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
Re: 문답10
그럼 어제에 이어 질문하겠습니다.
1. 넓은 의미로는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물리 화학적인 자극으로 움직임에 일정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궁극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컨대, 미래에 나노기술과 의학이 결합하여 우리 몸 안에 미세한 물질이나 전자기와 같은 것으로 영향을 줌으로써 일정 수준 실험자가 원하는 대로 피 실험자의 생각이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곱셈을 잘 아는 피 실험자를 상대로 3x3=9, 3x5=15라고 생각게 하면서, 다시 뒤이어 3x4=13이라고 스스로 확신케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즉, 정신에 있어 논리나 이치의 체계를 물리화학적인 자극을 가해 아주 망가뜨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뒤섞어 놓고 피 실험자 자신이 그 사실을 모르면서도 원래의 논리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중간에 관점을 바꾸었으므로 적절한 설명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바꾸는 자의 입장에서, 나중에는 바뀐 자의 입장에서 설명하셨으며, 둘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에 관한 고찰이 없습니다. 다시 설명 바랍니다. 또, 위의 경우는, 어디부터를 정신이라 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없으며, 단지 본인이 보면 정신, 타인이 보면 물리 화학적인 현상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살짝 비칠 뿐입니다. 명확한 구분, 내지는 확실히 정신인 것과 확실히 물리 화학인 것을 이야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 저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음미하여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음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바둑도 둘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되면 즐거운 법이죠.
=> 왜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되면 즐거운 것입니까?
3. 소피스트님도 말씀한 바 있듯이"나는 현재 절대적 진실을 모르고 있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아니라는 겁니다. 알 수 없다면 알기를 포기해야 하겠지만 현재 모르고 있다 라면 알기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알 수 있는지, 알 수 없는지도 아직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알 수 없다."는 말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있다."고 증명할 필요도 없고 현재로서는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절대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그 중간에 있을 테니까요. 그는 알려고 하는 고로 아직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입장에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불가지론에 대해 그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거기에 동의하여 남들처럼 불가지론을 주장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그 불가지론을 반박할 생각도 없습니다.
=> 저는 이미 우리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우리는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알기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으면 알고자 노력하되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인 냥 하여 다른 결론을 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님은 저의 이야기를 비판하신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이거 우습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 비판하시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러나 불가지론은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해 나가고자 한다면 명확히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가지론을 주장하실 필요까지는 없고, 그게 옳은 것 같은지, 아니면 그른 것 같은지에 대한 생각은 해 주시길 바랍니다.
4. 지난번에 이미 말씀을 드렸죠. 다시 한번 보면,
소피스트님의 입장에서 보면 승려들의 그런 의지도 역시 욕구의 하나이며, 그것을 그들이 끊으려 하는 세속적인 즐거움을 향한 욕구와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거겠죠. 그런데 제게는 그 각각의 욕구가 향하는 대상이 너무 달라 보이는 겁니다. 승려들의 의지는 그들의 말을 빌면, 적멸이나 열반이나 깨우침이나 이런 걸로 향하고 있고, 그들이 끊어내려는 욕구는 술이나 여자나 과식이나 명예욕이나 이런 걸로 향하고 있거든요. 이런 걸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님의 주장은 마치 흰색과 검은색이 너무도 분명하여 구분이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색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구분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들리거든요. 그리고 끊어 없애버리려고 하는 욕구는 주체로써, 그 끊어 없어짐의 대상이 되는 욕구는 주체가 아닌 타자로써 다른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무얼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죠. 정말 어떤 경우에도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는지, 또는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건지 다시 생각해봐 주시죠. 저는 현재 구분만을 얘기하고 있을 뿐, 승려의 욕구나 세속적인 욕구의 가치문제는 전혀 개입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끊어 없애버리려고 하는 욕구는 주체로써, 그 끊어 없어짐의 대상이 되는 욕구는 주체가 아닌 타자로써" 라는 거죠, 그리하여 두 가지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되고 다르다면 명칭도 달라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님이 굳이 구분을 원치 않는다면 그렇게 인정하겠다는 것이 제 말이었고, 그렇게 되면 님의 이론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말씀이었죠. 명칭을 달리하지 않아도 욕구를 구분한다는데 님이 동의하신다면,, 같은 욕구라 명명하더라도 자연히 다른 점이 드러나겠죠. 명칭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2차 방정식을 열심히 푸는 아이가 수학 실력 향상이라는 욕구를 쫒고 있다는 것을, 스님이 세속적 욕구를 떨치기 위해 수행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냐 하면, 저의 체험을 유추해서 그럴 것이라고 알았죠. 그리고 스님의 얘기는 책이나 게시판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노파심에서 인데, 저는 "문제를 풀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마도 수학지식을 높이겠다는 등 그의 욕구이겠지만"이라고 했었습니다. 여기서 초점은 정확히 어떤 욕구이냐가 아닙니다. 그래서 "등"이란 단어를 넣었죠. 단지 동기(욕구)와 문제를 풀 때의 사고를 구분하자는 얘기가 지금은 핵심이죠.
=> 아래의 것과 답변이 비슷할 것 같아 생략합니다.
