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
음.. 약간의 오해 발견!
자유 이야기가 좀 살펴볼만하다고 보시는 모양이죠?
사실 그렇게 비중 있게 한 이야기는 아닌데...-.-;
어떻든, 하나씩 답해 보도록 하지요.
1. 우리가 인간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어떤 특정한 대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설득하거나 길을 들이거나 변화시키거나 이용하려고 한다면 우선 그 대상에 대해 필요한 만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아무것도 모른다면 우린 그 대상에 대해 어떠한 의미 있는 행위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입니다.
=> 물론 인정합니다.
2. 대상에 대해 필요한 만큼 안다는 것은 본다든가, 듣는다든가 하는 감각의 활용이 있을 테고, 더 나아가 대상이 무엇으로 또는 어떤 성질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떤 부분들이 어떤 식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것, 즉 구조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또 그 대상은 전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각 부분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들을 파악하는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되는데…….
=>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구조를 아는 것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3. 지금 문제되는 철학함이나 과학탐구나 학문의 이용이나 어떤 말로 개인이나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나 모두 인간에 관한 문제라는데 동의하시죠? 말하자면,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든가, 대중을 설득한다든가 하는 문제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인 요소는 대상인 인간을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것. 바로 그거죠. 위에서 말한 대로 대상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면 어떠한 의미 있는 행위도 대상에 대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무지하기는커녕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4. 그럼 지금과 같은 경우에, 즉 과학이 인간에게 어떤 기여를 했는가, 또는 대중을 어떤 말로 어떤 방향으로 설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할 경우에도 우선 그 대상이 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상당히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5. 여기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안다는 것은 단지 사람을 보거나 듣는다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나아가 가능하다면 그 구조나 성향이나 성질, 가지고 있는 능력 등을 논해야겠죠?
=> 구조나 성향 등은 충분히 논할 가치가 있는 것이고, 이미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에 관한 것은 너무 다양하여 다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따지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 개인에 관한 것이라면 많이 알수록 좋겠죠.
6. 그리고 그렇게 논하더라도 지금 얘기되고 있는 주제로 보아 인간의 육체에 대하여는 그리 관심을 둘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구조나 성향, 성질 등을 알아야 하지만 육체적인 구조나 성질, 성향 등을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말씀이죠.
하지만 도중에 필요하다면 얘기할 수도 있겠죠.
=> 머……. 일단은 그렇습니다.
7. 그럼 남은 건 우리가 보통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니까 우리는 지금의 주제에 대해 충실히 토론하려면 인간의 정신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정신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고,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물론 가능하다면…….)
=>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는 아직 알기도 어렵고, 지금의 논의에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원자의 구조를 알아야만 원자의 성질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8. 인간이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이미 소피스트님이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인간의 욕구는 매우 다양한 방면으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지금 살펴보려고 하는 인간의 정신(욕구)이 매우 다채롭게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로 묶어 인간은 욕구하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아가고 있다라고만 말하고, 각각의 욕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 자세히 따져보지 않아도 무방합니까?
=> 깊이 따져보지 않아도 이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방을 향하고 있지요. 그 다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욕구가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그 욕구를 따른다는 점은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9.즉, 인간의 정신에 대해 단지 욕구와 욕구충족이라고만 알고서 과학이 인간에게 어떤 기여(욕구충족)를 했는지, 대중을 어떤 말로 어느 방향으로 설득해야 하는지 등을 충분히 밝힐 수가 있겠는가 하는 말이죠.
=> 제가 설득이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설득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요.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라 할 수 있겠고, 단지 그것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는 대신 그저 똑바로 바라보자는 것이 저의 의견이니까요. 무슨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 제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말하는 욕구를 따른다는 것은 가장 간단한,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성에 대한 것입니다. 헷갈리는 것을 없애기 위한 것이지요. 또한 지난번에 과학 이야기와 연계해하시는 질문이라면 지난번에 쓴 구절,
"만약 이 관점대신 기여를 구분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그 어떤 욕망 또한 호기심의 발생이전의 어떤 동기(어떤 욕구 충족에 OO가 필요한데 그게 맞나? 같은..)에 의해 설명될 것이므로, 복잡한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종래에는 이야기가 불가능하게 되겠지요. “를 다시 참조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질문을 드리지요.
