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과 악
선과 악이란?
손님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일은 자유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신 앞에 당당하지 않아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한다.
선악을 따지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이 말을 우리가 해석하는 방법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이 말은 인간은 모여 산다는 사실명제이지 모여 살아야 한다는 가치명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라는 편견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선과 악은 그 본래적 기반을 찾기 힘들다. 단지 생물적 본능에 의한 선과 악이 있을 뿐이다.
사자는 평소에는 자기 종족을 잡아먹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자를 보호하려는 본능이다. 그러나 먹이가 없을 때는 자기 새끼를 잡아먹는다. 그것은 자기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결국 인간이 선과 악을 세우는 기준은 그것이 본능적이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살인이 범죄인 것은 유전자 보호의 본능 때문이요,, 전쟁에서 살인을 하는 것이 합법한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philebus(장자의나비) 답변
그럼 인간도 생존을 위해서는 자식을 잡아먹어도 된다는 말씀인지....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므로 자식보다는 부모를 먼저 잡아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는 어차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자식들은 살날이 더 많으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 살을 떼어서라도 자식을 먹이려 들지 않을까요?
또는 아마 살을 떼어 자식에게 주지 않고 부모에게 먼저 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본능은 오로지 세상에 살아남는 것과 종족의 번식을 염두에 둘 뿐이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것뿐만은 아닐 겁니다.
더 고귀하고 더 거룩한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죠.
나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별 이외에는 하늘에 다른 별이 더 이상 없다고 할 수 없듯이 ...
뼈를 깎아?
2001년 말 어느 일간 신문 기사 밑에 제가 달았던 댓글입니다.
제목 뼈를 깎아?
글쓴이 팥으로 메주.
조 회 16 찬성 2 반대 0
내 이제까지 살면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코웃음 밖에 안 나온다.
말 좀 행위에 맞추어 씁시다.
그냥 "반성하고...."라고 말하고 행동을 그에 맞게 철저히 해 보여주면 되죠.
괜히 뼈를 깎는다는 둥,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라는 둥, 말을 허황되게 늘어놓고 행동이 못 미치거나 배신감 느끼게 행동하면 국민들 마음이 점점 황폐해집니다..
행동을 아름다운 말에 맞추라면 힘들겠지만, 우선 말을 행동에 맞추어, 괜히 심각하게 보이거나 아름답게 보이거나 튀는 말 하지 말고, 그냥 보통 말 하고 행동을 철저히 그에 따라 해야 됩니다.
그래야 사람들 마음이 순화 돼요.
매스컴에 종사하는 분들이 솔선해야 될 겁니다.
그리고 공무원, 정치인들도 따라 해야 할 거고............
말은 평범하게.... 행동은 말에 일치시킵시다..
허무한 인생
작성자 : 무.. 2002/01
알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란 길을 가고 있는데..
가기 싫어도 가는 길인데..
인간마다 개인적인 문제는 틀리지만, 인간마다 고통의 강도도 틀리지만..
유명한 철학자들이 인생은 결국에는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아니 종교에서도 인생은 허무하고 덧없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생이 허무해서 덧없는 것이라서 아니 이승에서의 고통을 견딜 힘이 없어서 자살을 하는지..
왜 인간은 자살을 할까요..
작성자 : philebus(후원자) 2002/01
Re: 알려주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님은 자신이 지금 제기하고 있는 문제가 얼마나 근원적이고 커다란 문제인지 충분히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저로서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답을 알려 드릴 만한 능력은 없고...
얻어들은 얘기를 해드린다면,
노년에 이르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모두 허무하고 덧없음을 느끼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의 삶이 보람 있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이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고 그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 역정에 달려있다는 거죠.
사람이 늙으면 저승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어떤 사람은 사후에 대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작건 크건 어떤 희망을 가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 성실하여 가족을 잘 보살피고, 남에게 물질적으로 빚진 것도 없고, 별다른 해도 입히지 않으며, 생을 잘 꾸려온 사람은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후회 같은 것은 없거나 적을 테죠.
그에 더하여 유달리 신앙심이 돈독하였다면 사후에 대해서도 좋은 희망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날 수도 있을 겁니다.
반면에 술에 취한 채로 성실치 못하여 가족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빚을 져서 갚지도 못한 상태로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앞에 두었다고 하면 그는 그만큼 후회와 불안과 미안함을 안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거죠.
