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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감성과 논리, 신념의 관계 4

나비님, 9858번 글은 공포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공포가 착각에 근거한 행위인가 아닌가를 밝히고자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Adolph는 공포를 불필요한 정신적 고통 쪽으로 분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공포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 불필요한 겁니다.

Adolph가 불행에 가깝고 불필요하고 정신적 고통 쪽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 감성은 슬픔, 분노, 히스테리, 미움 등이었습니다.

그러니 Adolph의 글의 내용 중에 나비님께서 감성의 필요성 여부를 제시하시려면 그 감성은 슬픔, 분노, 히스테리, 미움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Re:그런가요?  
글쓴이: philebus(나비
 
! 그런가요?
제가 답변한 근거는 님의 글 전체의 맥락에서 그러려니 하고 판단한 것이었죠. 변명을 위해 굳이 지난 글을 나열해 본다면,

 

"인간에게 있어 언제나 즐거움만이 합리적이고 바른 것이며 분노, 슬픔, 걱정 등의 감성은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비효율적인 감성이다.
어떤 슬픈 상황에서건, 어떤 힘든 상황에서건, 어떤 부당함이 이루어 질 수 있는 상황에서건 인간은 언제나 즐거워한 채로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행위를 취해야지만 적절한 것이다."

 

=> 즐거움을 제외한 모든 감성은 버려야 할 것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죠.

 

"상황을 직면함에 있어서 즐거움과 고통, 평상심중 어느 것을 택할지는 인간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정신적 고통을 느낀 상태로도 이성은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판단할 수가 있지만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더라도 이성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게 가능하다면 굳이 정신적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굳이 즐거움을 내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과 지성은 즐거운 상태이건 고통을 느끼는 상태이건 이성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가 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건 자유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지 않냐 는 겁니다. 약간의 즐거움은 오히려 행복한 상태이니 즐거움을 추천할 만합니다."

 

=> 즐거움을 선택한다면 나머지 감성은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셈이 되는 거고요.

 

"정신적인 고통은 언제나 착각으로 생겨나는 고통이고 불필요한 고통입니다.
상황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그것이 '손해인가 아닌가, 좋은 것인가 싫은 것인가' 는 판단은 정신적 고통을 느끼지 않더라도 이성과 지성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합니다."

 

=> 님의 주장의 근간을 볼 때 공포도 역시 정신적 고통에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해야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감성이 일어나는 이유는 착각과 오류의 반응입니다.
Adolph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의 요지는 지나친 감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 요지가 아니고 슬픔, 분노, 히스테리, 웃음, 즐거움, 기쁨 등의 정신적 반응은 그것이 작게 일어나건 크게 일어나건 그저 착각의 감성이니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겁니다."

 

=> 선택권이 있다는 얘기는 즐거움을 선택하면 나머지는 불필요하다는 뜻 아닌가요?

 

"내가 아무리 정신적 고통(슬픔, 분노, 히스테리 등)을 갖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함정, 혹은 착각일 뿐 어떠한 것도 변화시킬 수가 없고 단순한 비합리적인 고통이라는 것을 온전히 인식하게 되면 그것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는 얘기고 그것은 곧 불필요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거죠.

 

"물론 감성을 나눈다는 건 감성에는 슬픔, 기쁨, 히스테리, 공포, 즐거움, 지루함, 그리움, 사랑, 미움, 아쉬움, 안타까움 등 언어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기에 모든 감정을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감성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지는 공포의 감정에 대해서 우선 증명해 볼까 합니다."

 

=> 슬픔, 분노, 히스테리 등 모든 감성의 근원이 공포라고 했으므로 다른 감성이 정신적 고통으로 불필요하다면 공포도 역시 불필요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테죠.

 

그리고 아무튼 공포가 착각이라고 해도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근거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착각이란 진실이 아닌 거짓이므로.
반면에 저는 공포가 단지 착각이 아니라 일종의 메신저라고 해명했습니다.
다른 감성에 대해서는 이미 님의 글을 하나하나 따라가면서 충분히 의문을 제기했으므로 새삼스레 뭐라고 말할 것이 없고요.
아돌프 님이 다시 뭔가 다른 설명이나 주장을 하신다면 생각해 보죠.
지금 남은 문제는 제가 지난 말미에 말씀드린 바, 님이 주장하신 어떤 초월적인 즐거움에 관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럼…….  
 

