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크라테스 회상 1

 또 어느 날, 오랜만에 옛 제자를 만나자 그는 말했다.

 

“에우테로스, 어디서 오는 것인가?”

 

전쟁이 끝나서 국외에서 돌아와 지금은 여기에 있습니다.

국외에 있었던 재산은 몰수되고, 앗티카에서는 아버님이 한 푼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여기서 몸을 써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남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보다는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빚을 내려고 해도 저당 잡힐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일을 한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데, 몸이 얼마나 견디어 나갈 수 있겠는가?”

 

물론, 그다지 길지는 못할 것입니다.”

 

게다가 자네가 나이를 먹어 늙었을 때는 더욱 돈이 필요할 텐데, 분명히 자네가 늙으면 자네의 노동에 대한 품삯을 지불하려고 하는 자가 아무도 없을 것이네.”

 

그것은 말씀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나이를 먹어도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일을 즉시 착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데 있어 조수를 원하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일의 감독을 하거나 농작물의 수확을 담당하거나, 재산의 관리를 돕거나 해서 그쪽의 이익도 되는 한편 자신도 이익을 얻는 편이 좋다고 생각되는군.“

 

감사합니다, 소크라테스. 그러나 저는 노예가 되는 일만은 차마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 국가의 우두머리가 되어 나라 일을 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 때문에 전보다 노예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자유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네.”

 

소크라테스, 한 마디로 말해서 저는 남의 꾸짖음을 들으며 생활하는 것은 성격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에우테로스, 남의 꾸짖음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고, 또 무엇 하나 틀림없이 한다 해도 부당한 비난을 받지 않으며 지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세.

자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일만 해도 만약 자네가 비난을 받지 않고 지내는 것이 용이하다면 놀랄만한 일일 것이네.

꾸짖기 좋아하는 사람을 피하고, 정당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며, 자기 힘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고, 자기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피하며, 그리고 하는 일은 될 수 있는 대로 훌륭하게, 될 수 있는 대로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네.

이렇게 한다면 나는 자네가 남의 비난을 받는 일이 거의 없고, 곤궁을 벗어날 길을 쉽게 발견하며, 극히 안온하고도 안전하게 생활하고, 노후에 이르러서는 조금도 곤란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 저 최 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소크라테스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아테네의 평범한 시민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다.

여기 나오는 에우테로스는 자존심이 강하고 남의 간섭을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의 생계 활동에서도 융통성을 보이지 못하는 인물로 보인다.

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좀 더 여유롭게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충고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올바른 생활의 태도에 관해서도 상대의 상황에 맞게 조언하는데 이런 점이 크세노폰 저작 안에서 보이는 전반적인 소크라테스 언행의 특징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와 크세노폰의 저서에 나오는 소크라테스는 그 면모가 많이 다른데 그것은 일단 대화 상대의 차이로 보는 것이 비교적 알기 쉽다.

크세노폰의 저작에 등장하는 대화 상대는 주로 평범한 아테네 시민이고 플라톤의 대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철학적 이론과 논쟁에 몰두했던 소피스트이거나 그런 성향과 면모를 가진 사람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 중기 이후의 대화편들은 대체로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세노폰 속의 소크라테스는 생활 속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 그가 일반 시민이든 소피스트든 - 어떤 식으로든 도덕적 삶을 염두에 두도록 잔소리를 해댔지만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서는 단지 상대방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끝맺곤 하는데 그것은 그 상대의 생각이 워낙 쓸데없이 정교하고 집착이 커 그것을 허물기 전에는 어떤 간단하고 솔직한 도덕적 충고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크라테스 회상 3  (0) 2023.08.09
소크라테스 회상 2  (0) 2023.08.06
크리톤 3  (0) 2023.08.01
교언영색선의인  (0) 2023.07.30
크리톤 2  (0) 2023.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