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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회상 5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 데 있어서도 바로 이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자신에게 무슨 천한 일이 있었다면, 악인(惡人)이라 생각한다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은 언제나 사려 깊은 언행을 행하고 있는데,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악덕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 어찌하겠다는 말인가.

그렇다고는 하지만 자신은 무엇 하나 착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그들이 착한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칭찬하거나, 이와는 달리 비난당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크리티아스가 에우튀데모스를 사랑하고, 그를 유혹하여 육체를 향락하는 호색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특별히 훌륭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은 애인에게 흡사 거지가 물건을 구걸하는 것처럼 애원하고 간청하며, 더구나 좋지 못한 것을 구걸한다는 것은 자유인(自由人)답지 못하고, 군자가 행할 일이 못 된다고 그는 제지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크리티아스가 이러한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품행도 고치지 않았을 때, 소크라테스는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특히 에우튀데모스도 있는 자리에서 아무래도 크리티아스는 돼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돼지가 돌에 몸을 비비는 것처럼 저 자는 에우튀데모스에게 비비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크리티아스는 소크라테스를 증오했다. 그래서 카리클레스와 함께 삼십 집정(三十執政)13)의 한 사람이 되어 법률 제정에 참여했을 때, 이 일을 기억하고 있었던 그는 법률 가운데 말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금함이라는 한 항목을 삽입하였다. 이것은 소크라테스를 비난하려고 해도 비난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일반적으로 학자들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그에게 뒤집어 씌워서 민중의 악평을 사게 하려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도 소크라테스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또 누구든 이를 들었다고 말하는 자를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얼마 가지 않아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것은 삼십 집정들이 시민의 다수를, 그것도 결코 쓸모없는 자가 아닌 많은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고, 또 많은 사람들을 불법한 행위에로 선동하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소크라테스가 소를 치는 사나이가 소의 수를 감소시키고 질을 저하시키면서 자기가 서투른 소몰이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묘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는데, 하물며 국가의 지도자가 된 자가 시민의 수를 감소시키고 질을 저하시키고도 수치로 알지 않으며, 또 자기가 저열한 국가 지도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기묘한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크리티아스와 카리클레스의 귀에 들어가자 소크라테스를 소환하고 법문(法文)을 제시하며, 젊은이와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그 명령에 대하여 불명한 점을 질문해도 좋은가?”

두 사람이 좋다고 대답하자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좋네. 나는 언제나 국법에 따르려는 사람 중 하나일세. 그러나 몰라서 자칫 법을 범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니까, 분명하게 당신들에게 다짐해 두고 싶네. 당신들이 금지를 명한 말의 기술이란 올바른 논의에 관한 것과 올바르지 못한 논의에 관한 것 중 어느 쪽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올바른 논의에 관한 것이라면 명백히 올바른 논의를 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또 올바르지 못한 논의에 관한 것이라면 명백히 올바르게 논의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걸세.”

그러자 카리클레스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하였다.

자네가 모른다고 하니 명백하게 알 수 있도록 말해주지. 소크라테스 청년들과 일체 말을 하지 말게!”

이 말을 받아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그러면 내가 명령받은 일을 충실히 지킬 수 있도록, 인간은 몇 살까지를 청년으로 보는지 한계를 정해 주게.”

그러자 카리클레스가 대답했다.

심의원(審議員)이 될 수 없는 나이를 말하네. 아직 지혜가 여물지 못했다는 이유로 심의원의 자격이 없는 삼십 세 이하 말일세. 자네는 삼십 세 이하의 사람과 이야기해서는 안 되네.”

무언가 사야 할 물건이 있을 때, 만약 그 상인(商人)이 삼십 세 이하라면 값을 물어봐도 안 되는가?”하고 그가 말했다.

그런 것은 괜찮아라고 카리클레스가 대답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네는 말이야, 뻔히 알고 있는 일을 자꾸 물어보는 버릇이 있어. 그런 것을 묻지 말란 말이야.”

그렇다면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무엇을 물어 왔을 때, 알고 있는 일인데도 대답하면 안 되는가? 예를 들면 카리클레스의 집은 어디인가요라든가 크리티아스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할 때는 말일세.”

그런 것은 상관없어라고 카리클레스가 대답하자 크리티아스가 참견을 했다. “그러나 자네는 또 구두를 만드는 사람의 일, 목수의 일, 대장장이의 일도 이야기해서는 안 될 필요가 있어, 소크라테스.

왜냐하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닳아빠지도록 자네 입에 오르내렸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말이야.“

그렇다면 이들과 관련된 정의나 신념이나 그 밖의 다른 이야기도 안 되는가?”하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렇지.”하고 카리클레스가 말했다.

그리고 소치는 사나이의 이야기도 안 돼. 만약 그만두지 않는다면, 조심하게, 자네로 해서 또 소의 수가 줄지도 모르니까.”

이것으로 만사는 분명해졌다. 저 소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전해져서, 그것을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그들은 소크라테스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13)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자(기원 전 404년 봄), 페이타이에우스의 요새는 붕괴되어 아테네와 페이타이에우스 사이의 장벽이 걷혔다. 아테네에서는 군선(軍船) 12척의 보유만이 허용되는 등 시민들은 모두 의기저상(意氣沮喪)했다. 여기에 때맞추어 국외로 망명해 있었던 과두정부파 사람들이 귀국했다. 여기에도 온건파와 과격파가 있었는데 온건파를 이끈 자가 테라메네스였고 과격파를 이끈 자가 명문의 귀재(鬼才) 크리티아스였다. 국내에 머물러 있던 과두정부파도 있었다. 3자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전승국(戰勝國) 스파르타 장군 뤼산드로스의 지원을 얻어 과두정부 설립을 진행시켰다. 국민집회가 열려 당원 드라콘티데스가 법률의 개정을 들고 나왔고 그것이 기초(起草)되고 있는 동안은 위원이 국무를 보아야 한다고 제의했다. 회의장에는 테라메네스가 미리 초청하여 출석시킨 점령사령관 뤼산드로스가 방청하고 있었다. 회의는 한 마디의 반대 발언도 없이 30명의 기초 위원 임명을 승인했다. 30명의 이름이 크세노폰의 <<헬레니카>>에 열거되어 있다. 30명의 위원은 그대로 정부의 전권을 장악했다. 30 위원은 그 압제(壓制)로 해서 ‘tryannoi’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 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소크라테스가 평범한 시민들에게 못마땅하게 여겨지고 나아가 법정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사형까지 구형받은 것은 여기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당시 각 분야의 실력자들에게 밉보인 탓도 컸을 것이다. 공소를 제기한 멜레토스의 고소장이 온전히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내막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전해지는 것은 단지 몇 줄 소크라테스가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과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내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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