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상으로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 하나의 사상으로 모든 것을 대변할 수는 없다.
- 신** 씀
philebus(장자의나비) 답변
위의 말씀은 말하자면,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만족스러울 만큼 알려면 기독교면 기독교, 불교면 불교, 유교면 유교, 그밖에 어떤 사상이든 한 가지만 공부하거나 수행하거나 정진해서는 안 되고 최소한 두 가지 이상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신** wrote:
> 일면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지요.
>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지구의 전 사상을 달통해야 된다는 믿음이
> 제게 생겨나더군요. 수수께끼 해답(왜 사는가와 왜 죽는가)에
> 대한 실마리를 제공받을 수 있더군요.
> 지구라는 곳은 죄를 지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 몸을 소유하게 된 것은 구속을 뜻하지요.
> 몸을 버리기 전까지는 구속된 삶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자유가 없는 거지요. 이 구속된 삶을 얻어야 하는 것은 전생의
>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행을 해서 몸을 버릴 수 있고 아니면 자기의 죄 값에 대해서
> 살만큼 살다가 세상을 뜨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전생에 죄를 짓지 않는다면 지구에 태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philebus(장자의나비)
RE: 답변에 감사하고요, 몇 가지만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우선 지구의 전 사상을 달통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말씀대로 죄를 지어 구속된 상태로 말입니다.
달통한다는 것은 이 책 저 책 읽어보고 혼자만 그럴듯하게 꿰어 맞춘다는 것은 아닐 테고, 정당한 질문에 대하여 이치에 맞게 답변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텐데…….
현격하게 다른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사상을 공부하면 누군가 말하듯 돗자리를 양쪽 끝에서 말아오면 가운데서 맞지 않게 되듯이 어긋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말씀대로라면 신**님도 죄인인데 지금 어떤 식으로 속죄하고 있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씀하신 자유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요.
혹시 귀찮게 하는 것이라면 다음부턴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신**
> 질문자님의 답변에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
> 답변을 해 드리지요.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
> 성인들의 가르침에 달통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 많은 성인들은 해탈(구원)의 길을 제시해 왔지요.
>
>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전 인류에 미치고 있는
>
> 사상들은 모종의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
> 어느 하나의 사상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지요.
>
> 완벽하기 위해서는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그리고 말씀대로라면 신**님도 죄인인데 지금 어떤 식으로 속죄하고 있는지 간단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 수행을 열심히 하는 길이 죄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 수행이란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 길이겠죠. 그리하여 몸이
>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는 것이지요.
>>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씀하신 자유란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요.
>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겠지요.
>> 혹시 귀찮게 하는 것이라면 다음부턴 질문하지 않겠습니다.
>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갑습니다.
philebus(장자의나비)
RE: 답변에 감사드리고요,
이어서 몇 가지만 궁금한 점에 대해 다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지금까지 전 인류에 미치고 있는 사상들은 모종의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직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어느 하나의 사상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지요.
완벽하기 위해서는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도 무엇이든 둘 이상의 사물이 완전이라는 상태를 이루려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은 옳은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 조화라는 것이 이 경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예컨대 한국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만약 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하고자 한다면,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고, 관혼상제의 예는 유교식으로 하고, 음식은 불가의 계율에 따라 채소만 먹고, 어떤 때는 산상수훈과 예수의 가르침을 열심히 외우고, 어떤 때는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또 어떤 때 사람들이 요상하고 신비스러운 이론에 대해 얘기를 걸어오면 나는 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답변할까요?
위와 같은 행동들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한 것이 될까요?
신**님의 경우에 다른 이론은 그만두고 위 세 가지 사상을 어떻게 조화롭게 수용하시는지 알고 싶네요. 실천적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수행을 열심히 하여 죄를 벗어난다고 하고, 수행이란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 거라고 하였지만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다는 말도 매우 추상적인 의미가 아닐까요?
위에서 예로든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 신자도 참된 의미에서 말과 행동으로 계율에 따르고 공경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이나 배워 익혀야 할 것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도 몸을 갈고닦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신**님이 말씀하시는 몸을 갈고닦는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습니까?
끝으로 자유란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셨는데요,
만약 사람이 죽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한 無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좋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결코 나쁜 상태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고 나쁨을 따질만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신**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의 상태, 즉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란 좋은 상태임에 틀림없겠지요.
無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몸은 없지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몸이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몸을 가지고 존재하는 상태보다 어떤 점에서 좋은지 중요한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이만…….