5. 저는 학문적 구분이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구분이 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과 체험을 유추하여 다른 사람에게도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는 않겠지만 말이죠. 그러면 그만이죠. 달리 학문적인 구분을 할 이유가 저로서는 없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물건이나 음식을 들어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욕구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는 들 것이 없습니다. 위의 제 답변을 근거로 다시 한번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럼 그러십시오. 그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누차 말씀드렸듯이, 님의 욕구를 구분하는 것은 제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님이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시각에 대해 말씀하실 생각이 없으시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그냥 여흥이었다고 기억하겠습니다. 다만, 님이 그러한 구분을 하다가 문득 무언가 모순이 있다고 느끼실 때,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실 때, 또는 이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으실 때가 있으시다면 저의 이야기도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필요로 느껴지지 않는 것을 느껴라 느껴라 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장황하게 예를 들어 보아야 님에게는 "그냥 이야기"라고만 들릴 테니 님이 직접 겪으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동안, 저는 님과의 경우를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나 생각해 보겠습니다.*^^*
6. 님의 얘기는 "저는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다음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라는 거였고, 제 얘기는 누군가의 행동을 봄으로써 그가 어떤 생각(욕구)에서 그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였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보고 그가 마실 것에 대한 욕구로 인하여 마시고 있다든 가, 치타에게 쫓겨 뛰는 가젤을 보고 살려는 욕구로 인하여 뛰고 있다든가 하는 거죠. 예측한다는 님의 얘기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님에게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것을 물었던 것입니다. 어느 가젤이 님에게 살고 싶어 뛴다고 해 주었습니까?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젤의 거짓말은 아니었습니까? 단지 님이 가젤의 행동의 분석하고 그러려니 내린 결론은 아니었습니까?
7. 저는 자신에게 곧 해로움이나 고통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 하는 행위가 자유로운 행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죠. 그런데 님의 주장에 따르면, 남을 죽인다든가, 때린다든가, 마약을 한다든가,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든가 하는 행위가 모두 자유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지난번에도 설명을 드린 바 있는데,곧 후회할 행위를 한다는 것이 자유인가가 의심스러웠다는 얘기죠. 그런데 님의 설명을 듣고서 님이 나름대로 자유라는 의미를 저와 달리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래서 님의 이론을 우정에서 일단 인정한다고 했고, 그러나 그렇다면 또한 무의미하다고 한 거죠.
=> 제가 지난번에도 드린 말씀이지만, 곧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제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분석한 내용이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맞을 확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이야기입니다. 님의 경우도 제 데이터에 포함할 수 있도록, 제가 님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행동한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8. 일반적인 이유라니 뭘요? 소피스트님이 도덕이나 해야 한다는 말들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이 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필요했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구요, 반대되는 님의 얘기를 포함시키고서야 무슨 말이 되겠어요? 뭐가 옳지 않다는 건지 자세히 한번 말씀해 보시죠.
=> 님이 후에 말씀하신 입장, 즉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평형상태로 가는 경로였다는 시각에서 보면, 저의 행동이나 의견, 님의 의견 또한 그러한 경로의 일부로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시켜 분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나의 반례를 눈앞에 두고서도 이건 빼고 라며 한 가지 규칙을 세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요.
만약 이 입장을 번복하실 생각이라면, 도덕이라는 것들과 제가 이야기한 것들 중 어느 것이 정말 있다고 보기 좋은지, 왜 그런지에 대한 이야기로 족할 것입니다.
9. 너무 길어서 잘라내고 제 설명만 씁니다.
=> 질문이 제 이야기를 설명하기에는 산발적인 것이라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모양입니다. 다시 정리할 테니 이 관점에서 그동안의 문답을 다시 봐주십시오..
(0) 하나의 대원칙을 세우고 시작하자. 이왕 학문으로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고, 학문이라 함은 모두 인정할만한 진실을 찾고자 함이니,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것들은 사실로 치지 않도록 한다.
(1) 그러나 처음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지금 확실히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몇 번의 문답으로 간단히 증명될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2) 위의 것을 인정하고 논의를 시작하자.
그렇다면 우리가 바탕으로 삼아 판단을 내리고, 꼭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이것은 그저 믿고 있는 것이 따름이며, 이 믿음은 귀납적 사고의 결과, 경험을 통한 귀납적 학습과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 특성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귀납적 사고와 감각적 경험이라는 이야기의 증거로는 어린 아기의 행동에 대한 분석과 이를 통한 각종 일상생활에서의 행동 분석 등을 들 수 있겠고, 그저 믿고 있는 것이며 전혀 확실치 않다는 것의 증거로 이러한 우리의 믿음은 수시로 깨지고 새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번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겠다. (원한다면 여기에 패러다임의 이야기도 넣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3) 위의 결론을 인정함에 있어, 학문과 진실 자체에 대한 회의를 피할 수가 없다. 이는 적어도 지금 당장은 해결될 수가 없는 문제이며, 그 돌파구로서, 우리는 일종의 공리를 세우는 방법을 채택하기로 한다.
(3`) (2)의 논의에서 "우리가 안다고 느끼는 것은 그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다."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공리를 도출할 수가 있다.
"우리가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지금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이다. “
더 이상의 것은 없을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더 이상의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귀납적인 결론으로 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한 괜찮은 의견이 있다면 언제라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3``) 지금 그러하다고 믿는 것 중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믿음, 그리고 근본적인 믿음이 있어 언급함. 자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의심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이 또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여러 관찰 사실로 보아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자신의 주장을 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또한 우리의 한계 내에서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들어 하나의 공리로 놓기로 한다.
