 부응하는 인간으로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나 얻고자 하는 것으로 다가가는데 굳이 없어도 좋을 장애나 귀찮음(주로 남자들이 조장한다고 하는, 또한 무너뜨리기 어려운)이 그들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
그런데, 해방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여성은 주로 어떤 여자들이라고 하던가?

 

이군 : 무슨 말씀인가요?

 

김 선생 : 이런 걸세. 자기 자신이 남자들로부터 불평등한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그것은 타파되어야 한다고 자각하고 있는 여성이 해방의 대상이 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자신은 불만을 느낄 만큼 차별대우를 받지 않고 있으며 나아가 현재 행복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이 그 대상인가, 또는 그들 모두인가 하는 것 말이네.

 

이군 :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발표자에 의하면 현재 불만이 없다고 말하는 여성들을 인습에 길들여져 온 결과로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로 간주함으로써 그들을 포함하여 모두를 해방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김 선생 : 그래 그 점에 대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군 : 그것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로 자칫하면 가령 물이 먹기 싫다는 당나귀를 억지로 냇가로 끌고 가려 할 때 생기는 곤란함을 야기할 것 같군요.

 

김 선생 : 잘 말했네. 그 점은 실로 중요한 대목이지.
어떤 해방이든 그 대상자가 스스로 그리로 자진해서 가도록 유도해야만 할 걸세.
해방을 시킨다고 하는 쪽과 해방을 당하는 쪽이 내분 상태에 빠지게 된다면 그것은 사실 해방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 아니겠나?
해방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러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원래 적은 법이지.

 

이군 : 결국 토론 중에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차이점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김 선생 : 이성적이라거나, 감성적이라거나, 보다 현실적이라든지, 유순함, 포용성, 용기나 인내심, 또는 능동성이나 수동성 같은 것 말인가?
하긴 언젠가는 피 속의 적혈구나 백혈구의 숫자 차이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지만…….

 

이군 : 그렇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인 차이로써 그런 점을 열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저도 그런 점이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일부 여성 쪽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그런 차이점이 대부분 인습과 제도에 의하여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요된 결과라고 얘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 : 그렇게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네.
그런데 여보게, 어쨌든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자네는 남자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지 않나?

 

이군 : 글쎄요, 별로 그런 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김 선생 :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만약 자네나 내가 여자라고 상상해보게. 어렸을 때는 남자 형제들에게 거는 부모들의 기대만큼 그들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물론 다 같이 깨물어서 아픈 손가락임에는 틀림없지만 말일세) 힘이 약한 탓으로 남자아이들에게 번번이 놀림을 당하며 자라네. 커서도 남자라면 받지 않아도 되는 자질구레한 수모를 받거나 원하지도 않는데 남자들이 치근대는 바람에 쓸데없이 그런 일들에 반발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네.
, 나로서는 내가 하고 싶은 어떤 일에 관하여 내가 남자라면 가지지 않아도 좋을 상당한 번거로움을 괜히 지속적으로 얻게 된다는 말이지.

 

이군 : , 이해가 가는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다행스러운 생각이 들긴 하는데요아무래도…….
여성들이 이 말을 듣는다면 우리가 매우 이기적이라는 평판을 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그런 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활동 대신에 남자로 태어난 점을 자축하고만 있다니 말입니다.

 

김 선생 :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긴 하네.
그렇지만 이것 보게.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생각하는 여성관 같은 것은 멀찍이서 바라보는 단풍 숲과 같은 것으로 세세히 나무 하나하나는 보지도 못한 것일세.
여성문제에 관한 자세한 현황이나 문제점이나 앞으로의 효과적이며 부작용이 적은 대응방안 같은 것은 여성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그 문제에 관심이 많아 오래 연구한 사람, 또는 우리보다 지혜로운 다른 사람들이 맡아서 해나가겠지.
나는 그런 거창한 문제에 참여할만한 능력이 없네.
오히려 나는 나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기에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 나라는 존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히드라와 같이 잘라내면 끝없이 새로 돋아나는 여러 개의 머리를 각각 다른 욕망으로써 가지고 있는 이상한 괴물과 같은 존재인지, 아니면 시종 단순하고 참되며, 가능한 적은 변화로써 일생을 만족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온유한 동물인지 말일세.

 

이군 : 선생님의 말씀은 때로는 아름답게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선생님 말씀처럼 자신의 존재에 관해 관조하며, 내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의 발전을 꾀하려고 한다면, 그가 남자든 여자든 그러한 생활을 방해하는 것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김 선생 : 그러네. 만약 있다면 그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것으로써 있을 걸세.