우리는 후자와 같은 상태에 놓이기보다는 가급적 전자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 낫다는 얘깁니다.
물론 위는 하나의 예시고 개인에 따라 어떤 삶의 행적이 잘 산 것인가는 좀 차이가 있겠죠.
이것은 막연하게 생이 허무하네, 아니네 하고 따지기 전에 우리가 인생의 막바지에 가지게 될 수밖에 없는 심정에 관한 얘깁니다.
인생이 결국 허무하다고 말한 철학자도 있겠지만,
반면에 탐욕이나 게으름으로 한평생을 보낸 사람은 나중에 성실히 수행에 전념한 사람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라고 한 말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수행이라고 해서 모두가 그래야 한다기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중에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 무난히 잘 살았다고 스스로 평가할 만한 행적을 남긴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즐겁고 보람 있는 인생이란 없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또한 그런 점에서 자살은 극단적인 현실부정이며 도피죠.
타조가 적을 피하여 풀밭에 머리만 박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크나큰 착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담
작성자 : 졸업반 학생 2002/03
상담 좀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4학년이어서 그런지 대인관계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비칠지 넘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같겠죠..
저는 다른 사람들에 질문에 대답을 정석대로만 대답을 하는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넘 교과서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성의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
좀 더 성의 있는 말로써.. 친구들한테 도움을 줄까 생각을 합니다.
친구들이랑 대화를 할 때에도 눈을 보고 말을 못하겠어요..눈을 보고 말을 하면 내가 왠지 가식적인 행동으로 대하면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눈을 보고 말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표정관리가 잘 안되네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걱정이 되네요..
작성자 : philebus(후원자) 2002/03
Re: 상담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대화 시에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어딘가에 시선을 두게 되면 좋겠지만, 일부러 눈을 쳐다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요.
얘기하면서 눈만 빤히 들여다보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겁니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입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 무난하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딴 곳을 계속 보면 상대방의 김이 빠지기 쉽고, 눈을 들여다보는 것도 부담스러워질 수 있으니, 입을 보면서 말하거나 들으면 양쪽을 모두 피할 수 있다는 거죠.
상대방에게 좀 더 성의 있는 말을 해주고 싶다면, 우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첫째겠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고 나서야 그에게 필요한 답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꼭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어야 한다고 미리 다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개의 경우 상대의 말을 정신을 집중하여 잘 들어주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표시를 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후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으면 간단히 솔직하게 해 주면 되겠죠.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방황
작성자 : k군 2002/01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저의 나이 20살 실업계 고등학생입니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몇 달 후면 졸업 그리고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젊은이
꿈에 가득 차야 할 지금 저는 무너지고 있는 걸 느낍니다.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 말도 하기 싫고 짜증만 느껴지며 다른 사람과 말도 하기 싫어지는 건 왜일까요?
방학을 한 후로 집안에서만 뒹글뒹글 거리면서 자신에 대해 한탄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에게 문제가 많았다는 걸
느끼고 고쳐야 할 마음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자신 밖에 보이질 않고
졸업하면 어떤 것을 해야 하나 생각하면 막연할 뿐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인생의 선배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1.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요??
2.이런 고통스러운 인생살이에 죽음이 편안한 것 아닐까요?
3.인간은 무엇 때문에 살아야 되나요?
인생의 선배 분들 답변 부탁드리고요. 참고로 죄송하지만 틀에 박힌 답변은 말아주세요. 좋은 말은 많이 알고 많이 들었으니.
philebus(후원자) 답변 2002/01
Re: 살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k군이 알고 있는 좋은 말 외에 다른 어떤 말을 원하는지 모르겠군요.
인생이 어떤가 하는 것은 아마 나이가 들어야 조금씩 깨닫게 될 겁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힘들게 일도 해보고, 작은 즐거움들과, 그에 따르는 노력, 그리고 어떤 때는 고통과 슬픔도 당해보고 나서야 서서히 알게 될 거란 말입니다.