 

9858번 글에서는 공포의 불필요성에 관한 게 논점이 아니라 공포가 착각에 근거한 행위인가를 밝히기 위한 것이 논점이니 착각에 근거한 행위에 대한 설명을 공포의 필요성으로 반박하는 건 글의 맥락과 맞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글의 전체를 따와서 보자면 Adolph가 한 주장은


1. 이성을 잃지 않을 정도의 즐거운 감성은 언제나 위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2. 감성은 착각으로 일어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인식만 제대로 하고 있다면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 <- 감성의 선택권.

3. 슬픔과 분노 등의 정신적인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상태에서의 정신적인 현재는 즐거워야 할 상황이다. 우리는 그것을 단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논점에 어긋났던 부분.

4. 공포의 감정은 '인식의 차이로 인한 착각의 반응'이다. 또한, 모든 감성은 '인식의 차이로 인한 착각의 반응'이다.

4가지입니다.

나비님께서 질문하신 부분은 글의 취지, 논점에 어긋나게 Adolph가 판단했던 부분을 질문하신 게 되니 그것을 토론하는 건 부적절합니다..

 

Re:Re:이제 와서 다시 살펴보니 Adolph가 공포를 불필요한 감성 쪽으로 분류한 주장을 한 게 맞군요. 허나 공포가 감성의 근원이라면 즐거움의 근원일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Adolph는 논점을 제대로 잡기 위해 스스로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었지만 나비님의 주장을 들어보니 Adolph가 그러한 주장을 한 게 맞습니다.

Adolph가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것은 나비님의 답변 글이 9858번 글의 논점의 요지에 어긋난 채로 반박을 하셔서 나비님께 요점을 적절하게 잡아드리기 위해서 Adolph가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으니 우선은 그것을 논점화 하지 말자고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만,

Adolph9865번 글에서 주워 담기 힘든 말실수를 한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공포가 감성의 근원이라면 즐거움의 근원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공포가 즐거움인지 고통인지는 스너프의 공포를 쾌감으로 느낀 Adolph라서 아직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포가 인식의 차이에 따른 착각의 반응이라는 것은 Adolph의 논점이니 논점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아돌프님께 다시 한 번…….  
 

글쓴이: philebus(나비
  
지난번 말씀하셨던 초월적인 즐거움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말자는 얘기인 것 같으니 그렇게 하죠.
그리고 지금까지의 문답은 주로 아돌프 님이 일반화시킨 명제에 대해 제가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묻고 반례를 제시함으로써 애초의 명제가 무리한 내용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드러내는 것이었죠.
앞으로도 저는 그런 식으로 질문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을 묻는 거죠.
말하자면 말씀하시는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는 얘기입니다.
다른 의미는 없고요.
그럼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얘기하죠.

전에 님이 하신 말씀 중에 주요 요지로써 이런 것이 있었죠.

"인간에게 있어서 감성이 일어나는 이유는 착각과 오류의 반응입니다.
Adolph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의 요지는 지나친 감성이 좋지 않다는 것이 요지가 아니고 슬픔, 분노, 히스테리, 웃음, 즐거움, 기쁨 등의 정신적 반응은 그것이 작게 일어나건 크게 일어나건 그저 착각의 감성이니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럼 또한 전에 제가 얘기한 바, 사람은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얻으면 즐거워한다는 명제를 인정하십니까?
만약 인정하신다면, 누군가 색소폰이나 기타를 얻기를 간절히 원했고 어느 때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어떤 점에서 착각이란 말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너무 길어도 번잡하니 간단히 진행해 보겠습니다.

 

 

 Re:9858번 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어떤 토론이든지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나비님의 물음은 논점에는 어긋나 있지 않지만 순서에는 어긋나 있습니다.
[공포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 손해를 감성으로 먼저 겪게 됨으로서 앞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근거한 감성'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지신다면 예외의 경우를 제시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Adolph는 심리학적으로 공포가 감성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진다는 것을 이미 언급을 하였습니다.
KC님이 카페 운영자시라는 걸 안 이상 더 이상 혼란스러운 방향으로 토론을 이끌지 않을 생각입니다..
죄송합니다.