1. 한 사람이 사과와 배중에서 더 좋아하는 배를 골라 먹었습니다. 이것은 하고 싶어서 한 일일까요?
2. 한 사람이 협박에 못 이겨 친구를 모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전혀 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강제로 한 것일까요? 신체적으로 가해질 위해에 대한 두려움과 친구를 버린다는 가책 중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3. 한 사람이 협박을 못 이겨 강도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강도짓을 하겠다고 한 것일까요.
헛……. 제대로 여러 질문을 하기엔 평소 생각해 둔 것이 적군요. 그러나 제가 이야기하는 가장 간단한 것으로 설명하기에 대해 생각하시기 엔 괜찮은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냐는 어지러운 논쟁거리로도 사용될 수 있겠군요. (어떻든, 다음 글에서 이에 대한 대답 부탁드립니다.)
어떻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 다음으로 대중의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제 말은 어째서 나왔냐 하면 소피스트님의 다음 얘기 때문이죠.
> "사실 제 말은 지금까지의 윤리나 도덕관념들을 다 깨어 버리자는 이야기도 될 수가 있어요.
> 물론 그 틀은 남겠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이야기지요. “
> 윤리나 도덕관념들을 다 깨어버리고도 개개인이 모두 충분히 도덕성을 유지한다는 말로 들렸고, 또 윤리 도덕관념을 인식하는 자세가 달라진다는 얘기는 그런 관념 아래에서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상황에 따라 최선의 행위를 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그런 건 성인이나 되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죠.
> 하지만 지금 보면 소피스트님 얘기는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 예컨대, 한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뭔가 호소하여 웬만큼 그대로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었다면 그게 설득이라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 그럼 비스마르크나 처칠이나 김일성이나 박정희나 나름대로 국민들을 설득한 거죠.
> 그리고 소피스트님은 그런 식으로 철학이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저는 철학이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을 철학의 고상한 목표, 즉 진리를 아는 자, 그리하여 올바른 자가 아직 그렇지 못한 자를 설득하는 걸로 생각했거든요.
> 만약 그렇다면 대중은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한 거고요.
> 그럼 이 점에 대해 소피스트님이 애초에 요구한 것. 즉 철학은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 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걸 말하는지 한번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시죠.
> 어떤 말을 해서 대중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는 건지 말이죠.
> 그리고 이미 예로 드신 "니네 다 자유롭다! 맘대로 해라! 한다면 이에 설득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라거나 "야! 내가 너희들을 설득하겠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니 맘~대로 해라!"라고 한다면? 오~! 아마도 설득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것은 혹시 단지 반박을 위해서 사용하신 건 아닌지…….
> 알맹이도 없고 현실성이 없으니까 말이죠.
> 지금의 토론이 자기 논리나 동어반복과 같은 것이 무엇인지 예를 들어 보여주는 자리는 아니지 않습니까?
> 예컨대 그 말을 들은 어떤 시민이 이렇게 되물어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그게 대체 무슨 뜻입니까? 왜 지금 그런 말을 하였습니까?"라고 말입니다.
=> 철학이 학문으로 남으려면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철학은 설득해야 하는 학문이다. 로 들으신 거 같네요. (그래서 자유 이야기에...-.-;)
제 이야기는, 철학이 학문이고자 한다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대중을 설득하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 누차 말씀드리지만 그것이 특정한 행동을 규정하는 Facktor까지로 확장된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자유에 관한 이야기도, 시민사회의 자유라는 것을 위해 "자유는 이러한 것이고 이러이러해야 지켜진다."라고 외치는 것은 학문적이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원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제가 흥분한 나머지 우스운 글을 쓰고 말았군요.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점 인정하며, 사과말씀 드리고 싶네요. 자유 이야기에 대해 질문하시기에.. 아래에도 말씀드리는 것은 가능한 상태, 제가 내려 본 어떤 결론에 대한 설명의 관점에서 읽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음……. 비스마르크 등등의 이야기도, 그 오해 때문에 나오신 것 같은데, 철학 자체의 이야기가 아닌 제 결론의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답변의 가치가 있어 보이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설득이 아닙니다. 설득이란 당하는 자가 옳다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들이 적절한 방법으로 대중을 움직이기는 했지만, 자유 이야기에서 철학이 그렇게까지 대중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중이 그걸 받아들였을 때 어떠할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니, 죄송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다시 읽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그럼 이 부분은 철학 이야기한 거 정리로 맺겠습니다.