"나는 존재한다. “
(3```) 또 하나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어 언급한다. 세상을 인식하는 "나"에 관한 것은 우리가 "느끼는" "나의 의식"에 한정하여 이야기하도록 한다. 우리의 육체 또한 이 관점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종의 관찰 대상으로 포함될 수 있고, 의식과 직결되어 움직이는 것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밝혀져 인정할만한 사실로 보인다. 또한 과거 사용하던 육체와 구분되는 정신의 의미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분은 불명확한 것이며, 아직 그렇다 할 구분의 기준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어떠한 구분이 나타난다면 이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의식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하나의 가명제를 공리로 채택한다.
"나는 의지를 가진 존재다. “
(4) 이를 바탕으로 행동에 관한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나"가 행동한 것을 보았을 때, 모든 "나의 행동"은 "내 의지의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결론 역시 귀납적인 것이나 대부분의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이며, 지금까지의 탐구 결과는 이를 증명한다. 단, 신의 의지나 운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이나 운명을 명확히 정의, 혹은 증명할 수가 없으며, 일상적으로 보이는 의미로 볼 때에 신이나 운명은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것,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인정하는 것은 "나는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공리에 어긋나게 되며, 이는 탐구를 근본적으로 포기하는 것이 되고, 우리의 일상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생각하지 않는다.
(4`) "내 의지의 선택"은 "무엇이 나에게 더 나을 것인가에 대한 의식의 판단"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Practical한 이유에 의한 것이며, 그 증거로는 이 방식이 "낫지 않을 것이나 선택하는 일이 있다."는 시각보다 더 많은 사례들 - 지금까지 본 것들 모두 - 를 설명할 수 있음에 기인한다.
덧붙여, 이 의지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자유"로 보자고 제안한다. 이 또한 Practical한 이유에 의한 것임을 밝혀둔다.
(5) 여러 가지 뛰어넘고, 이를 바탕으로 도덕과 윤리에 관한 분석을 한다. 이미 (1)의 논의에서 절대적 진리에 관한 모든 것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도덕과 윤리를 어떤 "절대적 진리"나 "꼭 해야 하는 일"로 보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위에 설정한 공리를 바탕으로 분석하기로 한다. 즉, 각 "나"가 알고 있는 일종의 믿음 (혹은 지식)으로서 둘을 분석하며, 과정은 생략하나 이는 가능한 것이었다.
(6) 이를 모든 절대 명제의 경우로 확장한다.
(7) 여기서 모든 행동을 "정당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일상의 해석을 위해 (3`)의 공리를 확장 도입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지금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고, 선택의 경우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이다." 많은 현상의 설명이 가능하나 생략하며, 프랙티컬한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흠.. (7)의 결론에서 보면 "진리를 알고자 함"도 인정이 되겠지요? 하지만 알 수 있을 거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겠지요? 그래도 하고 싶은데 안 할 수는 없겠죠? 그저 그런 거지요…….*^^*
philebus(청년학도)
문답 11
글을 보니 이젠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문답이 길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고, 님은 학문적으로 생각하려 하는데, 저는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미 한두 번 한 말을 다시 되풀이하여야 한다는 점은 그다지 생산적이지도 못하고, 대화의 결과도 신통치 않을 것 같습니다.
서로 간에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게 된다면 그 지점부터는 굳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이죠.
아무튼 일단 답변부터 해보겠습니다.
=> 중간에 관점을 바꾸었으므로 적절한 설명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바꾸는 자의 입장에서, 나중에는 바뀐 자의 입장에서 설명하셨으며, 둘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에 관한 고찰이 없습니다. 다시 설명 바랍니다. 또, 위의 경우는, 어디부터를 정신이라 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없으며, 단지 본인이 보면 정신, 타인이 보면 물리 화학적인 현상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살짝 비칠 뿐입니다. 명확한 구분, 내지는 확실히 정신인 것과 확실히 물리 화학인 것을 이야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제 이야기는 정신은 물리 화학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데 그치는 거죠.
이것은 물론 님에게 학문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얘기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믿고 있는 바에 불과한 겁니다.
만약 님이 제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정당하게 반박할 수 있으면 해 주시면 돼요..
그럼 제가 님으로부터 배우게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님이 제 의견을 들은 것으로 끝나는 거죠.
적절한 설명인지 아닌지 그 기준에 제가 맞춰야 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제 답변이 아니다 싶으면 그 답변을 근거로 다시 질문을 만들어 물으면 되는 거죠.
저는 지금의 제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더 이상 학문적으로 뭘 어쩌고 싶진 않아요. 그 이상 뭘 어쩔 능력도 없지만, 능력이 있다 해도 그쪽으로 더 나아가 봐야 별로 제게 좋을 일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2. 저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음미하여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음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바둑도 둘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되면 즐거운 법이죠.
=> 왜 좋아하는 것을 얻게 되면 즐거운 것입니까?
*** 이런 질문을 보면 그동안 님이 자신의 생각에 얼마나 충실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님의 주장이 "사람은 자신이 좋다고 믿는 바를 구한다."는 거고, 그것이 욕망이며 자유라는 건데, 그 욕망은 사방으로 향한다고 님도 말씀한 바 있죠.
그런데, 갖가지 사물로 욕망이 향한다는 것만 알 뿐, 그 욕구의 목적을 하나로 총괄하면 무엇인가 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으신 것 같다는 말씀이죠.
모든 "하고픈 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욕망이란 어휘라면 그 하고 많은 욕망의 대상도 하나로 묶어 대응시킬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제 생각엔 "만족"이라는 겁니다.
즉, 욕망은 만족을 구한다는 얘기고 "즐거움"은 만족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언젠가 님이 자신의 이론을 공리로 본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욕망이 공리라면 그 욕망의 대상도 따라가서 같이 공리가 되어야겠죠.