 

 

Re:Re: 9860   
글쓴이: philebus(나비
 
그 점에 대해서는 9860번에서 이미 길게 반론을 제시했는데,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돌프님의 주장에 대해 매번 답변을 빼먹은 적이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
읽어 보시고 제 반론이 이해가 안 가거나 마음에 안 들면 해당 부분을 적시해서 다시 해명을 요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닙니까?
한번 반론을 올렸는데 마치 제 답변이 없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면 제가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제 답변은 님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포는 단지 착각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메시지라는 것이 핵심이었죠.
9860번의 제 글을 다시 복사해서 여기 올릴 필요는 없겠죠?
그럼 제 글에 대한 님의 구체적인 반론이나 질문을 다시 기다려 보겠습니다.

 


Re:Re:Re: 순서를 말하는 겁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나비님의 9860번 질문은 논점에 어긋난 것을 주제로 삼아 논점에 어긋난 부분을 질문한 것이라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없었지만

논점의 순서는 아래 Adolph가 제시한 부분이어야 하고,
[공포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 손해를 감성으로 먼저 겪게 됨으로써 앞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근거한 감성'이 아니라고 판단되어 지신다면 예외의 경우를 제시해서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9860번 글은 공포가 착각에 의한 행위인가를 먼저 밝히고자 하는 논점을 공포의 필요성으로 반박하셨으니 논점을 잘못 잡으신 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9872번에서 공포가 착각에 의한 행위인가 아닌가에 대한 언급도 없이 즐거움으로 넘어가셨으니 순서에 있어서는 적절치 못합니다.

 


 Re:Re:Re:Re: 그렇다면  
 글쓴이: philebus(나비
  
그럼 9860번 제 답변에서 아돌프님이 말씀하신 부분만 발췌해서 다시 보여 드릴 테니 한번 보십시오.
불필요 얘기도 있고 착각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한번 답변으로 게시한 글을 못 보신 것처럼 다른 말씀하고, 9860번이라고 가르쳐 드렸더니 읽어 보신건지 안 보신건지 모르게 또 다른 말씀하시고, 그래서 다시 해당부분을 복사해서 들이밀어야 한다면 토론이 좀 비효율적이 되는 것 같네요.

 

=> 그럼 공포의 경우도 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님은 공포를 '앞으로 겪게 될 고통, 손해를 감성으로 먼저 겪게 됨으로서 앞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근거한 감성'이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착각이 아니라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이나 손해를 미리 막으라는 메시지라고 해석해서 안 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공포나 두려움을 느끼는 기능이 인간에게 전혀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은 본래 타고난 욕망이 거센 존재인데 뭔가 얻으려고 욕구를 앞세울 때 거기서 비롯되는 위험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이 없다면 무리한 욕구충족을 시도하다 죽거나 해를 입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것이 아닌가요?
예컨대 에이즈감염에 대한 공포가 원래 없다면 예방조치를 취하지 않은 성관계를 계속 갖다가 결국 에이즈에 걸려 죽을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인간의 성욕은 원초적인 것으로 일반적으로 매우 강하니까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것은 감성의 착각이 아니라 그에 대비하여 삶을 보존하라는 메시지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에이즈가 어떤 경로로 전염이 되는지 분명히 알고 무분별한 성관계를 피하든지 아니면 예방조치를 분명히 하면 공포는 사라지는 것이죠.
,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해로움에 대한 분명한 앎과 그 앎을 바탕으로 한 대비가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공포는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 착각도 아닙니다.
단지 공포의 대상에 대해 만약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분명히 알라고 하는, 또는 최소한 알기 위해 노력하라는 메시지이지만 사람들은 용기가 없거나 타성에 젖어, 또는 심한 무지로 알지 못하거나 알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면 공포 자체는 착각이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인간에게 이로운 작용을 하는 거죠.
문제는 그 공포를 인간이 어떻게 대하고 취급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에서 예로든 육체적 고통의 예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부위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마취약이 있건 없건 치료받으라는 메시지죠.
그런데 마취약이 없다고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그의 용기 문제지 상처의 고통이 뭔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공포도 인간의 삶을 존속시키기 위한 하나의 심리적 기제이고, 공포 그 자체는 무죄란 말씀입니다
 

 

Re:Re:Re:Re:Re: 그렇다면 나비님께 질문하겠습니다.  
글쓴이: Adolph Knigge 
  
착각으로 일어나는 공포라는 반응이 이로울 수가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공포 자체는 착각으로 일어나지 않고 원초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인가요?

