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전에 바둑사이트 사이버오로 게시판에 답변한 글입니다.
30년 동안의 수수께끼
수수께끼를 들려주는 흑백의 침묵
이른 새벽에 깨어났다. 5시. 머릿속이 매끄러워 더 이상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전진할 수 없는 벽 앞에 막막히 서 있는 불면(不眠).
그 벽에 그려진 그림이 허영(虛影)처럼 다가온다. 깨어나자마자 그 기보가 떠오르는 걸 보니 어제의 관심은 긴장의 다른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18점 접바둑에 이어 17점 접바둑에 대해 글을 쓴 것이 바로 어제였던 것이다.
필자의 바둑 공부는 고교 시절이 전부였다. 대학 졸업 후 입단을 전후해 책도 보았지만, 돌의 흐름에 대해서 적당한 관심을 유지해 유행 포석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중한 때는 충암 고 시절. 깊이 도움 받았던 책은 ‘현대의 명국’(1968) 10권. 오 청원과 기타니, 사카다, 다카가와, 후지사와의 진수를 담은 명국해설집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바둑보다 더 인상적으로 각인된 것은 흑백의 음영(陰影)들. 삭발한 오청원의 맑은 눈매와 적막이 감도는 대국장 풍경도 각별했지만 그들의 오후 한 때도 좋았다. 흑 돌이 가지런히 놓인 반상을 두고 후지사와의 설명에 귀 기울이던 그 한 때를 기억한 사진.
오늘의 기보가 바로 그 사진 속 반상이다. 그런데 이게 무엇일까. 1974년에 처음 보았으니 30년이 지났다. 가끔 생각하긴 했어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당대의 명인들이 머리를 맞댔던 모양이니 만큼 유희 이상의 뜻이 담겼으리라고 믿어지지만 아직까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오늘 새삼스레 그 모양이 가슴에 무겁게 얹혀 필자를 답답하게 한다. 그 추상적인 형상에 눌리는 탓일까. 그렇구나. 지난 번 18점과 17점 접바둑에서의 사활도 실전적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추상적인 질문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30년 전 인상(印象)이 의식 위로 떠올랐구나.
가끔 이런 문제를 마주하는 것이 약간은 고통스럽다. 바둑에서도 지식이 잡다해지면 잊고 싶은 것 또한 많아지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주제를 짧게나마 나름대로 들여다보는 바둑의 세계가 즐겁기도 하지만 때로는 수수께끼를 들려주는 흑백의 침묵으로 인해 불면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 자신이 아니라 바둑을 사랑하는 모든 분께 도움을 청해야 할 때인가 보다. 대체 이 그림은 무슨 질문을 내포한 것일까?
(문 용직 프로 5단 2003.02.25.)
philebus(관망) 의견
후지사와의 바둑돌
오로 산책을 보니 문 용직 사범님이 올린 글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둑판 위에 두 가지 형태로 흑 돌을 늘어놓고 후지사와가 오 청원에게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는 사진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 바둑돌의 행진이 가지는 의미가 때로 궁금하였다고 적고 있다.
나도 내용을 읽고 보니 그 돌들의 형태가 가지는 의미가 조금 궁금해졌다.
만약 유치원 어린이가 바둑판 위에 그런 형태로 돌을 늘어놓았다면 그저 무심하게 그러고 노는가 보다 하고 지나쳤겠지만 당대의 천재기사들이 돌을 늘어놓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면 대체 그 의미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법도 하다.
돌들의 형태는 복잡하지도 않고 두 가지 방식으로 연결되며, 한 지점에서 만나는 모양을 하고 있다.
1.귀에서 중앙으로 마늘모행진을 하며 천원까지 늘어선 형태.
2.변에서 중앙으로 일자로 늘어서며 천원에서 1번 마지막 돌과 만나는 형태.
이에 대해 어쩌면 우습기도 할 내 머리를 잠시 굴려보면,
첫째,
1번은 여지를 안고 있는 연결 형태라는 것.
무슨 여지냐 하면 백이 두 번 연달아 두면 끊어질 수 있는 여지.
연거푸 2번 둔다는 것은 바둑규칙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형태상으론 그렇다는 것.
2번은 그런 면에서 여지가 전혀 없는 불변의 형태라는 것.
둘째,
1번은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변화와 운동을 속성으로 한다는 것.
2번은 불변의 연결이라는 점에서 정지를 속성으로 한다는 것.
셋째,
1번은 바둑판 사각형 모양에서 대각선을 밟고 있으며, 그 점에서 무리수, 면적, 복합성, 상이성을 의미한다는 것.
2번은 사각형에서 한 변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 정수, 선분, 단일성, 동일성을 의미한다는 것.
넷째는 천원에서 두 형태가 만남으로 반대되는 두 성향을 하나로 묶고 있다는 것.
이상의 비약을 생각하면서 전에 읽었던 신화적인 이야기가 떠오른다.
세계를 창조할 때 운동과 정지의 두 성질이 가부 동수를 이루어 제우스가 마지막으로 결정적 한 표를 행사하여 운동으로 이 세계를 창공에 매달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운동을 끝없이 이어가면서도 그중에는 내가 보기에 정지한 것들도 있는 이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세계의 모든 사물은 상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한 점에서 묶여 있네.
고로 이성을 지닌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성질들을 조화시켜 아름다운 것으로 가꾸지 않으면 안 되네. 하고 후지사와는 오 청원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오청원은 후에 바둑을 조화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이상 오로 산책 글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문 사범님 글은 상당히 예리하고 치열한 점이 호감이 가네요.
건필 하시길...
philebus : 관련 바둑돌의 모양을 좀 더 정확히 말로 하면, 우상 귀 끝에서 천원까지 10개의 바둑돌이 마늘모로 이어져 있고, 우변 가장자리 중앙에서 천원까지 10개의 바둑돌이 일렬로 늘어서 있음. 천원의 돌은 겹치므로 총 바둑알은 19개, 45도의 각을 이루는 배열.
바둑판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