철학은 설득할 수 있는 학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말 "학문다운 산 학문"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 설득을 위해서는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사실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자유의 예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시작하는 것의 예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민감한 부분이기에 오히려 당장은 설득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을 바탕으로 설명해 나간다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는 배척받던 과학이 지금 어떠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를 보아도 알 수 있겠지요. (과학을 사랑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현시대의 지배적인 방법론으로,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 군림하는 과학이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자유의 예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 효과가 그토록 도덕 말살 적이고 말세를 이끌어내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한 것 아니겠느냐는 거지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이상 저의 지금까지의 이야기였고 다음에 대한 대답드릴게요..
> "자유는 하고픈 걸 하고자 하는 것이다. 힘이 있는 자는 그 선택의 범위가 넓고, 힘이 적은 자는 그 선택의 범위가 좁다."라는 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예컨대 하고픈 걸 한다고 무엇이든 하는 건 아닐 테고 거기엔 타인의 자유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라는 단서가 붙을 걸로 생각됩니다만, 그렇다면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힘은 강제력이라는 것과 강제력과 동거하는 자유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그런 단서가 붙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러한 정의를 한 의미가 없지요. 힘의 개념을 이야기한 것도 무의미해 지고요. 대체 타인의 자유의 범위는 어딥니까? 우린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 겁니까? 실제로 그러한 자유를 상상해 볼 수가 있습니까? 이건 부자유를 내재한 자유는 아닌가요?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저의 정의에 그런 단서는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입니다. 머……. 물론 하고자 해도 안 될 수도 있지요. 좀 풀어서 이야기할까요? 자유란 선택에 소용이 되는 Facktor와 그에 대한 가치부여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힘, 즉 강제력은 이 선택을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실제로 느끼는 그대로, 여기저기서 서로 부딪히는 각자의 "자유"를 이 "힘"이 부딪히는 것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이니까요. 현실을 보십시오. 자유가 부딪히는 곳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힘이 더 강한 쪽입니다. 다른 경우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전혀 없습니다. 혹시 반례가 있다고 느끼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해석해 보겠습니다. 또 다른 예에 대한 저의 생각을 원하신다면 말씀하십시오.(단, 그 반례에 대해서도 그게 강자의 태도 변화는 아닌지 잘 생각해 주십시오. 갑자기 변덕을 부린 걸 반례로 보기엔 어려우니까요. 또, 자유의 충돌에서 그 배후에 어떤 힘이 있는지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대답해 두겠습니다. 적절치 않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럼 요약하지요.
> 인간의 욕구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 대한 이의 제기 및 답변 요청.
=> 직접 위를 읽으실 수밖에 없는 듯…….^^;
> 철학이 대중을 설득해야 한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며 어떤 범주를 가리키는 말인지 설명 요망.
=> 철학은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였는데 의미가 잘못 전달되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산 학문이 아니다"라는 이야기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 자기 자신에 있어 자유의 의미,(강제력, 강자의 의미) 설명 요망.
=> 자유란 "다음 하고픈 행동을 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제력은 그 선택을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강자는 힘이 강한 자입니다. 자세한 것은 위에.
마지막으로, 님께 부탁드린 것은 왠지 제가 시험받고 있거나(-.-;), 강의를 하고 있거나(-.-;)하는 것이지,
님과 대등한 위치에서 토론을 하는 게 아닌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 *^^*
또, 여긴 좀 어지러우니 철학 광장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philebus(청년학도)
Re: 음.. 약간의 오해 발견!
예, 모니터에 찍힌 문자로써의 답변은 잘 보았습니다만 그 글자들의 의미는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의 글에서는 소피스트님의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렸는데 지금에 와서는 더 모르게 되었습니다.
통상 누군가의 말을 자꾸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정상일 것 같은데 지금은 반대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전에는 하나하나의 어휘에는 신경을 그다지 쓰지 않고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는데 지금은 님이 쓰고 있는 설득, 자유, 힘, 강제력, 강자 따위의 단어가 무슨 의미로 쓴 건지 전혀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님은 마치 아킬레스처럼 달려가는데 저는 거북이처럼 뒤쫓아 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소피스트님의 토론 상대로는 제가 모자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자라는 사람이 배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묻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님은 그래도 친절히 답변을 잘해 주시니까요.