성질상 둘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위 질문의 답은 진작 님이 알고 있어야 했을 것 같다는 말씀이죠.
하기야 저를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인지도 모르죠. 쩝…….
=> 저는 이미 우리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우리는 알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알기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으면 알고자 노력하되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아는 것인 냥 하여 다른 결론을 내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님은 저의 이야기를 비판하신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이거 우습게 되었습니다.*^^* 저는 절 비판하시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그러나 불가지론은 좀 더 근본적인 생각을 해 나가고자 한다면 명확히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불가지론을 주장하실 필요까지는 없고, 그게 옳은 것 같은지, 아니면 그른 것 같은지에 대한 생각은 해 주시길 바랍니다.
*** 여기서부터는 말씀드린 대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로서는 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6. 님의 얘기는 "저는 행동을 분석함으로써 다음 행동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라는 거였고, 제 얘기는 누군가의 행동을 봄으로써 그가 어떤 생각(욕구)에서 그 행동을 하였는지 알 수 있다는 거였죠. 물을 마시는 사람을 보고 그가 마실 것에 대한 욕구로 인하여 마시고 있다든가, 치타에게 쫓겨 뛰는 가젤을 보고 살려는 욕구로 인하여 뛰고 있다든가 하는 거죠. 예측한다는 님의 얘기와는 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님에게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것을 물었던 것입니다. 어느 가젤이 님에게 살고 싶어 뛴다고 해 주었습니까? 혹시 그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가젤의 거짓말은 아니었습니까? 단지 님이 가젤의 행동의 분석하고 그러려니 내린 결론은 아니었습니까?
*** 이것도 뭔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제 경험을 유추하여 남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고 몇 번 얘기했고, 님도 일상적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신 거죠.
그리고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는 얘기는 제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젤의 다음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제가 무엇에 쓰겠어요?
7. 저는 자신에게 곧 해로움이나 고통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 하는 행위가 자유로운 행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죠. 그런데 님의 주장에 따르면, 남을 죽인다든가, 때린다든가, 마약을 한다든가,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든가 하는 행위가 모두 자유라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지난번에도 설명을 드린 바 있는데,곧 후회할 행위를 한다는 것이 자유인가가 의심스러웠다는 얘기죠. 그런데 님의 설명을 듣고서 님이 나름대로 자유라는 의미를 저와 달리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서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래서 님의 이론을 우정에서 일단 인정한다고 했고, 그러나 그렇다면 또한 무의미하다고 한 거죠.
=> 제가 지난번에도 드린 말씀이지만, 곧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 또한 제가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분석한 내용이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맞을 확률이 극단적으로 높은 이야기입니다. 님의 경우도 제 데이터에 포함할 수 있도록, 제가 님이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행동한 경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 이것도 마찬가지 얘깁니다.
님의 말을 제가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능력이나 가능성이 결국 행위로 귀착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 얘기는 몇 번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님의 욕망과 자유 얘기가 부당하다기보다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데 있어요.
5분전에 한 행위는 그의 능력과 자유에 따른 것이라는 걸 저도 이미 오래전에 인정해 줬어요.
님의 얘기를 다 인정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5분 후에 그 행위를 후회한다면 그 욕망과 자유가 결국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님이 그것을 학문적 기초공사라고 한다면 그거야 님의 자유지만 말이죠.
8. 일반적인 이유라니 뭘요? 소피스트님이 도덕이나 해야 한다는 말들이 필요치 않다고 말씀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그런 것들이 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필요했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다는 거고요,, 반대되는 님의 얘기를 포함시키고서야 무슨 말이 되겠어요? 뭐가 옳지 않다는 건지 자세히 한번 말씀해 보시죠.
=> 님이 후에 말씀하신 입장, 즉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평형상태로 가는 경로였다는 시각에서 보면, 저의 행동이나 의견, 님의 의견 또한 그러한 경로의 일부로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에 포함시켜 분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나의 반례를 눈앞에 두고서도 이건 빼고 라며 한 가지 규칙을 세운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지요.
만약 이 입장을 번복하실 생각이라면, 도덕이라는 것들과 제가 이야기한 것들 중 어느 것이 정말 있다고 보기 좋은지, 왜 그런지에 대한 이야기로 족할 것입니다.
*** 이것도 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님의 주장이 있어서 제 얘기가 나온 거죠.
제가 먼저 평형상태 운운 한건 아닙니다.
9. 너무 길어서 잘라내고 제 설명만 씁니다.
=> 질문이 제 이야기를 설명하기에는 산발적인 것이라 이해가 잘 안 가시는 모양입니다. 다시 정리할 테니 이 관점에서 그동안의 문답을 다시 봐주십시오..
*** 님의 주장 잘 봤습니다.
먼저 문답에서 이어지던 주장과는 어휘나 구조가 틀려졌으니 다시 또 따져봐야겠죠.
하여간 님의 주장을 설사 인정한다 해도 아무런 유용성도 없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게 제 반박의 요지였죠.
이젠 님의 지난 주장에 대해 제게 다시 설명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질문도 어째 자꾸 "학문적"이란 말이 나오면서 별 진전이 없는 거 같은데…….
질문을 하시려면 계속해도 좋지만, 이쯤에서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가 질문을 하고 님이 답변하는 것으로 말이죠.
제가 강요하는 건 아니고 선택은 소피스트님의 몫입니다.
이만 안녕히.
