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의 고발자는 소크라테스와 교우(交友)가 있었던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 두 사람이 국가에 대하여 무한한 해독을 끼쳤다고 말한다.
크리티아스는 과두정치(寡頭政治) 시대에 있어서의 탐욕, 압제, 잔인(殘忍)의 거두(巨頭)였었고, 알키비아데스 또한 평민정치 시대에 있어서 황음(荒淫), 오만, 압제의 화신(化身)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이 국가에 해독을 끼친 사실은 나도 변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소크라테스의 동료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모든 아테네 시민 중에서 가장 명예욕이 강했던 사람으로, 모든 일을 남김없이 자기 손으로 하고, 만인에게 군림하는 명성을 얻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최소한의 물자(物資)로써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일체의 쾌락에 대하여 항상 자제를 잃지 않았으며, 그와 담화를 나누는 모든 사람들을 제멋대로 다루는 것을 보았다. 전술한 바와 같은 성질이었던 그들이 이 사실을 보고 소크라테스의 동료가 된 것은, 소크라테스의 생활 및 그가 가지고 있는 사려(思慮)를 배우기 위해서였던가, 아니면 만약 그의 동료가 되면 이야기를 하는데 최대의 기술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서였던 가일 것이다. 만약 신이 그들에게 한평생 소크라테스와 같은 생활양식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허가하기를 선택한다면, 나는 그들이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취한 행동은 이것을 명백하게 해주고 있다. 그 까닭은 그들이 동배(同輩)를 앞질렀다고 생각하자마자 즉시 소크라테스의 곁을 뛰쳐나가 정치에 투신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소크라테스를 찾은 이유였던 것이다.
혹은 이것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정치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사려를 가르쳐야 마땅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것에 반대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모든 스승들이 그 제자들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어떤 식으로 실행하는가를 보임과 동시에, 또 논의에 의해서 설교하는 것을 흔히 본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또 제자들에게 자신이 군자임을 보여주고, 미덕 또는 그 외의 인간사(人間事)에 관하여 진실로 아름답게 이야기하며 들려준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게다가 저 두 사람도 소크라테스의 곁에 있을 동안은 사려있는 인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소크라테스에게 벌을 받거나 혹은 매를 맞을까 봐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당시에는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학자를 자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정의(正義)를 행하는 자는 결코 부정하게는 될 수 없고, 사려있는 인간은 오만하게는 될 수 없다. 또 그 외 무슨 일이든 습득 가능한 일에 대하여, 일단 이것을 배운 자는 또다시 무지(無知)하게 될 수는 없다라고.
나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다. 왜냐하면 신체를 훈련하지 않은 자는 신체를 사용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을 훈련하지 않은 자는 또한 정신을 쓰는 일을 행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피해야 할 일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아버지들은 제 아무리 사려 깊은 아이일지라도 아이들이 좋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한다. 뛰어난 사람들과의 교제는 미덕의 훈련이 되지만, 나쁜 사람과의 교제는 그 파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인(詩人)도 또한 이것을 증명한다.
한 시인은 말한다.
선한 사람에게서는 선한 일을 배우게 되며,
나쁜 사람과 교제하면 가지고 있던 지혜마저도 잃고 말리라.
또 어느 시인은 말한다.
선한 사람도 어떤 때는 천하고,
어떤 때는 귀인(貴人)일지니.
--- 중 략 ---
사실 소크라테스의 곁에 있을 동안 크리티아스와 알키비아데스는 그의 힘을 얻어 아름답지 못한 욕기(慾氣)를 누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크리티아스가 그를 떠나 텟살리아로 도망하고부터 그 땅에는 정의보다는 오히려 무법의 생활을 하는 자들의 동아리로 들어갔고, 알키비아데스는 그 미모(美貌) 때문에 신분이 높은 많은 부인들로부터 연모(戀慕)의 정을 한 몸에 받았으며, 아테네 및 맹방(盟邦) 도시의 세력으로 해서 많은 유력자들의 추종을 받고 민중에게 존경을 받아 쉽사리 제 일인자가 되었다. 결국 운동경기에서 쉽게 승리를 얻은 선수가 연습을 소홀히 하는 것처럼, 그도 또한 자신의 훈련을 소홀히 한 것이다.
신변(身邊)의 사정이 이러했고, 또한 혈통에 교만해지고 재물을 과시하며, 힘을 자부(自負)하고, 많은 사람이 아부하며 게다가 이 모든 것에 덧붙여서 오랫동안 소크라테스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이 오만해진 것은 무엇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고발자가 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 비행(非行)이 있었다고 해서 소크라테스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아직 나이 어리고 따라서 당연히 지혜도 천박(淺薄)하며 힘도 보잘것없을 때, 소크라테스가 그들을 사려있는 인간으로 만든 것은 하등 칭찬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고발자는 생각하는 것인가.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 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고소장에서 소크라테스가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내용에 대한 크세노폰의 반론 중 일부이다.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의 작품 향연에도 등장하며, 거기 모인 청중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자제력과 굳셈을 증언하고 있다.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오게네스 1 (2) | 2023.08.17 |
---|---|
소크라테스 회상 5 (0) | 2023.08.15 |
소크라테스 회상 3 (0) | 2023.08.09 |
소크라테스 회상 2 (0) | 2023.08.06 |
소크라테스 회상 1 (0) | 2023.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