 

이군 : 아마 그렇겠지요.
그런데 결국 지금까지 얘기한 여성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주장은 무엇입니까?

 

김 선생 : 내 주장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플라톤의 주장을 내세우고자 하네.
, 한쪽은 낳는 편이지만 다른 한쪽은 낳게 하는 편이라는 점만 빼면 양자에 있어 다를 것이 없다는 얘기 말이네.
단지, 여자는 남자에 비해 약하다는 점은 사실이네.
그리고 여성의 권익신장이나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일리 있다는 것도 내 생각이지.

 

이군 : 그렇다면 그러한 불평등을 사회구조나 제도개선, 또는 대중을 향한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보다 나은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김 선생 : 자네는 별로 있지도 않은 내 밑천을 모두 뒤집어 보이길 원하는군.

 

이군 : 대답하시지요. 오늘은 저도 선생님을 밀어붙여 항복을 받아보아야 하겠습니다.

 

김 선생 : 나이 먹은 사람을 너무 추궁하지 말게나.
하긴 나로서는 진리를 말하여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항복할 생각이지만…….
사실 자네가 말하는 그런 사람들은 재지가 넘치고 평균 이상으로 현명한 사람들이 대부분일세.
그중에는 또한 남다른 정의감과 기개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지.
우리는 그들을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않네.
자네는 그렇게 생각지 않나?

 

이군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째서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 어떤 부문에서도 별로 활동하지 않으시는지요.
그런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면서도 말입니다.

 

김 선생 :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네.
단지, 부정적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얘기지.
자네는 어떤 무엇이 길지 않다고 하면 곧 그것은 짧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군 : 아닙니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중간도 있죠.

 

김 선생 : 또한 높지 않다고 말한다고 해서 바로 낮은 것이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겠지?

 

이군 : 그렇죠.

 

김 선생 :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않겠나?

 

이군 :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아야지요.
아주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은 소수이고요.

 

김 선생 : 그러므로, 나는 자네가 말하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생각지 않는다는 얘길세. 또한 내가 그러한 영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이유는 우선 능력이 없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그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벌이는 일에 대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전지식이나 경험과 현상분석, 현재의 모순과 미래의 비전제시 등 훌륭한 지식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네.
그러나 나는 현실적인 어느 부문에도 그다지 깊은 지식과 조예를 갖고 있지 못하네. 그것은 나의 주된 관심이 외부세계에의 참여보다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갖추어져야 할 지혜와 올바름을 구하는 데 있기 때문이네.
자네는 예전의 지혜 있는 사람들과 진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끝없이 변화해가는 만물 속에서 정의나 아름다움을 구하기보다는 많은 정의로운 것들을 정의롭게 만드는 바로 그것, 즉 정의 그 자체 또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발견하고 그러한 본질적인 것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애쓴 사실을 모르는가?

 

이군 : 책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죠.

 

김 선생 : 그들은 변화하는 현상들을 뒤쫓아 가며 거기에 맞추어 그들의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기보다는 시종 불변하는 존재들을 찾고 음미하는 것에 관심이 더욱 쏠려있었기 때문이라네.

 

이군 :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가기가 어렵군요.

 

김 선생 : 그에 관하여는 다시 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있을 걸세.
아무튼 나로서는 내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보다 나은, 또는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라기 이전에 나 자신이 먼저 그러한 삶을 누리게 되기를 기원하고 있네.
또한 그러한 삶을 누리게끔 기원하기 전에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로 행복한 생활인지에 대하여 스스로 자문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네.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녕 무엇인가?
여보게, 예전의 성인이나 현자들을 닮아보려고 애쓰는 것이 과연 가소롭고 허망한 일에 그치겠는가?

 

이군 : 그렇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호랑이를 그리려 해야 나중에 고양이라도 그리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언제 한번 한가한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오늘 운을 뗀 여성문제나 지혜롭고 행복한 생활, 정의와 아름다움 자체에 대하여도 말씀을 더 듣고 싶습니다.

 

김 선생 : 여보게, 나는 단지 스스로 묻는 사람일 뿐이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란 사실 보잘 것 없는 거지.
자네가 얘기하는 문제들을 관장하는 신께서 우리에게 호의를 베푼다면 그럴듯한 긴 연설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망한 일이 될 걸세.
어쨌든 조만간 한번 들려주게나.
오늘은 바람도 어지간히 쐬었으니 나도 이젠 다시 남은 일을 마무리해야겠네.

 

이군 :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들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김 선생 : 그럼 잘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