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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

불교경전연구회에서 1

아래는  예전 하이텔 불교경전연구회에 올린 저의 질문에 대해 몇몇 회원분과 함께 나눈 의견들입니다.

philebus

안녕하세요?

동호회들을 둘러보다 보니 불교경전연구회가 있어 여기서
많이 읽고 배울 수 있겠다 싶어 기쁜 마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흔한 기준으로 하면 무종교인데 불경이 좋아 자주 읽는 사람입니다.
많이 읽지는 못했고요, 아함경이나 숫타니파아타, 법구경과 같은 초기경전이 좋아서 좀 읽었습니다.
능엄경과 유마경, 미린다팡하도 제겐 좋더군요.

마침 게시판 중에 질문 난이 있어 제가 경을 읽다 떠오른 질문을 드릴까 하는데 괜찮을 지요.

미린다팡하(현대불교신서, 서 경수 역 1987년도 문고본 72)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더군요.

7. 윤회에 관하여

왕은 물었다.
"존자여, 그대는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까? “
"대왕이여, 그만 둡시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나는 이미 '죽을 때 만일 생존에 대한 집착을 갖는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요, 집착을 버린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

"비유를 들어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왕의 정무를 처리한다고 합시다.
왕은 그에게 정무를 맡길 것입니다. 그는 왕의 정무를 수행하는 동안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부여받아 그것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임금은 어떤 정무도 처리하시지 않는다.'고 여러 사람에게 공언했다고 합시다. 왕은 그 사람이 옳게 말했다고 하겠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같습니다. 그런 질문을 다시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는 벌써 '만일 죽을 때 생존에 대한 집착이 있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이요, 집착이 없다면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존자여, 그대는 진작 말씀하였습니다. “

이상이 윤회의 주체에 관해 왕과 나가세나 존자 간에 질문과 응답이 끝나고 바로 왕이 존자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날 것인가 하고 묻고 존자가 그에 대해 대답한 대목입니다.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바는,

미린다팡하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당시 서양의 지성이었던 왕의 질문도 날카롭기 그지없지만 시종일관 비유로 그에 응답하는 나가세나 존자의 답변도 질문의 의도를 적중하여 핵심을 찌르는, 그야말로 감탄할 만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유독 위에 인용한 질문에 대하여는 나는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라거나 또는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는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왕과 그의 정무를 맡은 사람을 등장시켜 우회적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마치 현재의 그로서는 그러한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는 듯이…….
사안의 미묘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답변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자신의 미래에 관해 묻는 질문이므로 아마도 존자의 답변은 현명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만일 석가모니께서 당시에 살아있어 왕으로부터 그러한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답변하였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숫타니파아타와 같은 초기경전에서 보여주는 깨달은 자의 기개와 박력이라면 아마도 다음과 같이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대왕이여, 나는 내 마음속의 욕망의 불을 모두 꺼버려 이미 다 타고 남은 재와 같이 평온하게 되었습니다.
지혜는 완성되었고 무명의 인연은 모두 끊어져 저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고요.

그런데 나가세나 존자는 그런 식으로 답변하지 않았지요.
그것은 완전한 각자인 부처님과 단지 훨씬 뒤 세대에 나타난 높은 학식을 지닌 고승이라는 차이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질문을 받은 부처님도 역시 나가세나 존자와 같은 종류의 답변을 했을까요.
어쨌든 하필이면 다른 비유가 아니라 왕과 그의 정무를 처리하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존자의 답변은 마치 자신의 사후의 일에 대하여 어떤 권위 있는 다른 선량한 존재(비유 속의 왕과 같은)의 결정이 필요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른 종교의 신자가 만일 그와 같은 답변을 했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불교는 통념상 주체성이 강해서 기본적으로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걸로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존자의 답변은 조금 의외로 들리는 거죠.

저의 궁금한 점을 요약하면,

첫째, 존자의 비유 속에 들어있는 왕은 무엇(누구)을 의미하는 것인가.
둘째, 왕의 정무를 맡은 사람은 무엇(누구)을 의미하는 것인가.
셋째, 왕과 왕의 정무를 맡은 사람은 본래 어떤 관계에 있는가.
넷째, 정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부여받아 그것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상입니다.

