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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달항당인왈

達巷黨人曰 大哉 孔子 博學而無所成名

달항의 당인이 말했다. 크구나, 공자여. 박학하되 이름을 이룬 바가 없구나.

 

[집주]

달항은 당(지방 행정의 단위)의 이름이다. 그 사람의 성명은 전해지지 않는다. 박학하되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는 것은 대개 그 배움의 넓음을 찬미하면서 한 예의 이름(한 가지의 예에 뛰어나다는 명성)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 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공자께서 듣고 문하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엇을 전문하랴. 마차몰기를 전문하랴, 활쏘기를 전문하랴. 나는 마차몰기를 전문하겠다.

 

[집주]

은 오직 (한 가지만을) 전문하는 것이다. (활쏘기)와 어(마차몰기)는 모두 하나의 예지만, 마차 몰기는 남의 종복이 되는 것이니 전문하는 것이 더욱 비천하다.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전문으로 하여 이름을 이루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장차 마차 몰기를 전문으로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남이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겸양의 말씀으로 이어 말씀하신 것이다.

윤씨가 말했다. 성인께서는 도가 완전하고 덕이 갖추어져 있으니 어떤 편벽된 장점을 지목할 수는 없다. 달항의 당인은 공자의 위대함을 보고 그 배운 바가 넓은데도 세상에서 하나의 선으로(어떤 특정 덕목에 뛰어나다고) 이름을 얻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으니, 대개 성인을 사모하면서도 (바로) 알지 못한 자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전문으로 하여 이름을 이루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장차 마차 몰기를 전문으로 할 것이다‘라 하신 것이다.

 

[세주]

주자가 말했다. 달항의 당인은 본디 공자를 (바로)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박학을 탄미하고 이름을 이룬 바가 없음을 안타까워했으니 하나의 선으로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극히 수준이 낮고 평범하다. 그러나 가까운 말을 살피는 자의 입장에서 볼 때, 여기서 곧 성인의 도덕이 순수하고 갖추어져 있어 하나의 선으로 이름 붙일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한 말)은 알 수는 있지만 (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 그 이유는 성인께서도 알지 못하시는 바가 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당인이 칭찬한 것으로써 스스로 자부하려 하지 않으시고, ‘꼭 나로 하여금 전문하는 바가 있어 이름을 이루게 한다면 나는 장차 마차 몰기를 전문으로 할 것이다라 하신 것이다.

남헌 장씨가 말했다. 달항의 당인은 공자의 박학을 크게 여기면서도 () 한쪽으로 치우친(특정 분야만의) 성취를 이루지 못했는지 의심했다. 무릇 어찌 근본과 말단,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하나로 꿰뚫는 도를 알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다만 하나의 예로써 스스로 자부하시고 또 예 가운데 그 낮은 것으로써 다시 자부하심으로써 도가 없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셨다.

후재 풍씨가 말했다. 마차몰기와 활쏘기를 전문하여 이름을 이룬 것은 왕양과 조보가 그 예이다. 대개 하나의 선을 전문으로 하거나 하나의 기술에 정밀한 자는 능히 이름을 이룰 수 있다. 예컨대 신인(믿을 만한 사람), 선인(착한 사람), 혜인(은혜로운 사람)의 경우는 그 선이 전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직의 농사, 예의 활쏘기, 추의 바둑의 경우는 그 기술이 정밀하기 때문이다. 배움이 넓은 것은 비록 (모든 분야의) 각각의 그 전문성과 정밀함을 다하는 것이지만 하나의 일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는 것이 곧 공자께서 위대한 이유이지만, 당인은 깨닫지 못했다. 요 임금은 백성들이 (요의 덕을) 이름을 붙일 수 없었는데, 이것이 요가 위대한 이유이리라.

 

- 세주완역논어집주대전 2권 자한편/한울아카데미 중에서 -

 

바람 생각 : 先儒의 고견에 잘하면 異說로나 남을 수 있는 견해를 말해보자. “남이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겸양의 말씀으로 이어 말씀하신 것이다는 이런 뜻도 있긴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고, 한편으로는 당인의 그 말을 어느 정도 진지하게 받은 것이다. 평범한 한 사람의 찬탄과 아쉬움의 말을 하늘 어딘가 한 구석에서 울려오는 소리로 받아들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만약 그런 것이 내게 주어진 天命과 같은 것이라면, 나는 마차몰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聖人의 길을 바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비천한 하나의 전문기술을 익혀 그것으로 이름을 내라고 명령할 리는 없을 것이다.

또 이런 저런 기예 중에서 마차 몰기를 택한 것은 그것이 더욱 비천한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것을 택했다기보다 마차 몰기가자신을 훌륭히 다스림이라는 닦음의 거친 반영물이기 때문에(말과 마차를 제어한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덕성의 제어를 의미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태워 목적지까지 간다는 고유의 속성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과 통하기 때문에 그 쪽을 택한 것이다. 즉 천명이 있어 마음속의 일을 전문으로 하지 말고 그 중심을 형이하학적인 사물로 옮겨 감각적인 사물을 통해 통달함을 얻으라’라고 한다면 여러 기예 중에서도 을 이루는 것과 유사한 마차 몰기를 하겠다는 것이다.

남헌 장씨의 말, “무릇 어찌 근본과 말단, 정밀한 것과 거친 것을 하나로 꿰뚫는 도를 알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공자께서는 다만 하나의 예로써 스스로 자부하시고 또 예 가운데 그 낮은 것으로써 다시 자부하심으로써 도가 없는 것이 없음을 드러내셨다.” 는 이 구절이 비슷한 의미이지만 마차 몰기 선택의 형이상학적 근거가 빠진 것이다.

후재 풍씨의 말, “예컨대 신인(믿을 만한 사람), 선인(착한 사람), 혜인(은혜로운 사람)의 경우는 그 선이 전문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신인, 선인, 혜인의 경우 그 선이 전문이라는 말은 공부하고 정진하여 그 선을 얻었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는 에 뜻을 두고 공부했다고 보아야 할 텐데, 도를 얻기 위한 공부의 결과 전인적인 품격 그 격이 높거나 낮거나 중간이거나 간에 을 얻은 것이 아니라 부분적인 덕성의 두드러짐을 얻어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다지 이치에 맞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그런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공부와 정진의 결과라기보다 타고난 성향의 영향이라고 해야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그 공부가 특정 부문으로 기울어져 조금은 편협하고 맹목적으로 행해졌다고 볼 수도 있게 된다.

활쏘기는 과녁의 중심을 적중시킨다는 의미에서 보다는 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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