거기에 공부나 심신의 수양과 같은 노력도 낄 수 있을 테고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말이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성향과 능력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k군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어떤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의 능력은 어느 정도이며, 이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하면 나에게 알맞을지, 또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나의 능력을 개발하여 향상할 수 있을지, 그래서 나에게 알맞은 일을 택하여 즐겁게 일하고 건전하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성향과 능력에 어울리는 일은 그렇지 않은 일보다 훨씬 즐겁게 수행할 수 있는 법이죠.
그리고 자신에게 맞는 평생의 취미를 가지도록 권하고 싶네요.
등산이나 낚시나 시를 쓴다든가, 음악이나 아니면 바둑이라도 말이죠.
갑자기 찾아온 우울증은 본인이 정신을 집중해서 잘 생각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현재의 불만이 무언지 정확히 집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위의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죠.
그래서 그 원인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죠.
패기를 가져야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친밀한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도록 하세요.
어떤 소외
손님
..
남이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다고 가정합니다.
인간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지요..
능력이 없는 사람은 인간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 똑같은 사람인데.
과연 인간 세상에 평등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존재하는지 물어보고 싶고요.
philebus 답변
Re: ..
따져 보자면, 그 능력에 한정해서 존경하고 다시 보는 것이겠죠.
잘 달리는 사람은 그 달리는 능력에 대해 존경하고 다시 보는 것이겠고,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은 그 연주 능력을 존경하거나 부러워하는 것이겠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그 말 잘함에 대해 존경하는 것일 테죠.
돈을 잘 버는 사람은 그 돈 버는 능력을 존경하는 것일 테고요.
원래 모든 게 그런 것 아닙니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사실 현실에서 사람들을 보면 위와 같이 꼭 그 부분에만 한정해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만 잘하면 그의 모든 인격이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우러러보지만, 그런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인간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면 그런데 너무 구애받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님 자신이 그런 분별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가능한 신경 쓰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또 평등이니 진정한 자유니 하는 거창한 개념에 매달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고요.
인간의 善
작성자 : L
사람들은 본래 선할까요..악할까요..
어떤 이는 선하다고..
어떤 이는 악하다고 말하더군요.. 이들은.. 정말로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걸까요?
저는 인간이 선한지..악한지 모릅니다..
인간의 천성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는 없는 것인가요?
philebus 답변
Re: 사람들은 본래 선할까요..악할까요..
이런 논의는 좀 의미가 애매한 구석이 있습니다.
사람이 본래 선하다, 악하다고 말할 때 본래라는 말은 아마 태어날 때를 가리키는 말일 테죠.
그렇지만 또 다른 의미로도 쓰일 수 있습니다.
신화적인 얘기지만 원죄 이전의 순수한 존재를 가리켜 본래라고 말할 수도 있고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또는 도달해야 할 그런 상태를 염두에 두면서 본래라고 쓸 수도 있죠.
그럼 인간은 선하다고 해도 될 테죠.
반면에 날 때부터 뚜렷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존재를 보고, 인간은 악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날 때부터도 그렇지만 더 나아가 인간은 아무리 죽을 때까지 애를 써도 악한 티를 말끔히 벗을 수 없다는 의미로 본래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이건 좀 끔찍한 얘기일 테고요.
선하다, 악하다는 말의 의미는 달리 또 따져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중이 이해하는 개념 정도로 생각해 두죠.
이미 붓다나 공자나 예수나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이 있었으니 죽을 때까지 애써도 역시 악하다는 말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중요한 것은 완전히 착해진다 라기보다 얼마나 착함에 가까이 가게 되는 가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완전히 깜깜한 어둠보다는 희미한 달빛이라도 있는 편이 낫고, 달빛보다는 석양의 어스름이라도 햇빛이 낫고, 그보단 대낮의 광명이 낫겠죠.
(위 비유는 착함이 지혜로운 것이라는 관점에서 든 것입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하여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애쓰고 결과 조금이라도 그쪽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본래 선하든 악하든, 그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든 안 되었든, 실존으로서의 인간이 갈 길은 역시 빛이 있는 방향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 본래 악하다고 증명되었다고 한들 어쩔까요?
그 악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과 행복
작성자 : L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글을 작성하고, 이 게시판에 있는 글들 중 몇 가지를 읽어 보았습니다.
좋은 글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글들을 읽던 중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살아가는 것에는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두 가지 중 한 가지만 존재한다면 아무것도 없는 "무"가 될 거라는..