제가 질문을 던진 미린다 왕처럼 총명하다면 존자의 답변을 단숨에 알아들었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아둔하여 이처럼 문의를 드립니다.

답변 주시는 분께 감사드리고요.

모두 언젠가 부처님과 같이 되시길 기원하며 이만 안녕히…….

philebus 드림.

**
제 목 : [답변/#121]

* 눈엔 *만 보인다더니…….
질문을 보니 눈이 화들짝 떠지네요.

고거요.. 유식학 보면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유식학은 불교철학의 한 파트인데(아마 4c경에 완성?),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요즘 들어 재조명되고 있음) 엄청 매력적인 학문(?)....
음..저 같은 괴짜한테만 그런가..^^

유식학을 깊이 있게 알진 못하지만 오래 동안 관심을 가져온 터라, 질문을 보니 제 머릿속이 컴터처럼 휘익~~돌아가네요.
무척 반갑고요~~

왕이 뭔지, 왕이 정무를 맡긴 사람이 무언 지는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 있읍니당~~

왕은?
답)제8식, 심왕식이라고 일컫는 아뢰야식을 말합니다.

정무를 맡긴 사람은?
답)제7식, 마나식을 말합니다.

일체종자식이라고도 말하여지는 아뢰야식은 수태되기까지 작용을 하지만, 수태된 이후는 7식을 산출, 모든 임무를 맡겨 버리지요.
현대 심리학의 표현으로는 무의식(8), 잠재의식(7)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6식은 의식을, 전 오식은 오감을 말한답니다.

애고..지금 간단히 설명은 못하겠고요…….
저도 더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이고…….아마 정식으로 답변하자면 가히 논문 한편은 되지 않을까 싶네요..더 정리해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말씀드립지요.

우선, 책 한 권을 추천할게요.
<불교임상심리학> 불광 출판부--
유식학 입문서라고도 말하는데,<유식30송>에 대한 해설서예요..
유식30송이란 책이 간결하지만 무지 어려운 책임…….옛날 중국에 법상종이란 종파를 탄생시킬 정도로~~~

암튼 유식학에 관심을 가져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나가세나 존자의 대답이 참말로 현명하네요(좋은 말로 하믄...).skillful 한 거죠. ..(요즘 영어 공부를 좀 했더니만 영어가 술술~~헤)

philebus

제 목 : [의견] 답변에 감사……. 그러나

안녕하세요?

아래 답변을 주신 성의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아뢰야식인가, 또 무슨 식인가 하는 내용을 보니 겁이 더럭 나네요.
얼마나 오묘한 이론인지 몰라서요.

유식론에 입문할 것을 권해주시고 , 또 책까지 추천……. ,

웬만하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번 책을 찾아 읽어보겠습니다. 하고 끝내겠는데요.

이곳이 진리를 탐구하는 동네고, 성스러운 곳이라 제 의견을 그냥 솔직히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저는 사변에 속하는 글, 또는 기계적인 설명에 그치는 글, 특히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고 전문적이고 생경한 어휘가 포함되어 있는 글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과학 기술서적은 예외)

그것이 현재로는 궁극적으로 참된 지식 획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인데요, 그 이유는,

첫째 지극히 세밀한 분할과 검토가 요구되는 사물에 대하여 그 충분한 검토 없이 의미(어휘)가 부여되거나 또는 그 어휘가 지시하는 대상 사물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인데도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고정된 의미(어휘)를 부여하므로 써 기본 어휘의 의미 정의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론이 전개되어 그 전체가 마치 바닷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기초가 부실해지고 따라서 쓸모없는 이론이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고요,

