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의 경문을 관통하는 핵심 용어 몇 가지를 살펴본다.
원元 : 크다, 근본적, 모든 善의 原形
형亨 : (上下가) 통한다.
이利 : 이롭다.
정貞 : 바르다. 正.
길吉 : 얻는 것이 있다는 말이다.
흉凶 : 잃는다는 말이다.
회悔 : 후회한다, 뉘우친다는 의미이다, → 吉함의 시작.
린吝 : 인색하다, 본심이 가려진다는 의미이다. → 凶함의 시작.
정길貞吉 : 바르면 길하다.
이정利貞 : 바른 것이 이롭다.
회망悔亡 : 후회가 사라진다.
무구无咎 : 허물(재앙, 근심거리)이 없다.
회망悔亡 : 후회가 사라진다는 것은 전에는 후회가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때 선택하여 밟아 온 길이 또한 갈 수 있는 길 또는 갈만한 길이라는 의미이다.
이利 : 이롭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에 걸쳐 마땅한 자리에 있다는 의미이다.
정貞은 애초에 점친다는 의미였는데, 후에 바르다는 의미로 변용되었다. 인간사의 갖가지를 신께 물어 해결하던 시대에서 인본주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그 개념이 변화한 것으로 본다면, 올바름으로서의 貞이란 예전 점칠 때의 마음가짐 (경건, 一心) 에 사려를 더한 의미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占者의 입장에서 언뜻 생각하면 가장 좋은 것은 吉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움직이면 吉하다는데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일반적인 생활인의 입장에서 볼 때, 실질적으로 주역 전체에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개념은 貞과 无咎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吉함의 전제 조건이 貞인 경우가 많고, 无咎, 즉 허물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바라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무구无咎는 선보과善補過라고 하였다. 이 말은 허물이 없다는 것은 애초부터 허물을 짓지 않는다기보다는 善으로 過失을 덮는다, 보수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크거나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바로 그 잘못을 깨닫고 뉘우친 다음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대가 그 사과를 접수한다면 그 상태를 바로 无咎라고 할 수 있고, 여기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과실이요, 깨닫고 사과한 것은 善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것이 무구의 가장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좀 더 깊게 그 의미를 천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순수하게 心的으로만 보더라도 사람은 순간순간 허물을 짓고 살아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감각을 따라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법적인 욕망이 끊임없이 의식의 문을 두드리며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때로는 실제로 의식을 점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그러한 욕망이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는데, 그것은 그의 수치심과 양심, 理性, 타인의 이목, 법집행의 두려움 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법적인 욕망은 먼저 나타난 것으로써 심적인 過失이며 수치심과 양심 등은 뒤따라 일어난 것으로 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1차적인 善補過가 마음속에서 일어나 그의 1차적인 과실을 보수해 준다. 그리고 이러한 无咎야말로 인간적인 것이며, 잃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나아가 進步의 기반, 도닦음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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