이 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럼, 고통 없이 행복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는거죠?
전.. 알고 싶습니다.. 미치도록.. 그것도 아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알려주세요..
어째서.. 고통 없이는 행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인가요?
어째서 악이 없이는 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악이 없다면.. 고통이 없다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단어가 없고, 사람들이 자신이 악한지, 착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라도 그것뿐.... 단지 그것뿐이지 사람들은 행복한 거 아닌가요? 저는 인정하기 싫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아요.. 고통 없이 행복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저는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입니다. 단지 관심이 있을 뿐.. 알려주세요.
위에서 말한 고통과 행복 중 1가지만 존재한다면 "무"가 된다는 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로서는.. 너무나도 궁금합니다.
philebus(후원자) 답변
Re: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L님의 이의제기가 이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란 아마 통상적인 즐거움이나 쾌락일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대개 고통을 수반합니다.
배고픈 고통이 있고서야 먹는 즐거움이 있고, 추운 고통이 있은 뒤 따뜻함과 안온한 즐거움이 있고, 괴로운 육신의 노고가 있고 나서 휴식의 즐거움이 있죠.
위와 같은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말한다면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말이 맞죠.
단, 매사에 긍정적이며 적극적이고 패기 있는 사람들은 행복 이전의 노력이나 인내를 고통으로 생각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소위 참된 행복, 참된 즐거움을 말하기도 합니다.
위에서 말하는 범속한 행복을 행복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거죠.
또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는 말은 맞지만, 반대로 행복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고 해도 됩니다.
불교의 지향점과 비슷해지는 거죠.
억지로 행복해지려 하지 않으면 고통도 없습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이란 그러한 무 행복, 무 고통으로부터 어떤 다른 길을 선택하는 데 있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참된 행복이란 것이 아마도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눈을 빛내면서 상상하는 신기한 것도 아니고, 매우 무덤덤한 중에 어떤 미묘하고도 작은 마음의 움직임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 입문
2003년 philosophy.co.kr 게시판에 올라왔던 어떤 학생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사르트르
철학을 처음 접하면서,,
안녕하세요. 전 요번에 고1에 들어가는 학생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철학을 처음 접하게 돼서
요즘에는 부쩍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철학책을 자주 읽습니다,
하지만 아직 너무너무 많이 모자랍니다.~~
부디, 여기서 다른 사람들과 자주 논했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제 또래와 주위에는 철학적 얘기만 꺼내면
왕따 당하기 쉽거든요;; 말도 안 통하고,, 고등학교에 가면 나아질라나 모르겠습니다,
▣붉은 마르크스 광장의 피를 흘리는 낫과 망치`,`▣
이 말 참 좋은 것 같네요, 마르크스의 그런 사회주의적인 뜻도 있지만 암턴 철학은 한마디로 넘 멋있습니다..ㅎㅎ
philebus 답변
Re: 철학을 처음 접하면서,,
반갑습니다.
어린 학생이 대견하군요. 왕따 당하면서도 철학을 존중하다니...
여긴 입문에 통과 의례가 있어요.
뭐냐 하면 먼저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소개하는 일입니다.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면 여기 있는 분들이 그에 대해 도움말을 많이 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사르트르 님의 말 중 다음 부분에 대해 보충 얘기 좀 해보세요.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읽은 책들은 무엇 무엇인가?
--어떤 부분에 대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가? 반면에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붉은 마르크스 광장의 피를 흘리는 낫과 망치" 구체적으로 이 말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가?
--철학의 어떤 면이 넘 멋있다고 생각하는가?
잘 쓸수록 사르트르 님은 여기 있는 분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그럼 이만.
PS. 말미에 있는 ㅎㅎ 은 하하 인가, 흐흐 인가.
생활에 적합한 인간?
philosophy.co.kr 인생 상담 란에 올라왔던 글에 대한 답변입니다.
질문 학생
살아가는데 적합한 인간
어떤 인간이 되는 것이 살아가는데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데 좋을까요?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판단만을 하는 인간이 좋은 걸까요? 어떠한 인간이 되는 것이 세상사는 데에 좋을까요? 자신과, 자신과 관계된 자들만을 위한 인간은 어떤 존재가 가장 편할 수 있을까요?
