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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읽은 것을 믿지 말라

 동영

 

안녕하세요. 질문이 있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제 친구가 저에게 물어본 것인데요.…….

 

당신이 읽은 것을 단 한마디도 믿지 마라 에 관해서 논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둘이서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어떠한 관점에서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어서요.

 

대략 지금 바로 여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좋을듯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바람

 

[re] 제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문답을 진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 읽은 것을 단 한마디라도 믿지 말라니 그 무슨 소리인가?

예를 들어 요리책에서 단맛을 내려면 설탕을 넣고 짠맛을 내려면 소금을 넣으라고 말했다면 그런 말도 믿지 말고 직접 요리를 하면서 설탕과 소금을 엇바꿔 넣어가며 확인해야 한다는 말인가?

 

: 아마 그런 말은 아니겠지.

 

: 그럼 작년 12월 어느 날 신문에서 "노무현 당선 확정"이라는 기사를 읽었다면 그 말도 믿지 말고 스스로 백방으로 사실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이회창 씨가 당선된 것으로 믿어야 하는가?

 

: 그런 말은 더더욱 아닐 테고…….

 

: 또 수학 책에서 a+b=b+a 라고 주장할 경우 이런 것도 믿으면 안 되겠군.

 

: 글쎄…….

 

: 그리고 애인이 편지로 자네에게 "너를 사랑해, 함께 있고 싶어" 라고 말해도 그 말을 결코 믿으면 안 될 걸세.

 

: 아무려면…….그렇게까지 되어서는 안 되지.

 

: 그럼 우리가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어느 책에 "너 자신을 알라."고 써져 있다면 그 말도 믿어서는 안 되는가?

 

: 그 말은 옳은 말인 것 같네.

 

: 어떤 말을 믿는다는 것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인가?

 

: 그렇지.

 

: 그럼 반대로 어떤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그 말이 거짓이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이겠지?

 

: 그렇고말고.

 

: 쓰인 글 중 올바른 내용은 믿어야 하고 올바르지 못한 내용은 믿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그래야 할 것 같네.

 

: 그럼 우리가 읽은 것을 단 한마디도 믿지 말라는 애초의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라고 해야 하겠는가? 어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

 

- - - - - - - - - - - - - - - - - 이하 생략.

 

이상 접근 방법에 대해 간단히 예시했습니다.

 

 moon

 

[re] 제 경우라면…….

 

문장을 조금 바꿔서 제시하고, 논의해 보겠습니다.

"네가 읽은 것은 아무것도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참이다."

 

(1)정치적 맥락에서 이 말은 어떤 태도를 견지하라는 권고일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내면화되어있는 검열, 혹은 필터링을 반성해 보아라, 모든 제도와 체제 아래 당연시되기 십상인 모든 것을 일단 의심하고, 허위는 과감히 떨쳐버려라. 왜냐하면 국가와 법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와 언론, 출판물은 끊임없이 우리 개개인을 기만하니까.

 

(2)이 말은 역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발화자의 말을 믿으면 그 명제는 거짓이 되고, 발화자의 말을 믿지 않아야 이 명제가 참이 됩니다. 그런데 발화자의 말을 믿지 않으면 그 말의 효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친구는 아마 (1)의 경우를 의식하고 그 말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람

 

[re] 제 경우라면…….

 

답변 감사합니다.

 

애초에 말을 건넨 사람이 오직 그 한마디만 하고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듣는 사람마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고, 그에 관해 분명한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분명치 않은 말로 인해 쓸데없는 논란만 일어나는 꼴이 되는 거겠죠.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 말한 사람을 붙잡고 그 진정한 의도를 캐물어 보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양면적, 또는 다면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문제에 대해 누군가 어떤 일방적인 결론만을 강조한다면 그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까라고도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원래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주장하는 말은 하나도 믿을 것이 없다는 뜻일까 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물론 moon 님처럼 생각해도 되겠네요.

 

그런데 위 1번처럼 생각할 경우 또 다시 어떤 문제가 따라 나올까요.

읽은 것을 한마디도 믿지 말라는 것은 말투로 보아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의미로 생각되지만 단지 위의 말로 그친다면 그 충고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모름지기 국민이라면 국민 된 도리로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보편적인 윤리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애국심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발휘되느냐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경우가 있겠죠.

그 중 중요한 것은 국가의 법과 국가가 요구하는 질서를 따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독재자가 일부 계층의 이익을 위하여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나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공익을 앞세워 국민을 기만하는 경우라면 그에 항의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실제로 어떤 문제에는 국가의 요구에 따르고, 어떤 문제에는 이의를 제기해야 하느냐 하는 결정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 현재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검토나 문제제기 없이 그저 모든 것을 일단 의심하고 허위를 과감히 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면적인 방침과 처한 환경에 따라 제대로 받아들여 제대로 된 행위가 나올 수도 있고, 거꾸로 엉뚱하게 받아들여 엉뚱한 행위로 표출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야기의 핵심은 두 가지로 첫째는 듣는 사람이 위의 말을 어떤 뜻으로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이고 두 번째는 현재 우리나라의 체제와 정치에 있어 무엇이 따를만한 점이며 무엇이 허위이고 기만인가 하는 점을 개개인이 어떻게 판단하는가 하는 점이죠.

그런 구체적인 점이 충분히 거론되지 않은 상태에서 1번과 같은 일반론을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 말이 듣는 이의 심중에 뭔가 공명을 일으켰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본래 의심하고 거부해야 마땅한 기만적인 정부의 방침이나 언론의 주장에 호감을 가지던 사람이 위의 주장을 듣고 의심하여 태도를 바꾸는 경우

- 본래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따라야 하는 방침이나 주장에 대해 그를 따르려던 사람이 위 주장을 듣고 의심이 일어나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

 

크게 이 두 가지로 나눈다면 1번 주장의 결과 - 그 주장이 설사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더라도 - 국가적으로 이익이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그리고 그 주장의 영향을 받은 개개인은 그로 인해 각자에게 보탬이 되는 행위를 한 것인지 그 반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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