둘째 일상적인 언어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하며 계속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단단히 각인되어 그러한 언어로 성립된 비유나 논증은 누가 듣더라도 그 논리성과 합리성을 올바르게 따질 수 있어 속거나 오류에 젖는 일이 덜하지만 생경한 어휘로 구성된 이론은 겉보기에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그 어휘 의미의 불분명함이나 또는 독자가 그러한 어휘를 접해본 기간이 짧아 그 뜻이 충분히 마음 깊이 와닿지 않아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 누군가가 체험이나 사유로부터 우러나 평범한 일상 언어로 만들어진 절실한 물음을 제기했다면 답변도 역시 그와 같이 평범한 일상어로 된 비유나 논증이 되어야 질문자의 가슴깊이 새겨질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생경하고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한 이론을 제시한다면 설사 그 이론이 어느 정도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듣는 이는 그게 그런 건가 보다 하는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기 마련이지요.

셋째 이것은 매우 유의해야 될 일이지만.
위에서 말한 사변적인 이론은 그것을 공부하는 사람을 지적오만이나 허영에 빠뜨리기 쉽습니다.
실제로는 그 사변이 취급하는 대상 사물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는데도 스스로는 매우 잘 안다고 믿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것은 정말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서양철학에서 보더라도 서양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플라톤이 제기한 여러 가지 기본적 이데아, 즉 있음이라든가, 같음, 다름, , 작음, 움직임, 정지, 아름다움, 선과 같은 개념들이 그 자체로써 무엇인가 하는 정의는 아직도 확립된 게 없는 형편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용어들을 바탕으로 하는 사변은 무수히 나와 있는 거죠.

위와 같은 이유로 저는 불경을 읽더라도 일단 부처님이 직접 했다고 전해지는 말들을 모아놓은 경전을 초기의 것부터 먼저 읽고 있습니다.
거기엔 평범한 말로 된 알기 쉬운 비유와 논증이 있지만 반복해서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볼만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어 있거든요.

아마도 유식론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현재로서는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군요.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일단 놔두고 다른 면에서 생각을 하다가 마주칠 때를 기다려 봐야겠네요.
마치 양쪽에서 터널을 뚫어가다가 중간에서 마주치는 것처럼요..

어쨌든 답변에 감사드리고요,

훌륭한 아이디 이름처럼 노력을 많이 하시는 분 같은데요.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신다면…….
아마도 진리에 통달하는 것도 인연이 있다면 가능하겠군요.
왜냐하면,
진리에 통달하여 남에게 훌륭히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그 방향은 다르지만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외국어에 능통하려면 異國의 문화와 풍속, 언어를 잘 알아야 하고, 남에게 잘 말할 수 있으려면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진리도 역시 통달하려면 참된 이치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오묘함을 알아야 하고, 남에게 말해줄 수 있으려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알기 쉬운 예를 들면 비유지요.).

말하자면 진리에 통달하는 것을 실체라고 한다면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은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어에 능통하다고 해서 진리를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겠고요.
둘은 속성상 유사하지만 그 본질과 기능은 전혀 다르죠.
진리에 통달한다면, 현세에서나 내세에서나 또는 다른 어디서라도 그에게 한없는 유익함을 가져다주겠지만 외국어에 능통하다면, 현세에서 그의 몸을 위한 여러 가지(금전, 명예, 즐거움, 성취감 등)를 얻는데 그치겠지요.
하나는 본질적으로 참된 것이지만 하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요.

쓸데없이 길어진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양해하시고요.

이만 안녕히…….

philebus 드림

**
제 목 : [#123] 맞습니다…….바로 그것이…….

맞습니다. 바로 그것이 최대의 과제입니다
말씀하신 그러한 것이 아마 불교계 전체의 과제이기도 할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유식학의 성립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사변적인 이론으로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부처님의 교설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 후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철저한 선정체험을 통해 이를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현학적인 면이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체험적인 검증이 퇴색할 때면 사람들은 이론에 매달리지요…….
그것이 부파불교에 속하는 구사론과 대승불교에 속하는 유식론의 분기점입니다

근데,
이건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유식학에 대한 약간의 개념이나마 가지지 못한다면 불교 전체가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조차 짐작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현대인..논리적인 것이 아니면 수용되지 않는 사고구조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고기를 잡으려면 어망이 필요하다..이미 고기를 얻은 다음에는 어망이 필요 없지만..

