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일상에서 '철학함'이 얼마나 가능한가요.
나그네
일상에서 '철학함'이 얼마나 가능한가요. 안녕하세요.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철학을 학문으로써 본격적으로 공부해 본 일은 없기 때문에 낯선 용어나 난해한 논의는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요.
그래서. 제 삶에 덧씌워진 환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걷어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조금이나마 보이리라고 생각하는 진리는 보이지 않고 이곳,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나'라는 인간조건의 심연만 놓여있는 것 같습니다…….
노신의 책에 보면 '취하요리'에 관한 내용이 나오잖아요. 한 청년이, 세상을 바로 보게 해 준, 그래서 고통을 안겨준 노신에게 보낸 서신이었다고 기억됩니다. 물론, 오늘날과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자잘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제 자신이 마치,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 들어앉은 기분이에요. 어디를 바라봐도 제 이면이 보이고, 그래서 가끔 꼼짝하기 어려운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철학을 진정, 학문으로, 연구로 하지 않으려면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이 굳이 어설프게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저는 아주, 단순하게, 긍정적으로, 현실감각에 충실한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행복조차 환상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그들은 '행복'하니까요.
하긴, 발단은. 너무나 소소하고 구체적인 것들이죠…….
그냥. 제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적어봤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런 얘기 나누기 어렵고 해서요.
혹시. 철학을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삶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계시면 조언 좀 해주세요.
고맙습니다.
philebus(탐구자) 답변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글자 그대로 어설프게 알려면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것과 어설픈 것은 항상 어떤 점에서 유사하고, 그 유사함을 구분 못할 경우 어설픈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 기만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물론 철학 전문연구가는 항상 참된 철학을 하는 사람이고, 아마추어는 꼭 어설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점은 개별적으로 따져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일상적인 삶에서 철학을 실천한다는 말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실천한다는 말을 두고 책상머리에서 떠나 밖에 나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의미로 새기고 실제로 그대로 행동하려고 애쓸 수도 있습니다. 아마 어쩌면 그것도 맞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쓸데없는 쾌락에의 욕망을 억제하여 보다 유익한 일로 스스로의 관심을 돌리려는데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마음과 행동만 가지고는 그가 일상에서 철학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무엇이 더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한다면, 위와 같은 행위의 확고한 심적 근거를 확보하는데 가능한 전력투구함이 있어야 할 것이란 말씀이죠. 즉, 맹목적으로 주변사람들을 돕고, 힘들여서 금욕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어째서 정당한 것인가를 가능한 확실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 근거로 인하여 하게 되는 모든 일이 즐거워지는 거죠.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단속적이거나 일시적인 감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근거를 깨닫기 위해 책도 읽고, 남에게 묻기도 하고, 스스로 정신을 집중하여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조금씩 자신이 그러한 점을 깨달아가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면 그로 인한 즐거움도 또한 상당할 것입니다.
시간상 매우 간단하게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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