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길에
오늘 해 뜨는 시각 6시 45분, 6시에 산길로 나섰다. 등산로치고는 자동차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게 잘 닦아 놓아 아직 어둡지만 길을 구분하기엔 지장이 없다. 초입을 벗어나 조금 올라가는데 갑자기 옆 덤불숲에서 개인지 아니면 작은 산짐승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물체가 쏜살같이 뛰어나와 내 뒤편 마을 쪽으로 내달린다. 그리고 20분 정도 더 올라가 중턱에 이르렀는데 이번에는 내 앞 도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질러 고양이로 보이는 흰 짐승이 재빨리 숲을 뚫고 산비탈로 올라가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까는 검은 짐승이 내가 떠나온 마을 쪽으로 달려갔고 지금은 흰 것이 산으로 올라갔다. 마치 내게 양자택일을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을을 지나 이미 산길로 들어섰으니 검은 짐승을 따라 되돌아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 산비탈로 올라간 흰 고양이를 따라갈까? 그러나 그쪽은 길(道)이 아니니 갈 수 없다. 뭔가 헷갈릴 것이 있겠는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능선으로, 그리고 거기서 각 봉우리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비록 마을길과는 달리 사람이 드물고 호젓한 산길이기는 하지만 목적지를 세우고 행장을 꾸려 유유하게 밟아갈 수 있는 어엿한 길이므로.
정상을 200미터쯤 남겨두고는 아담한 나무 계단이 이어지는데 쉬지 않고 숨 가쁘게 올라가면 비로소 유산소 운동이 될 만한 구간이다.
정상에 이르면 갈 곳이 세군데 있다. 첫째는 능선 우측으로 따라가 문예회관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두 번째는 왼쪽으로 가다 중간쯤에서 절(寺)로 내려가는 길이다. 세 번째는 능선을 끝까지 돌아 향교鄕校로 내려가게 되는데 그러면 아마 정상에서 능선만 6km 정도 걷게 될 것이다.
문예회관으로 내려가는 길을 정신의 도정道程과 나란히 놓으면 속된 문화생활을 영위함을 뜻할 것이고 절로 내려가는 길은 온전히 지혜와 理性에 의지하는 도 닦음을 의미하며, 향교로 가는 길은 天命을 따라가되 仁義를 세우는데 진력하는 삶의 상징일 것이다. 그리고 능선을 따라가며 가끔 머리를 들어 위를 보면 플라톤의 “좋음”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A가 B에게 말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B가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A는 무슨 의미로 말을 건넸고 B는 무슨 의미로 동의한 것인가?
B가 대답한 의미는 사람은 협동과 협업을 통해 인간다운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으로 일을 중심으로 말한 것이다. 즉 알기 쉽게 말하면 자신이 맡은 일을 원만히 처리할 수 있으면 그는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A는 그 외 또 무슨 의미를 더하여 말을 한 것일까?
아마도 사람 간에는 뭔가 감정의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모두는 모두와 소통해야 하는가, 아니면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소통할 수도 있고 소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태에서 자유의지로 兩者 간에 선택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소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으면서 그것을 두고 사람이라면 서로 소통하며 지내야 한다고 자신의 진리로써 설파하는가.
생각건대 고집할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 건은 아마 量的인 - 정도程度의 - 문제로 귀결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