첨부터 어망이 필요 없다고 하면?

음..제 얘기를 조금 해야겠군요.
제가 불교에 관심 가진 지는 20여 년이 넘는데…….유식학을 접한 몇 년 전부터 아..불교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이런 것이구나..하는 감이 오더군요.
그러고 나서보니 웬만한 고승들 치고 유식을 거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는 형국이고…….

그러나 현란한 용어를 버리고 쉽고 평이한 언어로 승화(?)되는 데는 많은 고뇌…….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첨에 질문하신 내용이
나가세나 존자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제 생각으로는 유식학의 개념들을 가지고 있으면 그런 말들이 나온 차원이 이해가 된다는 거지요

그러나, 삶 속에서 새로운 개념들의 요구가 절실할 때 이루어져야 갰지요. 마는..

감각, 의식. , 마음…….이런 것에 대한 대대적인 탐구가 유식학입니다.

너무 긴 말을 하는군요..
다음에 또 얘기하도록 하지요

*
제 목 : [123] 글을 보고 ……. 한 생각

님의 글 잘 봤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님께서는 나름대로의 세계를 그려 가고 있고
그렇게 체험으로 살아가는 듯합니다.
님의 말씀 전부 틀리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 글을 읽으며 생각된 것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말씀이지만
말씀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말씀이어서
살아나려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는 것입니다.

결집 되어지는 그 자체에서부터 수 천 년을 지나오면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지금 우리들의 손에 들려진 말씀들은 상당히 오염되고 껍질이 두껍게 덥혀 있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 생각하면 말씀 자체가 오염되었다고 또는 말씀이 아니라고들 판단 내지는 결론짓는 오류를 범하는데요.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지 못하는 그 어떤 것으로 가리려고 해도
가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말씀은 그 자체로 살아있기에 우리들 중생들이 스스로 살아나려는 노력과 살아있는 정도에 따라 같은 경전이라도 다르게 보인다는 데 주목을 해야 합니다.

님께서 무엇을 질문하셨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질문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경계를 내어놓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 경전 방에는 님께서 필요로 하는 그와 같은 행을 하는 분 역시 충분히 있습니다.

상당히 논리적이신 님께 복이 있으시길…….

*

philebus

제 목 : [답변] 두 분의 말씀에 대해…….

두 분의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먼저 여**님의 의견에 대해 답변드리겠습니다..

불교 전체가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알려면 유식학에 대해 약간의 개념이라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물론 그 말씀이 맞죠. 불교 전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려면 요.
하지만 저는 일단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땐 다른 사람의 말이 필요치 않다는 생각입니다.
반면에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거나 미묘한 점이 있어 부연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 다른 고승의 말씀이 있으면 참고하려고 합니다.

미린다팡하는 비록 부처님의 말씀은 아니지만 그 내용이나 전개방식이 제 취향에 맞아 읽었고, 읽고 나서 떠오른 의문을 질문드린 거지요.
만약 나가세나 존자에게 질문을 드렸다면 아마도 무모한 질문을 한다고 질책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약 더욱 진지한 태도로 질문한다면 어쩌면 답변을 제게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때 답변의 형식은 아마도 미린다 왕에게 한 것처럼 길어야 한 두 쪽이었을 테지요. 새로운 전문용어를 만들어가며 논문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 말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고요, 그러한 짤막한 답변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가지고 이 게시판에 질문을 드렸던 것입니다.

20년 이상을 불교 공부를 하셨다고요.
그러고 보니 여**님의 말씀에 대해 제가 반론을 편 것은 마치 군대로 따지면 새까만 훈련병이 훈련장교가 내미는 교범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거부한 꼴이 되었네요.
혹시 언짢으셨으면 미안합니다.