신**
> RE: 답변에 감사드리고요,
> 이어서 몇 가지만 궁금한 점에 대해 다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 '지금까지 전 인류에 미치고 있는
> 사상들은 모종의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아직 그런 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습니다.
> '어느 하나의 사상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지요.
> 완벽하기 위해서는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라고 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도 무엇이든 둘 이상의 사물이 완전이라는 상태를 이루려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은 옳은 말이겠지요. 그러나 그 조화라는 것이 이 경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고요히 사색을 통해 깊이 성찰하게 되면 무언가 해답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답이지요.
> 예컨대 한국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만약 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하고자 한다면,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고, 관혼상제의 예는 유교식으로 하고, 음식은 불가의 계율에 따라 채소만 먹고, 어떤 때는 산상수훈과 예수의 가르침을 열심히 외우고, 어떤 때는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또 어떤 때 사람들이 요상하고 신비스러운 이론에 대해 얘기를 걸어오면 나는 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답변할까요? 위와 같은 행동들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한 것이 될까요?
> 신**님의 경우에 다른 이론은 그만두고 위 세 가지 사상을 어떻게 조화롭게 수용하시는지 알고 싶네요. 실천적으로 말입니다.
마음으로 통합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유가의 군사부일체 사상과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 간에는 모종의 일치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가에도 법신, 보신, 화신이 있습니다. 모든 사상에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상에는 일치되는 것이 있으며 이것들을 찾아서 배우면 사상들 간에 통합 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실천적 행동은 남이 볼 때 자연스러우면 됩니다. 전혀 어느 종파에 걸리지 않게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하십시오. 마음이 괴로운 것은 하지 말고 마음이 편안한 데로 하십시오.
> 그리고 수행을 열심히 하여 죄를 벗어난다고 하고, 수행이란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 거라고 하였지만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다는 말도 매우 추상적인 의미가 아닐까요?
> 위에서 예로든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 신자도 참된 의미에서 말과 행동으로 계율에 따르고 공경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이나 배워 익혀야 할 것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도 몸을 갈고닦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 신**님이 말씀하시는 몸을 갈고닦는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습니까?
> 끝으로 자유란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셨는데요,
> 만약 사람이 죽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한 無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좋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결코 나쁜 상태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좋고 나쁨을 따질만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 그렇다면 신**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의 상태, 즉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란 좋은 상태임에 틀림없겠지요.
> 無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몸은 없지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그럼, 몸이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몸을 가지고 존재하는 상태보다 어떤 점에서 좋은지 중요한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 오늘은 이만…….
몸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이 경지가 바로 부처의 경지입니다. 부처는 몸이 없이 어디에 걸리지 않으며 어디에나 편재하지요.
philebus(장자의나비)
답변을 보니 서로 주고받은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에 신**님께서,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지구의 전 사상을 달통해야 된다는 믿음이 제게 생겨나더군요.
수수께끼 해답(왜 사는가와 왜 죽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받을 수 있더군요.'라고 하셨고요.
그에 대해 제가,
'지구의 전 사상을 달통해야 된다고 하셨는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현격하게 다른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사상을 공부하면 누군가 말하듯 돗자리를 양쪽 끝에서 말아오면 가운데서 맞지 않게 되듯이 어긋나게 되는 것 아닐까요?'라고 했습니다.
다시 신**님께서,
'어느 하나의 사상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지요.
완벽하기 위해서는 조화롭게 통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라고 했지요
여기서는 조화라는 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 저는,
'그러나 그 조화라는 것이 이 경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다시 물었고요.
다시 다음과 같이 답변하신 겁니다.
'그것은 마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고요히 사색을 통해 깊이 성찰하게 되면 무언가 해답이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답이지요.'라고요.
위의 말은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저는 조화라는 것을 무엇을 통하여 알 수 있는가라고 물은 것이 아니고요.
그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은 겁니다. 사색을 통해 성찰한 내용 말이죠.
따라서 지금까지의 답변으로는 전 사상에 달통한다는 의미도, 조화라는 의미도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저 가부좌 틀고 눈감고 있는 모습만 연상되네요. 그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겠죠. 저는 내용을 묻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시 다음과 같이 실례를 들어 물었습니다.
'예컨대 한국에는 기독교, 불교, 유교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제가 만약 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하고자 한다면, 일요일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고, 관혼상제의 예는 유교식으로 하고, 음식은 불가의 계율에 따라 채소만 먹고, 어떤 때는 산상수훈과 예수의 가르침을 열심히 외우고, 어떤 때는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또 어떤 때 사람들이 요상하고 신비스러운 이론에 대해 얘기를 걸어오면 나는 怪力亂神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고 답변할까요? 위와 같은 행동들이 세 가지 사상을 조화롭게 수용한 것이 될까요?
