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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무협 드라마

1년 정도에 걸쳐 저녁 식사 후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김용의 무협드라마 영웅문 3부작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보았다. 그중 의천도룡기는 제작연도별로 각기 다른 세 편을 보았다. 내용은 물론 황당하고 이야기 전개나 구성에서도 무리하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지만, 무협을 즐기는 것은 그런 점을 따지기보다 눈을 어지럽히는 화려한 장면과 무공 대결, 미모의 주인공과 그들의 연애담 때문일 것이다. 볼 때는 재미있게 보았지만 다 보고 난 지금 뭔가 정리해서 내 나름대로 그 위상位相을 한정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협드라마의 특징 한 가지를 말한다면, 그것이 이란 무엇인지 유달리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는 의 작용을 보여준다고 해도 될 것인데, 여기서 이란 넓게는 눈을 필두로 오감으로 알게 되는 모든 사물이고, 조금 좁혀서는 시각적인 사물 전체, 더 좁은 의미로는 이성異性의 유혹적인 면을 말한다. 의 작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정적으로 최대한 간결하게 말하여 유혹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합당한 이유와 무관하게 사람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끈다. 좁게는 異性이 그렇고, 조금 더 넓게 보면 아름다운 사물이 그렇고, 더 넓게 보면 접하는 세계가 모두 그럴 수 있다. 여기서 유혹이란 어휘를 부정적인 의미로만 쓴 것은 아니지만, 만일 듣기에 어감語感이 별로라면, 달리 표현해 감각 또는 감각적인 즐거움에의 초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협드라마가 그런 의 작용을 특별히 잘 보여주는데, 그것은 다른 부분은 조금 엉성하여 볼품이 없더라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장면들이 별다른 해석을 요하지 않으면서도 곧장 관객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는 듯한 무공의 펼침이고, 다른 하나는 미모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시청각적인 아름다움인데, 예를 들어 2014 신조협려의 이 막수(장형여張馨予)는 첫사랑에 실패하여 뭇 남자들에게 독랄한 수법을 구사하며 복수하는 미모의 무공 고수이다. 그녀의 무자비한 성격과 거침없는 살인에 호감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많은 관객이 그녀를 좋아라하고 어떤 블로거는 지존이라고까지 하는데 그것은 특출한 미모가 그녀의 다른 부분을 가리면서 그녀를 대표하기 때문이며, 이런 것이 말하자면 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리즈 전편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무공은 감각의 본산인 몸이 삶의 이런저런 문제 해결에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한다는 데서 관객의 호응을 얻고, 원래 아름다운 주인공이 그러한 무공 실력까지 갖추고, 나아가 협객俠客으로써 정신적인 가치인 의로움까지 성취한다고 하니 보는 이로서는 흥미와 만족이 더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기본 구도이고, 그에 따라 주인공이 성취하는 협의俠義도 단세포적이고 알량한 것으로 되기 쉽다는 점은,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듯한 황당한 무술 장면과 함께 무협이 결국 시간 죽이기 용 볼거리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3부작을 통해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 2014 신조협려의 곽정, 황룡 부부

 

본 사람들의 평에 의하면 1986 의천도룡기가 배역도 그렇고 원작에 충실하면서 무협의 본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는데 일부 공감.

 

10대 때 와룡생의 무협지를 포함하여 꽤 많이 읽었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건 군협지라는 이름과 주인공 서원평이라는 이름,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온 能空虛步라는 步法의 명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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