소피스트
Re: 문답 11
1. 제 이야기는 정신은 물리화학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데 그치는 거죠. 이것은 물론 님에게 학문적으로 인정받으려는 얘기도 아니고 제가 그렇게 믿고 있는 바에 불과한 겁니다. 만약 님이 제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정당하게 반박할 수 있으면 해 주시면 돼요.. 그럼 제가 님으로부터 배우게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님이 제 의견을 들은 것으로 끝나는 거죠. 적절한 설명인지 아닌지 그 기준에 제가 맞춰야 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제 답변이 아니다 싶으면 그 답변을 근거로 다시 질문을 만들어 물으면 되는 거죠. 저는 지금의 제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지만 더 이상 학문적으로 뭘 어쩌고 싶진 않아요. 그 이상 뭘 어쩔 능력도 없지만, 능력이 있다 해도 그쪽으로 더 나아가봐야 별로 제게 좋을 일도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 그러면 애초에 왜 이야기를 시작하자신 건지..*^^* 저는 님이 님의 의견을 믿고 있지 않으리란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뭔가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다면, 단순 유희로 이야기나 나누져 뭐..*^^*
2. 이런 질문을 보면 그동안 님이 자신의 생각에 얼마나 충실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님의 주장이 "사람은 자신이 좋다고 믿는 바를 구한다."는 거고, 그것이 욕망이며 자유라는 건데, 그 욕망은 사방으로 향한다고 님도 말씀한 바 있죠. 그런데, 갖가지 사물로 욕망이 향한다는 것만 알 뿐, 그 욕구의 목적을 하나로 총괄하면 무엇인가 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으신 것 같다는 말씀이죠. 모든 "하고픈 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욕망이란 어휘라면 그 하고 많은 욕망의 대상도 하나로 묶어 대응시킬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제 생각엔 "만족"이라는 겁니다. 즉, 욕망은 만족을 구한다는 얘기고 "즐거움"은 만족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언젠가 님이 자신의 이론을 공리로 본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욕망이 공리라면 그 욕망의 대상도 따라가서 같이 공리가 되어야겠죠. 성질상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위 질문의 답은 진작 님이 알고 있어야 했을 것 같다는 말씀이죠. 하기야 저를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인지도 모르죠. 쩝…….
=> 아니, 도대체 뭘 인정하시고 뭘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를 공리로 치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걸 공리로 치려면 그게 적절한지부터 따져봐야겠지요. 님은 불가지론을 인정하지 아니하신다 하였고, 그렇다면 저의 이야기를 공리로 사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사용하는 척일 뿐이지요.. 불가지론이 없다면, 당연히 공리는 그 최초의 앎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답변 부탁드리지요.*^^*
3. 이것도 뭔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제 경험을 유추하여 남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고 몇 번 얘기했고, 님도 일상적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신 거죠. 그리고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는 얘기는 제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젤의 다음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제가 무엇에 쓰겠어요?
=> 예측하지 않는다면 님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생각하는 것 까지도. 님은 예측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예측일 뿐, 님이 그들의 욕망을 알고 계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4. 이것도 마찬가지 얘깁니다. 님의 말을 제가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능력이나 가능성이 결국 행위로 귀착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 얘기는 몇 번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님의 욕망과 자유 얘기가 부당하다기보다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데 있어요. 5분 전에 한 행위는 그의 능력과 자유에 따른 것이라는 걸 저도 이미 오래전에 인정해 줬어요. 님의 얘기를 다 인정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5분 후에 그 행위를 후회한다면 그 욕망과 자유가 결국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님이 그것을 학문적 기초공사라고 한다면 그거야 님의 자유지만 말이죠.
=> 그런 의미셨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님은 분명치 않은 말씀으로 제가 헛고생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별 볼일 없는 것이겠죠. 적어도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고,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그게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일까요? 적어도 님의 하루하루 만큼의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닐까요?
5. 이것도 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님의 주장이 있어서 제 얘기가 나온 거죠. 제가 먼저 평형상태 운운 한건 아닙니다.
=> 평형상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좋은 지적이라 미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다만, 둘 중에 한 시각을 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혹 둘 다 옳다고 믿으신다면 어떠어떠한 점에서 입니까??
6. 그럼 다시 전환하도록 하십시다. 다만 제가 님께 드린 질문에는 계속 대답해 주십시오.
philebus(청년학도)
문답 12
이번 질문과 답변을 보니 저로서는 문답의 초점이 뭔지 모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님의 얘기 상대로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님의 얘기를 점점 더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일단 하나씩 보죠.
=> 그러면 애초에 왜 이야기를 시작하자신 건지..*^^* 저는 님이 님의 의견을 믿고 있지 않으리란 생각은 해 본 일이 없습니다. 뭔가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다면, 단순 유희로 이야기나 나누져 뭐..*^^*
*** 요 얘기는 님이 질문하므로 써 시작된 거죠.
저는 단지 얌전하게 따라가면서 답변해 드린 거고요.