공포가 원초적으로 일어난다면 공포는 어째서 일어나는 생리학적인 반응인가요?

공포의 앞일을 미리 막으라는 메시지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과학적인 반응인가요?

공포가 이로운 것이 공포가 착각으로 일어나는 것이랑은 무슨 상관인가요?
공포가 착각으로 일어나지만 그 공포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은 Adolph의 논점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나요?

나비님의 전체적인 논점은 무엇인가요?

9858번에서 Adolph의 논점은 무엇이고, 9860번에서 나비님이 말하시는 논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두 논점의 연관성은 무엇인가요?

감성이 인간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거라면 감성은 인간의 신체 중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그리고 공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착각인 경우의 공포가 있다면 무엇이고 착각이 아닌 경우의 공포는 무엇인가요?

 

 

아돌프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글쓴이: philebus(나비
  
이제 제가 질문을 받을 차례인가 보네요.
그럼 하나하나 제 의견을 말씀드리죠.

 

>착각으로 일어나는 공포라는 반응이 이로울 수가 있다는 건가요,
아니면 공포 자체는 착각으로 일어나지 않고 원초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인가요?

 

=>사실에 근거하여 일어나는 공포도 있고,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망상 따위에서 공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망상을 착각이라고 한다면 착각을 근거로 하여 일어나는 공포는 이로울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사실을 근거로 하여 일어나는 공포는 우리에게 모종의 사태로부터 해를 입지 않도록 조치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때 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가 원초적으로 일어난다면 공포는 어째서 일어나는 생리학적인 반응인가요?

 

=> 원초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의 의미가 무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자기 보존에 차질이 예상될 때 공포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포의 앞일을 미리 막으라는 메시지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 과학적인 반응인가요?

 

=> 자신에게 닥칠 해로움을 미리 예견하는데서 공포가 생겨나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조치를 취할 수 있겠죠.
하지만 공포를 느끼면서 일어나는 행동양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겁니다.

 

>공포가 이로운 것이 공포가 착각으로 일어나는 것이랑은 무슨 상관인가요?
공포가 착각으로 일어나지만 그 공포가 인간에게 이로운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리고 그것은 Adolph의 논점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나요?

 

=> 망상 따위가 착각이라면 착각으로 일어나는 공포는 이로운 것이 못 된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죠.

 

>나비님의 전체적인 논점은 무엇인가요?

 

=> 아돌프님이 즐거움을 선택하고 나머지 감성들은 불필요하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 의문이 있다는 거죠.
또한 모든 감성이 착각이라는데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는 거죠.
그 의문을 제 나름대로 계속 단계적인 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고요..

 

>9858번에서 Adolph의 논점은 무엇이고, 9860번에서 나비님이 말하시는 논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두 논점의 연관성은 무엇인가요?

 

=> 님의 논점은 공포가 '앞으로 겪게 될 고통, 손해를 감성으로 먼저 겪게 됨으로써 앞일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근거한 감성이라는 거고, 제 말은 '감성으로 먼저 겪는 것이 앞으로의 해를 막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그 점에서 공포를 앞일에 대해 조심하고 대비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고 그렇다면 공포는 무조건적인 착각이 아니라는 거죠.
님은 아마도 공포를 느끼는 것 자체가 앞일을 막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착각이라는 어휘를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저는 공포는 단지 위험을 알려주는 역할 뿐이고 그에 대비하는 것은 또 다른 노력이며, 그렇다면 공포의 역할이 한정되는 한 착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거죠.(망상 따위에 근거한 공포는 제외)

 

>감성이 인간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거라면 감성은 인간의 신체 중에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그리고 공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나요?

 

=> 이것은 선문답 같은데요, 마음과 신체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써 다른데 서로 다른 종류를 위치로 연관시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디에 위치하는가는 저도 잘 모른다고 해야죠.

 

>착각인 경우의 공포가 있다면 무엇이고 착각이 아닌 경우의 공포는 무엇인가요?

 

=> 위에서 말한 망상 따위를 착각이라고 한다면 밤중에 홀로 산에서 느끼는 공포나 귀신 따위에 대한 공포가 착각에 의한 공포겠죠.
그리고 전쟁터에서 돌격하는 병사가 적의 총탄에 맞을까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에 의한 공포겠고요.
총탄에 맞을 가능성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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