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 남산을 산책하고 청계천을 거닐었다.
삼일교 밑에 이르러 물속을 보니 송사리가 자유롭게 오간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도 하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겨 내려가기도 하며,
약간의 운동으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하는데, 청계천 삼일교 아래의
작은 영역 안에서 제 원하는 대로 즐겁게 놀고 있다.
문득 나의 일상이 저 송사리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르고 내리고, 잠시 제자리에 머무르며> 작은 영역 안에서 놀고 있는 모양이 그렇다는 것이다.
몸으로는 서울과 이곳을 오르내리면서, 또는 읍내 작은 산을 오르내리면서, 서점과 벤치, 산 정상의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며, 마음으로는 성인들의 말씀을 향해 올랐다가 일상을 위해 내려왔다가 말씀의 의미와 현실의 접목을 위해 중간에 머무르기도 하는 것이다.
몸으로야 저 송사리가 나보다 더 날렵하게, 감촉도 더 강렬하게 즐길지 모르겠으나 말씀에 관해서야 송사리는 꿈도 꾸지 못하리라.
-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만약 저 송사리가 莊子의 훈수를 받는다면 오늘밤 꿈속에 나타나 내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보시오. 당신이 말하는 聖人의 말씀이라고 해봐야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도덕의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시오?
그 말씀이 당신에게 주는 즐거움이나 지금 내게 부여된 성질대로 이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데서 오는 생생한 즐거움이나 근원적으로 무엇이 다르겠으며, 더하여 당신이 누리는 정신적 즐거움이 나의 이 순간순간의 즐거움보다 우월하다는 근거라도 있단 말이오? 우주의 氣가 六虛에 임의로 흐르다 우연히 반세기 가량 전에 당신을 만들고 올해엔 나를 만들어 당신으로 하여금 책 읽는 즐거움에 빠지게 하고, 나로 하여금 내게 충분한 정도의 물속에서 헤엄치며 놀게 하였을 뿐, 그 이상의 무엇이 따로 있겠소? 조만간 앞서거나 뒤따르면서 나도 당신도 다시 그 큰 大道에 돌아갈 것이니, 내 비록 작은 물고기의 몸이지만 기왕 만난 김에 당신에게 충고하건대 부디 샛길로 빠져 이상한 모습일랑은 되지 마시오.
자연이 준대로 즐겁게 놀다 道에 따라 다시 변화하고 흐름에 순응하여 일체에 매이지 않도록 할 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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