위의 말씀이 뭔 뜻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2. 이런 질문을 보면 그동안 님이 자신의 생각에 얼마나 충실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님의 주장이 "사람은 자신이 좋다고 믿는 바를 구한다."는 거고, 그것이 욕망이며 자유라는 건데, 그 욕망은 사방으로 향한다고 님도 말씀한 바 있죠. 그런데, 갖가지 사물로 욕망이 향한다는 것만 알 뿐, 그 욕구의 목적을 하나로 총괄하면 무엇인가 하는 데는 신경 쓰지 않으신 것 같다는 말씀이죠. 모든 "하고픈 것"을 하나로 묶은 것이 욕망이란 어휘라면 그 하고 많은 욕망의 대상도 하나로 묶어 대응시킬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제 생각엔 "만족"이라는 겁니다. 즉, 욕망은 만족을 구한다는 얘기고 "즐거움"은 만족의 다른 표현이라고 보면 됩니다. 언젠가 님이 자신의 이론을 공리로 본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욕망이 공리라면 그 욕망의 대상도 따라가서 같이 공리가 되어야겠죠. 성질상 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위 질문의 답은 진작 님이 알고 있어야 했을 것 같다는 말씀이죠. 하기야 저를 시험하려고 던진 질문인지도 모르죠. 쩝…….
=> 아니, 도대체 뭘 인정하시고 뭘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이야기를 공리로 치면 그렇게 쉽게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그걸 공리로 치려면 그게 적절한지부터 따져봐야겠지요. 님은 불가지론을 인정하지 아니하신다 하였고, 그렇다면 저의 이야기를 공리로 사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사용하는 척일 뿐이지요.. 불가지론이 없다면, 당연히 공리는 그 최초의 앎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답변 부탁드리지요.*^^*
*** 저는 님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문답을 나누었죠.
제가 불가지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님의 얘기에 근거를 두고 검토할 권리가 없는 건 아니죠.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이상은요.
3. 이것도 뭔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제 경험을 유추하여 남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고 몇 번 얘기했고, 님도 일상적으로는 그럴 것이라고 인정하신 거죠. 그리고 다음 행동을 예측한다는 얘기는 제 생각과는 거리가 멀어요. 가젤의 다음 행동이나 주변 사람들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제가 무엇에 쓰겠어요?
=> 예측하지 않는다면 님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생각하는 것 까지도. 님은 예측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예측일 뿐, 님이 그들의 욕망을 알고 계신 게 아니라는 겁니다.
***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제에서 떨어진 얘기 같아요.
예측이란 말과 안다는 말의 차이를 나타내려 하시는 것도 같은데, 그건 다른 문제죠.
님이나 저나 같은 인식의 레벨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거니까, 안다거나 믿는다거나 예측한다거나 하는 말은 무엇을 써도 지금은 큰 상관이 없죠.
4. 이것도 마찬가지 얘깁니다. 님의 말을 제가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능력이나 가능성이 결국 행위로 귀착된다는 얘기죠. 그런데 제 얘기는 몇 번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님의 욕망과 자유 얘기가 부당하다기보다 별 볼일 없는 것이라는데 있어요. 5분 전에 한 행위는 그의 능력과 자유에 따른 것이라는 걸 저도 이미 오래전에 인정해 줬어요. 님의 얘기를 다 인정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5분 후에 그 행위를 후회한다면 그 욕망과 자유가 결국 별 볼일 없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님이 그것을 학문적 기초공사라고 한다면 그거야 님의 자유지만 말이죠.
=> 그런 의미셨습니까? 그런 것이라면 님은 분명치 않은 말씀으로 제가 헛고생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별 볼일 없는 것이겠죠. 적어도 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의미는 없는 것입니다. 그저 일상적인 것들이고, 우리가 매일 누리고 있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그게 정말 별 볼일 없는 것일까요? 적어도 님의 하루하루 만큼의 의미는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저는 적지 않은 얘기를 했고 그 안에서 이미 몇 번 나왔던 말들이죠.
그리고 저는 님의 말이 의미가 없다는 거였죠.
일상적인 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라요.
5. 이것도 저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님의 주장이 있어서 제 얘기가 나온 거죠. 제가 먼저 평형상태 운운 한건 아닙니다.
=> 평형상태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좋은 지적이라 미리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다만, 둘 중에 한 시각을 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혹 둘 다 옳다고 믿으신다면 어떠어떠한 점에서 입니까??
*** 이것도 님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문장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해봐 주세요..
어제는 제가 다시 질문하려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 점은 다른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의 문답을 보니 이 주제에 관해서는 더 이상 질문 거리가 없을 것 같아요.
님이 원하신다면 제가 질문을 더 받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되도록 처음으로 돌아가 구체적으로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안녕히.
소피스트
Re: 문답 12
아, 좌절입니다~*^^*
그냥 관둘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님 외에도 요즘에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봤는데,
결국 하는 이야기는 두 가지더랍니다.
하나는 "시바~ 니 얘기대로라면 넌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못하는 거자나!“
또 하나는 "뭔 소리여 그게~ 몰러~“
첫째 대답을 하는 자라면 그래도 좀은 알아들은 사람입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모든 상황에서 할 수 있게만 되어도 제 이야기를 반은 알아들은 것이니까요.
허나 왜 제 이야기를 부정하는 데에만 제 이야기를 사용하는지,
그게 어떻게 부정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둘째 대답을 하는 자들은 그냥 도망가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려 한다는 것은 제 잘못이겠지요.
괜히 전혀 고민치 않는 사람을 건드린 것이니,
제가 그 사람에게 고마운 짓을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럴 때는 얼른 관두곤 합니다. 저는…….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참 드문 것 같아 무척 슬픕니다.
대부분은 이런 일에 관심도 없고,
관심 있는 자의 대부분은 이 사람이 데카르트를 따라 하나,, 흄을 따라 하나,, 분석하기에만 바쁘고,
그 나머지는 결코 질문에 대답하지를 않습니다.