다음은 선*님의 말씀에 대한 답변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말씀이어서 살아나려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고 하셨고요, 그 이하는 부연해서 설명하신 듯합니다.
미안하지만 저로서는 그 의미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이든 누구든 무언가 말씀을 한다면 어떤 한 가지에 대해 말씀하는 것이 아닐까요?
애매모호함을 장기로 하는 문학작품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그 한 가지 의미를 두고 보는 사람마다 달리 해석하는데 그것이 모두 옳다면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아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니, 혹시 다른 어떤 의미가 있다면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글을 읽을 때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쫓아가려는 버릇이 있지요.
사람들 중에는 행간을 읽는다고 하면서 문장 중에서 뭔가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사람도 있고, 또 자신의 글을 그런 식으로 해석해 주길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와는 반대지요.
저는 소위 행간을 읽기 시작하면 토론이 엉망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글 전체를 읽고, 글의 내용 중에는 없는 독후감상을 말할 때도 그럴 가능성이 있고요.
오로지 상대의 글을 문자 그대로 따라가면서 조목조목 찬성하거나 반대하거나 질문하거나 기타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 토론을 성공으로 이끌고, 따라서 서로에게 유익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기보다는 먼저 자신의 경계를 내어 놓는 것이 어떨까 하셨는데요,
그 말씀도 저로서는 의미를 모르겠네요.
저는 무종교인으로 불경에 관심이 있어 이러저러한 경전을 읽은 적이 있다고 서두에 말씀드렸었지요.
그리고 읽은 경전 중에 의문이 있어 질문드린다고 했고요,
질문은 가급적 그 의미를 명확히 드러낼 수 있도록 작성했지요.
제가 드렸던 말씀 중에 거짓은 없습니다.

말씀하신 뜻은 아마도 저의 신상명세를 밝히라는 얘기인가요?

그리고 이곳에는 제가 필요로 하는 그와 같은 행을 하는 분 역시 충분히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건 또 무슨 의미인지…….
저는 가능하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고요,
그 외 다른 점에 대해서 이곳 구성원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한 적은 없습니다.

너무 못 알아들어서 미안하네요.

이만 안녕히…….

philebus 드림.

**
제 목 : [#126] 언어란 것이..

글을 읽다 보니, 언어란 것이 뭔지 참 묘한 생각이 드네요.
좋습니다..제가 전해야 할 얘기만 하지요

제가 20여 년 운운한 것은..그만큼 오랫동안 방황했다는 뜻이지, 결코 고참이니…….하는 의미로는 추호도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혀둡니다.
저는 사춘기 무렵에 부처님 말씀에 뭔가 메시지가 있다고 직감했습니다.
그러나 찾아 헤매도(출가까지 한 적이 있지요) 궁극적으로 그 메시지가 뭔지를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몇 해 전 유식학을 접하고부터 그 메시지가 뭔지를 포착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나에게 누가 미리 이런 조언을 해 준 사람이 있었다면..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들더군요.
그런 의미에서의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첨의 질문이 나가세나 존자의 말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가요?
존자도 그런 비유를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었겠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 비유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지요?
저는 다만 제 자신이 약간의 유식학적 개념을 가지고 잇기 때문에, 존자의 그 말이 잘 들렸다는 얘기를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뿐입니다.

그럼..합장

philebus

 

제 목 : [답변128] 서로에 대한 이해.

말씀을 보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년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였다니 잘 알겠습니다.

저는 나가세나 존자의 말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는 것은 아니었고요.
그의 말이 미묘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한 현명하게 생각된다고도 말했지요.
단지, 어렴풋이 그러려니 하고 희미하게 아는 것을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질문을 드렸던 것이지요.

만일 여**님께서 어떤 언어로든지(일상어든, 비유든, 유식학의 이론이든) 보통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구성으로 제 질문의 요지에 합당한 답변을 주셨다면 저는 그 답변을 기쁜 마음으로 읽어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질문할 것은 질문하고 반박할 것이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 말하자면 저는 누구든 그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사상(말로 표현할 수 있는)과 교류하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님의 호의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관련 책을 읽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는 생각으로 추천하신 거고 저는 그러한 책을 읽더라도 궁극적인 의문은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며, 오히려 의문이 더 커지거나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지요. 그 이유는 기왕에 몇 가지 말씀드렸고 여**님께서도 그러한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피차의 입장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드러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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