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답

아름다운 세상

 바둑 사이트 오로 게시판에 올라온 누군가의 글에 대해 제가 답변한 내용입니다

 

손 가는 데로 긁적이다.

N A M E 길손

*
무언가 어렵게 말하게 되는 건
나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원래 어려운 것이어서 설명이 잘 안 되는 것도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
형이상학은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간단해진다.
복잡다단한 기능을 가진 간의 조직이 단순한 것처럼,

*
자기주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남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사람은 피곤하다.

*
형이상이 형이상에 머물면 모순을 면할 길이 없다
논리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있다라는 주장은 필히 귀신이 없다라는 비판을 수반한다.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아름답다 추하다....,인간의 모든 논리가 상대적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 어찌해 볼 수 없는 숙명적 모순인 것이다

*
광활한 대평원은 분명 광활하지만 끝없는 우주에 비기면 한 점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광대하고 심오한 생각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지만 무한의 영역에서는 역시 티끌처럼 한없이 작은 존재인 것이다

*
세상은 실패작이다.
나의 단순무식한 논리는 이렇다.
고통 받고 괴로운 삶이 더 많은 세상은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나를 설득해서 세상을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게 해 주실 분
- 환영

*

한 가지 답변

N A M E   philebus(관망)

저는 이 게시판에 발을 들여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 길손님의 글을 몇 개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미루어 보더라도 필력과 내공이 매우 센 분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자신을 설득해서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 달라면 누가 쉽사리 그에 답변을 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인생에 대한 진지한 생각이 그에 대한 아무 답변도 없이 홀로 게시판 안으로 사라지는 것도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설득이라기보다 그저 제 생각을 가볍게 맞대응하여 피력하는 것으로 여기고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집 뒷산에서 뻐꾸기가 소리 내어 울자 앞마당 은행나무 위의 까치가 가만있을 수 없어 소리를 내는 식이죠.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아마도 길손님이 한 번 쯤은 책에서 보거나 듣거나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무한정한 것들의 한정됨으로 이 세계를 보면 아름답다고 생각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살아 있게 하는 그것을 영혼이라 부르든 욕망이나 또는 마음이나 의지라고 부르든 명칭은 일단 아무래도 좋지만 아무튼 그런 것이 있어 생물은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죠.
장미나 아카시아 나무를 보면 그것이 씨앗으로부터 발아하고 영양분을 섭취하고 자라나게 하는 힘이 본래 어딘 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조물주에 의해 장미는 장미의 형태로 아카시아는 아카시아의 형태로 한정된 거죠.
한정되기 이전에는 무한정한 것으로써 어디에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 우리의 이성으로는 짐작하기 어렵다고 해야겠습니다.
그러한 무한정한 그 무엇이 일정한 형태로 한정되어 자라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기며 그 씨앗은 다시 싹을 틔워 세대를 이어가는 식으로 본래의 무한정을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앞마당에 묶여있는 개나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초원의 사자나 하이에나도 마찬가지죠.
본래 무한정한 무엇이 개로, 사자로, 하이에나의 모습으로 한정되어 그들 자신은 지상에서 살아가며 각자에 부여된 즐거움과 고통을 누리거나 겪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계의 일원으로 조화로운 전체에 포섭되며 기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제가 볼 때는 지상에 한정되어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도 우선은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사자나 하이에나의 난폭함도 그 자신 한도 내에서의 난폭함이고, 장미나 아카시아의 무작정 뻗어나가는 삶과 번식에의 의지도 그 자신 한도 내에서의 그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무작정의 삶 속에서 천진난만한 새끼도 낳고, 아름다운 꽃도 피우는 것입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일단 아름답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은 아름다움의 의미에 관해서인데요,
어떤 사물이든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것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외 덧붙은 것은 대체로 천박하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예를 들면 집은 남향으로 지어져 겨울엔 햇볕이 집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여름엔 해가 지붕 위로 넘어가 볕이 들지 않게끔 하고, 통풍이 잘 되며 견고하게 만들어져 살기에 안전하고 편하다면 그 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거기에 이상한 조각을 덧붙이거나 수도꼭지에 금을 칠한다거나 괜히 화려하고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 여러 가지 장식을 덧붙인다면 그 집은 아름답다기보다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집이라고 보는 거죠.
변기나 총도 단지 쓰임새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거기에 쓸데없는 장식을 붙이거나 금을 입히거나 한 것은 별 볼일 없고 그로 인해 조금이라도 본래의 성능이 떨어진다면 오히려 천박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오로지 유용한 것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에서 나온 거죠.
이런 점에서 이 세계를 본다면, 만약 이 세계가 어떤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 전체로서의 이 세계는 당연히 아름답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볼 땐 세계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합당한 갖가지 생물들이 살아가기에 알맞게 이루어져 있고, 아마도 조물주의 배려이겠지만 수많은 종류의 동식물이 자기보존과 종족보존에 있어 조화를 이루며 세세손손 살아나가도록 지어져 있는 것이며, 그 점에서 아름다운 하나의 전체인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리거나 겪는 즐거움과 고통에 관해서는 그것을 궁극적인 목표나 최종적인 결과로 생각지 말고 '통과하여 지나치는 것'으로 간주하면 세상이 실패작이라는 해석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개개인이 살아가며, 즐거움과 고통을 통과하여 지나치면서 다시 무엇을 얻거나 무엇이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은 각자에게 달린 또 다른 문제일 것입니다.

길손님도 그렇고 여기는 유식한 분들이 많이 계시는 것 같은데 공자 앞에서 허접한 문자 쓴 셈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네요.
너그러이 보아 주시길...

'문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피스트 2  (0) 2023.07.15
소피스트 1  (0) 2023.07.13
직궁에 대한 명상 - 에피소드  (0) 2023.06.26
직궁에 대한 명상 4  (0) 2023.06.26
직궁에 대한 명상 3  (0) 2023.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