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니까야 1권에서 몇 가지 질문|장유 초기불전학림
예류향 2015.05.04. 12:12
안녕하세요?
자주 들어와 보기는 하지만 글을 올리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초기경전 역경불사와 근본불교 확립에 힘쓰시는 스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예전에 이곳에서 간행한 4부 니까야와 청정도론, 아비담마 길라잡이를 한번씩 정독한 뒤 계속 읽지 못하다가 요즘 니까야를 다시 한 번 정독하기 위해서 앙굿따라니까야 1권부터 읽고 있습니다.
1권을 읽으면서 드문드문 머리에 떠오른 몇 가지 의문을 정리했는데, 이에 대해 회원님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A2:6:12 내뱉음 경에 보면 2절에서 “비구들이여, 어떤 대중공사에서 양쪽에서 모두 [험한] 말을 내뱉고 삿된 견해를 가져 대항하고 성을 내고 불만스럽고 화를 내지만 자기의 내면은 고요한 경우가 있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 상황이 상식적으로는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어 뭔가 더 부연 설명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여쭤봅니다. 즉, 드러내는 행위와 정반대 되는 내면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면 좋은지에 대해서입니다.
A2:8:1 표상 경내의 단어 ‘표상’에 대한 주석 294)를 보면 “표상이란 이유를 뜻한다. 두 번째 경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즉[두 번째 경 이하에 나타나는] 이유, 원인, 의도적 행위, 조건, 물질의 모든 것들도 여기서는 이유와 동의어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표상 경이나 두 번째 이하의 경 모두는 나쁜 불선법이 일어나는 상황 전체를 – 마치 입체적인 어떤 사물에 대해 – 여러 가지 다른 각도에서 조망하는 것으로 그 각각이 모여 불선법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에 대한 이해를 보다 넓혀주고 충실히 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하나하나의 경이 모두 전체의 부분으로써 나름대로의 독자 의미를 따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해당 주석을 보면 단어 ‘표상‘이 이하 나타나는 여러 가지(이유, 원인, 의도적 행위, 조건, 물질 등)와 동의어라고 하여 마치 ’표상’이라는 단어가 나머지 모든 경의 제목에 해당하는 단어들의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nimitta 의 어원을 비롯하여 <표상 품> 내에서 <표상 경>의 의미를 다른 경과 구분하여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A3:22 환자 경에 세 종류의 환자와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오고 환자 중 두 종류는 음식, 약, 간병인을 얻건 못 얻건 병이 낫든지 안 낫든지 하지만 나머지 한 종류는 적당한 음식과 약과 간병인이 있을 때만 병에서 회복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종류의 환자에 적당한 음식과 약과 간병인을 허락한다고 하며, 나아가서 <이 환자를 허락했기 때문에 다른 두 부류의 환자도 간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치로 다른 세 부류의 사람, 즉 여래를 뵙는 기회를 얻건 못 얻건,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을 듣건 듣지 못 하건 간에 유익한 법들에 대해 확실함과 올바름에 들거나 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여래를 뵙는 기회를 얻을 때에만, 또는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을 들을 때에만 유익한 법들에 대해 확실함과 올바름에 듭니다. 그래서 이 마지막 사람에 대해 교법을 허락한다고 하며 나아가서 <이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법을 설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 안의 이 선언의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어 여쭤봅니다. 어째서 이 사람 때문에 해당이 없을 것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간호를 해야 하며, 법을 설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A3:70 팔관재계 경 4절에 성자의 포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성자의 포살이란 오염된 마음을 바른 방법으로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음과 같이 여래를 계속해서 생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시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시며..... 세존이시다. 여기서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각자가 생활 중 어느 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방식으로 隨念할 때 경전의 어휘와 완전히 똑같이 해야 하는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말하자면 지시사와 시제에 관해서입니다. 즉, 실제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지시사와 시제를 바꾸어 마음속에서 隨念해야 하지 않을 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셨으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셨으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이셨으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셨으며>..... 세존<이셨다.>” 아니면 경전 글자 그대로 현재의 시제로 각자 실행해야 할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A3:85 외움 경 2절부터 5절까지 보면 계는 완성하였지만 삼매는 어느 정도만 짓고 통찰지도 어느 정도만 짓는 비구도 사소한 계에 해당하는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그것을 고치기도 하며, 계도 완성하고 삼매도 완성하였지만 통찰지는 어느 정도만 짓는 비구도 사소한 계에 해당하는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그것을 고치기도 하며, 계도 완성하고 삼매도 완성하고 통찰지도 완성한 비구도 사소한 계에 해당하는 학습계목들을 범하기도 하고 그것을 고치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성자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삼자 공통으로 범하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는 사소한 학습계목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비교적 중한 것부터 몇 가지만 예시를 들어주실 수 있는지요.