정말 갑갑한 일입니다.
제가 적어도 백은 되는 사람들에게 불가지론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중 팔십구는 불가지론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하면서,
왜 그러하냐면 "그냥 그런 거 같아"만 연발하였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자 졸라 모르겠어. 어쩌면 나는 아무 의미도 없나 봐~“~“
나머지 열은 뭐냐고요?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답니다.
"야 데카르트 읽자. 야 흄이 말하기를 말야~ 하이데거는...""근데..""아이쒸 몰러!“
님도 제가 필요로 하던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주변에 이런 생각에 관심 있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제가 찾고 있더라고 전해주십시오.
물론 님이 질문하실 게 있다면 피하지는 않으렵니다.
그럼 이만~*^^*
philebus(청년학도)
문답 13
좌절이라니요, 당치 않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이론을 몰라주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내 얘기가 타당한지,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알맞은 제안인지, 그런 걸 열심히 따져보고 어디다 대고 얘기해도 부끄러움이 없다 싶으면 그걸로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지금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나중이라도 알아주겠죠.
저는 님의 주장을 다 인정해 드렸어요.
님은 불가지론을 현재 모릅니다. 라는 의미로 사용했고, 그래서 그럴만한 사실을 밑바닥에 놓자고 했고, 그래서 개인의 욕구와 자유를 인정했죠.
단지, 그 욕구를 구분해서 따져볼 필요가 있느냐 없느냐 에서 님과 제가 갈라진 거죠.
님의 주장을 인정해 드렸으니 그 주장을 근거로 님의 이론을 비판해도 문제가 없는 걸로 생각한 거고요.
내용에 전혀 알맹이가 없다 라거나, 욕망은 만족을 바란다 거나 하는 얘기로 말입니다.
그리고 불가지론에 대해서 저는, 우리는 현재 모릅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알 수 없다.라는 불가지론을 믿지 않는다고 했죠.
알 수 없다.라는 명제조차도 그 진실성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죠.
이 간단한 반박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거죠.
아무튼, 상심하지 마시길 바라고, 한 가지만 더 물어보렵니다.
백 사람이나 되는 사람에게 님이 얘기를 하셨다는데, 제가 궁금한 것은 소피스트님이 님의 욕구와 자유 이론을 남에게 해주면서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셨는지 궁금합니다.
분명히 상대가 님의 얘기에 설득되어 그 생각이나 마음이 이렇게 변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더욱이 님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말씀이죠.
그럼, 또 안녕히…….
소피스트
Re: 문답 13
역시 못 알아들으시겠지만,
남들이 나의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것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들이 알아듣고, 적절한 비판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부재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죠.
머.. 변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제가 그냥 조용히 떠났어야 하는데 그러기 미안해서 떠들어댄 거니 괘념치 마세요..*^^*
그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요?
어떨 때는 그가 나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랐고,
어떨 때는 그가 고민을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랐고,
어떨 때는 그가 나와 동조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발전하기를 바랐고,
어떨 때는 내가 그를 설득할 수 있을지를 보고 싶었고,
어떨 때는 그에게서 나의 이야기로 설명해 볼만한 문젯거리를 찾기를 바랐으며,
어떨 때는 그가 나의 생각을 묻기에 그냥 답하기도 했지요.
*^^*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나는 그 순간 그 생각을 말하고 싶어 하였고,
그리하여 말을 하였으며,
그들은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그 밑의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 채,
헛된 현상에의 반론만을 해대다,
제풀에 지쳐 관두자고 하였다는 것이죠…….*^^*
지금 떠올려보면 참 재미있는 대화들이었지요.
서로 제자리에 서서 얼굴만 붉히는.
님께는 무엇을 바랐을까요?
머... 비슷하겠지요.
단지, 정말 이해하고, 그 맥락에서의 질문을 던져주길 바랐을 겁니다.
문답 5,6을 지나면서 거의 포기하긴 했지만..*^^*
님. 만약 제 이야기를 정말로 이해하셨다면,
그 뒤의 이야기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불가지론을 이해했다면, 우리는 알 수 없다가 아니라 우리는 알 수 없을 것 같다면 어쩔지는 모르겠다."라는 것,
"내 욕망은 구분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남의 욕망을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이야기, 학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서로 마찰하며 따져보는 것이지, 혼자 믿는 것이라면 그건 그냥 사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
저는 "우리는 지금 같은 식으로는 알 수 없다."고 하였으되, "우리는 영원히 모른다!"고 하지 않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남의 욕망이 아니니, 그를 욕망으로 이해하지 말자."고 하였으되, "내 안의 욕망이든 뭐는 그게 그거여!"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럼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도록 하지요.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있으시다면 다시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빠~잇!*^^*
philebus(청년학도)
문답 14
저는 님의 말을 하나하나 따라가기 바빠서 그 말의 밑에 무엇이 있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죠.
님 같은 분이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흔히 그러듯 말 뒤에 숨어 있는 뜻이나 행간을 읽어주길 바란다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님의 글을 보니 소피스트님도 그들처럼 상대방이 자신이 하는 말의 행간이나 깊은 뜻을 알아채주길 바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내가 그들이 생각하는 그 밑의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 채……. “
"단지, 정말 이해하고, 그 맥락에서의 질문을 던져주길 바랐을 겁니다. “
그래서 어제의 질문을 드린 겁니다.
님이 자신의 주장을 누군가에게 할 때, 그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이 어떤 마음 상태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그 말을 하는 것인가 하고 말씀이죠.