답변 후원자(philebus)
Re: 살아가는데 적합한 인간
절대적으로 이성적인 판단만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어렵겠지만 있다 해도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 가장 훌륭한 삶을 산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성적이거나 지혜로운 사람의 장점은 대체로 무지로 인한 악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로 인한 악을 피한다는 것과 좋은 생활을 한다는 것, 즉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까다롭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뛰어나게 이성적인 사람보다 평범한 노동자가 더 행복한(좋은) 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이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고, 단지 조금 더 헤아릴 수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이성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죠.
평범한 노동자라도 좋은 배우자를 얻어 마음 맞춰 살고, 둘 사이의 아이들은 건강하며 예의 바르고, 사는 동안 별다른 우환이 없어 걱정거리가 없다면.....
특히 그들의 욕심이 적어 주어진 것으로 항상 만족하고 있다면 그건 행복한 삶이겠죠.
반면에 이성적인 사람은 그의 맑음 때문에 주변의 질투를 사기도 쉽고,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꼭 하는 일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죠.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아는 고로 인생에 큰 실패는 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가 최상의 생활을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최상의 것은 이성보다는 조화나 원만함, 자족과 균형감각 등에 있는 것 같네요.
물론 그렇다고 이성적인 것이 결코 나쁠 것은 없고, 그 가치는 역시 훌륭하다고 해야겠죠.
어떻게...
작성자 : 夢人
어떻게...
역경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꿈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저 자신이 너무나 작아진 듯싶기만 하고 저 자신이
초라한 듯 보여 자꾸 소심해 지려 합니다.
스스로를 다스려 평정심을 생활 속에서 찾고 싶습니다.
도움 될만한 말씀 남겨 주세요!!
작성자 : philebus(후원자)
Re: 어떻게...
게시판을 보면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습니다.
과거의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사에 지배당하여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죠.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 때 눈, 코, 입과 같이 중요한 기관들을 머리의 앞뒤에 나누어 배치하지 않고 한쪽으로만 몰아둔 것은 그쪽을 (즉, 앞쪽을) 더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대체로 전면을 바라보고, 거기 보이는 사물을 판단하며, 앞쪽을 향하여 걷고 행위하는 것이 자연스럽도록 만들어졌다는 거죠.
이런 점은 비단 육체적인 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일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이치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이 현실과 미래를 바라보고 내일을 향하여 걸어 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과거에 매이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며 이치에 거슬리는 일이 되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세상일은 본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해석하기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하게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따져보면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생각될 수도 있고,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하는 하층민이라도 순수하고 고상한 본심을 지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반대로 자신을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잘못된 생각일 가능성이 많은 거죠.
그리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과거라면 깨끗이 잘라내는 것이 마땅할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게임일지도...
2002년 philosophy.co.kr 게시판에 올라왔던 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작성자 : 1490
단순한 게임일지도...
그래요, 그럴지도....
가끔씩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게임 속의 가상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진짜의 나는 단순히 가상게임을 즐기는 어떤 다른 생명체 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이 게임에서 죽은 뒤 눈을 뜨면 내 앞에 펼쳐질 세계가 환상적인 유토피아 일지도 모른다고.
진짜 세계에서는 이런, 게임--(그러니까, "가상 세계를 몸소 체험한다." 라는... 물론 진짜 세상에서의 기억은 지워진 채) 이 유행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진짜 세계에서의 나는 호기심이 많은 생명체로, 유행하고 있는 게임이 어떤 건지 궁금해서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릅니다.(어쩌면 당신들도 이러한 진짜 같은 게임 속에 빠져서, 이것이 게임이란 걸 인식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죠.)
기대하며, 또 기대하며, 어떤 게임일까. 한번 해보자.
그런데, 막상 게임을 하고 보니까. 즐겁지만은 않다는 겁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합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정말 평화롭고 행복한 삶인데, 왜 단순한 게임 하나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는 건가.
뭐,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너무나 평화로워서 가끔은 자극적인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빌어먹을 게임에 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라면, 이 정도의 불행을 겪었으면, 이제 더 이상의 고통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바라는 만큼 충분히 자극이 됐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제...게임은 지겹습니다. 이제, 그만 게임을 끝내고 싶습니다.
다시....돌아가고 싶습니다. 정말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세상으로.