신**님의 경우에 다른 이론은 그만두고 위 세 가지 사상을 어떻게 조화롭게 수용하시는지 알고 싶네요. 실천적으로 말입니다.' 라고요.
그에 대해.
'마음으로 통합하고 조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유가의 군사부일체 사상과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상 간에는 모종의 일치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가에도 법신, 보신, 화신이 있습니다. 모든 사상에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상에는 일치되는 것이 있으며 이것들을 찾아서 배우면 사상들 간에 통합 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실천적 행동은 남이 볼 때 자연스러우면 됩니다. 전혀 어느 종파에 걸리지 않게 행동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허락하는 대로 하십시오. 마음이 괴로운 것은 하지 말고 마음이 편안한 데로 하십시오.'라고 하셨는데요.
여기도 매우 추상적인 얘기가 많아요.
군사부일체와 삼위일체와 법신, 보신, 화신, 간에는 각각 셋씩이라는 것 외엔 공통점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군사부는 실존인물이고요,, 나머지는 실존인물 또는 관념적인 어떤 것이 합해진 것 아닙니까?
물론 군사부를 어떤 관념의 상징이라고 하면 일단 뭔가는 만들어지겠죠.
그것이 환상이든 진리든 말이죠. 그리고 거기에는 무수한 의문과 억측이 따라붙게 마련인 거고요.. 설마 철학을 하면서 무조건 그러려니 믿으라는 말씀은 안 하실 것 같은데…….
그리고 마음 편한 대로 행동하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시죠.
니코틴이나 알코올 중독자는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먹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안 먹으면 마음이 시달리죠. 그러나 좋은 것으로 말하면 안 먹는 것이 그에게 좋습니다.
즉 일시적으로나마 마음이 불편한 것이 그에게 좋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격이 급한 자는 무엇이든 후다닥 해치워야 편하고요 미뤄두면 속이 편치 않죠.
반대로 게으른 자는 몸을 움직이려 하면 짜증 나고요..
반면에 후다닥 해치워서 좋은 일이 있고, 미뤄둘 때가 좋은 일이 있죠.
즉 마음 편한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거죠.
이렇게 보면 좋은 것의 기준은 따로 있는 겁니다. 마음 편한데 있는 게 아니고요.
또 현명한 자는 현명하게 행동할 때 마음이 편할 테지만,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게 행동해야 마음이 편할 겁니다.
남이 볼 때 자연스럽게 행동하라는 얘기는 지금까지의 말을 뒤집어 보면 됩니다. 그 남이라는 게 다 제 각각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죠.
어리석은 사람이 보기엔 현명한 자의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마땅찮게 보일 테고요, 현명한 사람이 보기엔 어리석은 자의 행동에 한숨이 나올 테지요.
남이 보기에........라는 것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혹시 이렇게 얘기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현명한 자나 그와 유사한 자의 마음이 편한 것이 진정으로 편한 것이며 그보다 못한 자의 마음 편함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라고요.
그럼 얘기는 뒤바뀌게 되겠지요.
우리는 마음이 편하게 행동할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행동해야 한다고요.
아무튼 여기서도 신**님이 어떻게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에 대해 실천적으로 조화를 이루는지 전혀 알려진 것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
'수행을 열심히 하여 죄를 벗어난다고 하고, 수행이란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 거라고 하였지만 자신의 몸을 갈고닦는다는 말도 매우 추상적인 의미가 아닐까요?
위에서 예로든 기독교나 불교나 유교 신자도 참된 의미에서 말과 행동으로 계율에 따르고 공경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이나 배워 익혀야 할 것을 충실히 이행하면 그도 몸을 갈고닦는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신**님이 말씀하시는 몸을 갈고닦는다는 것은 무슨 특별한 뜻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답변이 없는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끝으로 자유란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고 하셨는데요,
만약 사람이 죽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한 無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좋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결코 나쁜 상태라고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좋고 나쁨을 따질만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신**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의 상태, 즉 몸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상태란 좋은 상태임에 틀림없겠지요.
無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몸은 없지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몸이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몸을 가지고 존재하는 상태보다 어떤 점에서 좋은지 중요한 몇 가지만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답변하셨네요.
'몸이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이 경지가 바로 부처의 경지입니다. 부처는 몸이 없이 어디에 걸리지 않으며 어디에나 편재하지요.' 라고요
이 답변도 제 질문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이 아닙니까?