A3:106 누각 경2 주석 605)를 보면 ‘비뚤어지다‘는 vyapannam hoti를 옮긴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악의에 찬‘이라는 뜻이지만 주석서에서 ’평소의 성품을 버리고 머무는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엔 이 주석서의 설명은 상당히 애매한 것 같습니다. 수행자가 아직 범부라면 그의 평소의 성품이란 결국 버려져야 할 것 같은데 버린 후의 그 상태가 바로 악의에 차거나 비뚤어진 성품으로 되어버리는 셈이니까요. 그리고 아라한이라면 평소의 성품을 버린다는 풀이가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게 되고 나아가 그가 악의에 찬 상태로 머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국 주석서의 풀이 의미는 선법을 호지하고 생활하거나 수행 중인 사람이 그 가지고 있던 선법을 버리고 대신 불선법을 지닌 상태에 있다는 걸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는 주석서의 풀이가 간략하고 불충분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인데 제가 뭔가 잘못 생각한 점이 있다면 지적을 받고 싶습니다.
질문은 이상입니다. 니까야에 선언된 부처님의 말씀이 하나같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그중 어떤 부분은 어째서 그런지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물음이 졸렬하더라도 널리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두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다른 게시판이 열리지 않아 이곳에 올립니다.
초불 15.05.05. 05:44
예류향 법우님,
질문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하게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A2:6:12에 대한 첫 번째 질문에는 여러 가지 경우를 상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중공사에서 대립되어 있는 양쪽 가운데 어느 한 편에 속하는 한 사람이나 몇몇 사람이
고요한 경우를 상정할 수도 있을 것이고
특히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는 중재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고요한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압니다.
이처럼 고요하고 냉철한 사람 혹은 사람들이 있는 경우에
그 대중공사는 ‘오래 끌지 않을 것이고 거친 말과 거친 행동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구들은 편하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둘째, A2:8:1에서 부처님께서는
“표상이 있기 때문에 나쁜 불선법들이 일어난다.
표상 없이는 나쁜 불선법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바로 그 표상을 버림으로써 나쁜 불선법들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내 돈 삼억을 떼어먹고 도망간 사람에 대한 표상 혹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불선법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우의 표상은 불선법을 일으키는 이유 혹은 원인 혹은 조건 등이 됩니다.
이러한 불선법의 이유나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표상을 버리면
불선법들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셋째, A3:22에서 세존께서는
“적당한 간병인을 얻을 때에만 병이 회복되고
적당한 간병인을 얻지 못하면 병이 회복되지 않는 그 환자에 대해서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약과 적당한 간병인을 허락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병인이 간병을 할 때에는 적당한 음식과 적당한 약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주요 임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간병인이 필요한 세 번째] 환자 때문에 다른 [두 종류의] 환자도 간호해야 한다.”는 말씀은
간병인이 없이 적당한 음식이나 적당한 약만으로도 회복이 되는 환자의 경우에도
이러한 음식이나 약을 먹도록 도와주는 일인 간호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의미로
쉽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넷째, A3:70에서, 여래십호는 과거 시제로 수념해도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시제로 수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장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므로 본인의 의향에 따라서 과거시제로 수념해도 되고 현재 시제로 수념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 A3:85에 대해서 입니다.
비구계목은 ① 바라이죄(波羅夷罪, paaraajika), ② 승잔죄(僧殘罪, san#ghaadisesa),
③ 조죄(粗罪, thullaccaya) ④ 단타죄(單墮罪, paacittiya),
⑤ 회과죄(悔過罪, paat*idesaniiya), ⑥ 악작죄(惡作罪, dukkat*a)의
여섯 범주로 분류가 되고 뒤로 갈수록 가벼운 항목이 됩니다.
예를 들면 이 가운데 여섯 번째인 악작죄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을 때 소리를 낸다든지 걸을 때 바른 자세로 걷지 않는다든지 하는
75가지 사소한 학습계율(sekhiya)에 속하는 조목들을 범한 경우는
그러한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것 자체로 벗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을 사소한 학습계목이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여섯째, A3:106에서 급고독(아나따삔디까) 장자는 뛰어난 재가자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분들의 ‘평소의 성품을 버리고 머무는 상태’는
불선법이 일어나 있는 상태
즉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이 비뚤어져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초기불교 이해> 강의를 하느라 어제 오후에 청주 관음사로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노트북을 들고 왔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법우님의 질문을 보고 두서없이 간략하게 답변을 달아봤습니다.
조금이라도 법우님의 질문에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올려주셔서 거듭 감사드립니다.
늘 청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각묵 합장
예류향 15.05.05. 09:23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직접 신속한 답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은 다시 잘 살펴 공부하겠습니다.
스님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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