제발....지금 이 모든 것들이, 단순한 게임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발....
ps.
혹시, 이 지겨운 게임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작성자 : philebus(후원자)
Re: 단순한 게임일지도...
1490님의 말씀이 진지한 것이라면 현실세계를 게임으로 보건 실제상황으로 보건 평생을 통하여 행위의 일관성은 유지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살이를 단순한 게임으로 본다면 이 세상에 정말 목을 매고 애타게 구하여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참된 의미에서 좋은 것이란 이 세상 어디에도, 무엇도 없을 거란 말씀이죠.
죽고 나면 게임 끝이고 그럼 전혀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거나 아무것도 없거나 할 테니 말입니다.
무엇을 열심히 하다 잘 안 돼도 크게 절망할 일도 없습니다.
허허 웃고 나면 그만일 수도 있죠.
아주 기쁜 일이 생겼어도 거기에 완전히 마음을 뺏길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게임 속의 재미일 뿐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일관되게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인생은 단지 게임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님의 글을 보면 이유는 모르지만 생의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말하자면 님은 입으로 세상살이가 게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 게임 속의 상황에 매몰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입으로 말하는 내용은 단지 희망사항이 될 테죠.
아마 영화나 SF소설 따위의 영향으로 생이 단지 게임일지도 모른다는 구체적인 도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요.
제 생각은 설사 인생이 연극과 같은 게임일지라도(아닐지도 모르고) 그 사실을 나 자신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으려면 그렇게 단순하게 말로만 듣거나 되뇌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삶의 경험과 그 안에서의 깊은 통찰과 배움 등이 어우러져 멀리 우회하여 긴 여정을 따라가 보지 못하면 그리 쉽게 깨닫게 되지 못할 거란 생각입니다.
그러니 현재로서는 용기를 내어 뭔가 지금의 문제를 파악하고 힘이 닿는데 까지 해결해 나아가봐야 할 것입니다.
의식이 행동보다 현학적으로 앞서 나가면 방향감각을 잃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학자에의 꿈
작성자 : 미닝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흑흑...
저는 대학 때는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에 자신이 생기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을 왔습니다. 학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과를 철학과로 바꿔서요...._
그런데 요즘 저는 제가 지금까지 앎을 위해서 공부한 게 아니라
장학금을 타고 남보다 잘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단지 무엇을 알았다는 것에, 책을 읽는다는 것에 푹 빠져
책을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논문도 써야 하는데 통 책이 마음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좋은 스승이 되고 싶기도 하구요.)
진정한 앎에 열정을 가지지 못하는 제가 학자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성자 : philebus(후원자)
Re: 저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흑흑...
학자와 스승을 겸하려면 잘 알아야 할 테죠.
음악을 남에게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 싶다면 음악에 정통해야 합니다.
미술도 마찬가지고, 건축이나 공학도 그렇습니다.
문학도 역시 그렇습니다.
문학사를 가르치려면 글자가 생긴 이래로 글로 써진 작품들의 내용과 흐름을 잘 알고 있어야 하겠고요.
작품 창작에 대해 가르치려면 사람들이 어떤 표현에 대해 어떤 감동을 받고 그로 인해 어떤 작품은 뛰어난 것이 되지만 어떤 작품은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하겠죠.
아무튼 스승이란 가르치고자 하는 사물에 정통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님처럼 철학을 공부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고자 한다면 무엇에 정통해야 되겠습니까?
철학사를 가르치려면 위 문학에서처럼 모든, 또는 특정 철학사조와 사상에 대해 그 내용과 관련성을 꿰뚫고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외 철학에 있어 뭔가 나머지 부분이 있어 그것으로 만약 다른 이를 가르칠 수 있다면 그게 뭘까요.
아마 님이 진정한 앎이라고 말하는 그것일까요?
그런데 그런 게 있는지도 분명치 않고, 있다고 해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도 불분명합니다.
당장에 뭐라고 단언하기는 어렵고 시간을 두고 님이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언지 생각을 한 곳으로 모아 잘 살펴 진로를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 | 2024.03.26 |
---|---|
욕망의 원래 위치는... (1) | 2024.02.14 |
영원한 사랑? (1) | 2024.01.12 |
세 가지 질문 (2) | 2024.01.08 |
생명 이야기 (1) | 2023.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