그런데 답변은 좀 엉뚱한 것 같아요.
그 밑바탕이 되는 마음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 마음으로 인하여 어떤 행동이 나오길 바랐다는 얘기란 말이죠.
그래서 사람에 따라 이런 행동도 바랐고, 저런 행동도 바랐고, 하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럼 질문에 대한 답이 제겐 그다지 쓸모가 없는 것이니 제가 추정해서 한 번 말씀을 드리죠.
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으니,
"그러나, 지금 남들이 알아듣고, 적절한 비판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부재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죠. “
제가 악의에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느낀 대로 솔직하게 마지막 비판을 해드리겠습니다.
소피스트님의 이론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 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할 것을 기대했었는가?
제가 어제 물은 것은 이 내용이었는데 님의 답변이 어긋났으므로 제가 대신 답을 추정해 말해보겠습니다.
그들이 무언가 자신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생각보다 자유로운 상태이며, 굳이 도덕이나 또 다른 무엇에 얽매이지 않아도 아무런 불편함이나 문제가 없는 그런 상태로써, 환한 기분을 맛볼 수 있는 그런 희망적인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어떤 구체적인 유익함이 있을지에 대하여는 어떨까요?
님의 이야기는 실제적으로는 그들 각자 구체적인 행위나 행위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바는 전혀 없는 것입니다.
모두는 자유이며 자유롭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는 얘기니까.
돈을 벌려는 사람에게 뭔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건강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명예를 얻으려는 사람에게 힌트를 주는 것도 아니고, 술을 끊으려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뭔가 배우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고민이 있는 사람에게 해결책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즉, 듣는 사람의 기분을 괜히 좋게 하기는 하겠지만, 그가 원하는바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는 그 목적이 무엇이든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좋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긴 뭣하지만 그것은 욕망에 대한 지나친 아첨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요?
이 말로써 상대방에게 어떤 유익함이 있는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기분만을 좋게 하는 것이 아첨이라면 말이죠.
당신은 자유이며, 당신이 좋아하는 대로 하면 된다는 얘기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욕구에 대한 아부란 말이죠.
님이 말씀하는 "그들이 생각하는 그 밑의 것"이란 위와 같은 것이 아닐 런지요.
님의 얘기를 깊이 알아듣고, 까닭 없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것 말입니다.
인간에게 지나친 욕심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님의 말이 아무 알맹이도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무의미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어 자연스럽게 이 세계가 평화로워진다면 또한 누구도 그런 주장을 반박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세상에 도가 없으므로 공자도 노장 류의 무리를 멀리하고 천하를 주유한 거죠.
지금 세상에서도 님과 같은 주장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게 제 반박의 요지입니다.
님은 자신의 주장을 꽤 깊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 깊이를 다 인정하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것도 좋게 말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결국 결과적으로 위에서처럼 욕망에 대한 아부나 아첨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들이 님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적절한 비판을 해주길 바란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썼습니다.
덧붙인다면, 인간의 마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통찰이 없다면 그 어떤 학문도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될지, 그 반대가 될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지식이란 결국 인간을 아는 것이고, 인간을 아는 것이란 그 정신을 안다는 것이며, 그렇게 본다면 불가지론이란 또한 "우리는 인간의 정신에 대해 진실을 알 수 없다."라거나 "우리는 현재 인간의 정신을 모르고 있다."라는 등의 말도 될 테죠.
제 주장은 "알려고 힘쓰는 자가 있으며, 그는 불가지론에는 관심이 없다."는 애기가 되는 거고요.
저도 알려 고는 하지만 현재로는 뭐가 뭔지 제대로 아는 건 없고, 그렇다고 님처럼 가장 그럴듯한 것을 사실이라 치고, 남에게 뭐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피스트님과 저와의 대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져 서로 의견교환을 함으로써 짧은 동안이나마 이야기의 향연으로 즐겁게 보내고, 또 그로 인하여 앞으로 각자의 생각에 어떤 도움이 있게 된다면, 이는 철학의 발상지인 희랍의 무우사 여신 중 철학을 관장하는 한 분이나 또는 어떤 다이몬의 호의로 그리 된 것으로 간주하고, 감사를 드리면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래도 철학적인 주제였던 관계로…….)
그리고 질문을 짜증 내지 않고 받아주신 소피스트님께도 감사합니다.
저는 11월엔 나가 돌아다닐 일이 있어 이야기는 여기서 맺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더라도 가끔씩 님과의 대화를 떠올려보게도 될 것이고, 내용도 어쩌면 한 번씩 반추해 보게 될 것입니다.
나중이라도 제게 하실 얘기가 있으면 메일을 주십시오.
그리고 토론을 지켜보신 분들 중 제게 질문이나 말씀을 주실 분이 계시면 역시 메일을 주시면 환영하겠습니다.
메일은 theodoros@hanmail.net 입니다.
그럼 안녕히…….
소피스트
문답을 접으며..
저로서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글로서 설득하려 한 것인데,
잘 되지는 않는군요...*^^*
어떻든 얻은 것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 언젠가 또 이야기 나눌 기회가 오길 바라면서…….
중간중간 짜증 낸 거 받아주셔서 감사~!
그리고 사실, 우리 이야기는 별로 부딪힐 것이 없었답니다.*^^*
괜히 소크라테스 마냥 산파법을 써보려 한 저의 무리가,
행간을 읽어달라는 것 마냥 되어버렸군요…….*^^*
다이몬의 이름으로~ 빠이~ㅅ!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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