제 질문은 몸이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몸을 가지고 존재하는 상태보다 어떤 점에서 좋은지를 물었는데 그 경지가 부처의 경지라니.........
몸이 없는 상태가 어떤 경지인지 어떤 등급인지를 물은 것이 아니고요, 어떤 점에서 좋은지를 물은 거지요.
몸이 없이 어디에 걸리지 않으며 어디에나 편재한다는 것은 아마도 속성이겠지요. 그것이 왜 좋은가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또 경험하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는데 자유의 상태, 즉 몸이 없이 존재하는 상태가 기쁨이나 즐거움, 슬픔이나 고통과 같은 종류이거나 그와 유사하다면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그러나 자유의 상태가 지혜나 지식과 같은 종류의 것이거나 그와 더 유사한 것이라면, 경험만이 아니라 말로도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이 부분에서도 저의 질문과 신**님의 답변은 어긋나고 있는 거지요
처음에 질문이 반갑다고 하시기에 좀 자세히 얘기를 들어볼까 했는데.......
별도의 얘기지만 인간이 죄인이란 얘기도 수긍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요.
범죄자와 정신병자와 무식한자는 각각 본질적으로 틀린다고 생각되는 거지요.
우리 사회에서도 정신병자가 저지르는 범죄는 일반범죄와는 달리 취급하지요.
또 어떤 특수한 무지로 인해서 이 세계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는 자는 그 무지가 원인이며, 그에게는 지혜나 지식이 필요한 거지, 다른 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이상으로 제가 이미 드린 질문의 내용은 만족한 답변 없이 그냥 남아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가능하면 제 질문에 적중하는 구체적인 답변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신**
> 몸이 없으면 생로병사의 고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 몸이 태어나서 쇠하고 늙고 병들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지요.
> 따라서 몸이 없으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 장자의 나비님은 생각이 많으신 듯합니다. 생각을 지우세요.
> 생각이 많으면 아는 것도 혼돈스럽게 된답니다.
> 지구의 전 사상을 미시적으로 낱낱이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 그것은 그 뜻이구나 이것은 이 뜻이구나 하여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 것을 뜻합니다. 물론, 거시적이란 말뜻에는 다분히 미시적이란
> 말이 들어 있지요.
philebus(장자의나비)
몸이 없어 생로병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苦에서 벗어난다는 거겠죠.
그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죽어 無로 돌아간다면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苦에서 벗어나는 거죠.
하지만 좋다는 것은 다른 문제죠.
존재하면서 좋으려면 어떤 다른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苦를 최하에 두고 無를 중간에 두면, 좋다는 것은 無보다는 위에 있는 걸로 생각됩니다.
말씀하신 苦에서의 벗어남이 곧 좋은 상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생각을 지우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제 생각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 없습니다.
제 글을 읽는 신**님이 혼란스러웠는지는 모르지만요.
제 뜻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글을 좀 자세히 썼을 뿐이죠.
이건 다른 얘기지만 글을 읽는 여러분들을 위해 한 말씀 올리죠.
신**님이 제게 생각을 버리라고 하신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발언입니다.
그 얘긴 자신의 의견은 옳고, 제 의견은 별로라는 생각에서 나온 거죠.
신**님의 얘기가 옳다는 증거는 아직 나온 게 없다고 생각되는데…….
본인은 충고라고 생각하겠지만요.(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만약 토론에서 주제와 상관없이 쓸데없는 얘기가 오간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일 것입니다.
토론이 이상하게 흐르지 않으려면 상대방 전체를 어떤 식으로든 판단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쓴 글의 내용 자체에만 집중해야 될 것입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나머지 저의 모든 질문에는 다음으로 요약하신 거네요.
'지구의 전 사상을 미시적으로 낱낱이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뜻이구나 이것은 이 뜻이구나 하여 거시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거시적이란 말뜻에는 다분히 미시적이란
말이 들어 있지요.'
거시적이란 말뜻에는 다분히 미시적이란 말이 들어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짐작도 못 하겠네요..
거시적이든 미시적이든 상대방의 말에 대해 질문은 할 수 있는 거겠지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타당한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도 할 수 있는 거겠고요.
어쨌거나 답변하신 내용으로 보아 더 이상 뭘 들려주실 생각이 없는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문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데아관련 질문 (1) | 2024.07.03 |
---|---|
一陰一陽之謂道 (6) | 2024.06.13 |
일상에서의 철학 (2) | 2024.04.30 |
앙굿따라니까야 1권에서... (2) | 2024.04.03 |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1) | 2024.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