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 구체적으로 이런 상황을 설정해 봅시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어떤 독일 장교가 10명의 유대인 집단을 놓고 사악한 장난을 칩니다. "너희 10명을 모두 사살하겠다. 단 너희들이 살고자 한다면 단 한 명을 희생양으로 나에게 제시하라. 그러면 나머지 9명은 살 수 있게 하겠다." 그러면 이때 어떻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공리주의적 계산을 한다면 한 명의 희생양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칸트식의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이 나올 것입니다. 즉, 10명 모두 죽음을 선택하면서 '순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1명과 10명이 단순하게 1:10으로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들은 죽음을 통해서 역사에 웅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교자적 행동이 축적된다면 아무도 인간의 생명을 놓고 그렇게 '장난'을 한다는 것이 더 이상 인류사회에 나타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도 이러한 칸트식의 선택은 수용될 것입니다. 긴 역사의 지평에서는 칸트식의 선택이 더 현명한 공리주의적 선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philebus 답변
위에 있는 10명 중에 혹시 다음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없을지 모르겠네요.
10명 중 한 명인 요한이 나머지 9명에게 한 사람씩 차례로 붙잡고 진심으로 살고 싶냐고 물어봅니다..
그중 8명은 살고 싶다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살고는 싶지만 다른 아홉 명을 위해 자기가 죽겠다고 단호히 대답합니다.
요한도 이미 죽으려고 작정한 터라 그를 다음과 같이 설득합니다.
"당신은 살고는 싶지만 다른 이의 삶을 위해 죽겠다고 말하고 있다.
살고 싶어 하는 8명을 당신의 선택으로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선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살고 싶어 하는 당신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살고 싶어 하는 자를 살리는 것이 선이고, 또한 살고 싶어 하는 자를 죽이는 것이 악이라면 당신은 다른 사람 8명에게는 선을 베푸는 셈이지만 자신에게는 악을 행하는 셈이 된다.
이것은 아마도 거룩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참된 의미는 나로서는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말을 계속해서 잘 들어보라.
난 얼마 전부터 삶에 대해 그다지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왔고 내 나름대로 선을 행하며 살아왔다.
결과로 나는 죽음이나 죽음 이후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게 되었고 어떤 때는 죽음을 생각하면 그쪽 세계가 지금의 이 세계보다도 훨씬 더 좋게 여겨지기도 하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 당신은 아마 이렇게 묻고 싶겠지, 왜 스스로 죽지 않느냐고....
그 점에 관해서는 짧은 시간에 자살은 할 게 못된다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을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다.
짤막하게 말하면, 인간은 스스로 죽을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자신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거지로 인한 무지한 행위이며 신의 뜻에 거슬리는 짓이며, 순리에 어긋나는 모순된 행동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스스로 죽어서는 안 되고 어떤 다른 원인으로, 또는 다른 사람에 의하여 죽게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때가 온 것이다. 나를 죽여준다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당신들 9명은 살고 싶어 하고 나는 죽고 싶어 한다.
마침 내가 죽으면 당신들은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안성맞춤의 기회인가?
만약 당신이 죽고 나를 포함한 9명이 산다면,
위에서 얘기한 대로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악을 저지르는 셈이 된다.
또한 죽고 싶어 하는 나를 살린 셈이 되니 나에게도 악을 행한 셈이 된다.
8명에게는 선을 행한 셈이 되지만 당신과 나, 2명에게는 악을 행한 셈이 된다.
그러나 내가 죽는다면 아무런 모순이 없다.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살게 되고 삶에 애착이 없는 나는 죽게 된다."
이렇게 요한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죽게 된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한다.
"나의 이런 마음이 저 장난 좋아하는 독일군 장교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
만약 이런 사정을 알게 되면 추가로 새로운 장난을 하려고 들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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