그리고 지난 글에서 드린 일련의 질문들에 대해서도 아주 짤막하게 잘 대답해 주셨으니까 역시 앞으로도 그 방법이 낫겠다 싶습니다.
원래 저는 일문일답식 토론을 선호하고 긴 글에 대해 다시 긴 글로 논쟁하는 것은 서투르죠.
그런데 게시판상에서 일문일답식으로 하는 것은 시간도 그렇고, 게시판 공간도 낭비가 되고 해서 일단 길게 써보았습니다만 우선 님의 글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니 역시 안 되겠어요.
그래서 괜찮으시다면 바로 전 답변 속에 쓴 것처럼 질문들을 묶어서 드려야겠습니다.
우선 소피스트님이 주신 질문에 답변을 하죠.
1. 한 사람이 사과와 배중에서 더 좋아하는 배를 골라 먹었습니다. 이것은 하고 싶어서 한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하고 싶어서 한 일입니다.
2. 한 사람이 협박에 못 이겨 친구를 모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전혀 하기를 원치 않은 일을 강제로 한 것일까요? 신체적으로 가해질 위해에 대한 두려움과 친구를 버린다는 가책 중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신체에 가해질 위해로 인해 자신이 받을 해로움이 친구를 모함하여 후에 자신이 받게 될 해로움보다 큰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보다 큰 해로움을 피하고 보다 작은 해로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3. 한 사람이 협박을 못 이겨 강도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차라리 강도짓을 하겠다고 한 것일까요.
*****위 2번과 같은 유형입니다.
협박에 따르는 해로움이 강도짓을 하여 자신이 입게 되는 해로움보다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으로서는 큰 해로움을 피하고 작은 해로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또 질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질문을 드릴 테니 가능한 짤막하게 답변해 주시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지난번처럼 말이죠.
1. 소피스트님이 생각하는 자유란 좋은 것입니까?
2. 누군가의 욕망이 아편이나 헤로인으로 향하여 그것들을 즐기다가 마약중독자가 되었을 경우, 그도 어쨌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겠죠?
3. 누군가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을 특히 좋아하게 되어 공부한 결과 박사도 되고 나아가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어떤 새로운 이론을 발견했다면 그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4. 또 누구는 특히 예쁜 여자에게로 욕망이 향하여 자주 창녀촌을 기웃거리며 여자를 사서 즐겼다면 그도 역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 거죠.
그리고 후에 성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욕구충족의 결과로 얻은 걸 테고요.
5. 바다구경을 못해본 내륙국가의 사람들에게 낙지를 보여주었더니 아이들 그림책만 보아온 그들이 모두 그 낙지를 문어라고 했다면, 그리고 낙지라고 말해주는데도 계속 그 사람들이 문어라고 우긴다면 그 낙지가 정말 문어로 변한 건 아닐 테죠.
생물학 도감 따위에 따른다면 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간에 낙지는 결국 낙지가 아니겠습니까?
6. 소피스트님이 자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했는데,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이 말 대로면 자유란 욕구와 동의어가 아닙니까?
7.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보면,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자유란 선택에 소용이 되는 Facktor와 그에 대한 가치부여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힘, 즉 강제력은 이 선택을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실제로 느끼는 그대로, 여기저기서 서로 부딪히는 각자의 "자유"를 이 "힘"이 부딪히는 것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이니까요. 현실을 보십시오. 자유가 부딪히는 곳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힘이 더 강한 쪽입니다. 다른 경우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전혀 없습니다.라는. 건데요.
*** 누군가 소주를 한 병 마셔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량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 한 병만 마시고자 했는데 마시고 보니 더 마시고 싶어 져서 한 병을 더 사 오라고 아내에게 요구했죠.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심부름을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아이 공부를 가르쳐 주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둘이 계속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아내가 술을 사주었죠.
이 경우에, 소주를 마시고자 한 것은 남편의 자유요, 술을 못 마시도록 하고자 한 것은 아내의 자유죠. 여기서 두 힘이 부딪힌 거죠.
그리고 힘센(강제력 있는) 남편이 이긴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소피스트님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란 예를 들면 위와 같은 경우입니까?
8. 설득했다거나 설득당했다는 말이란 다음과 같은 뜻이 아닐까요?
- 주식을 사려는 친구에게 부동산이 지금은 낫다고 설명한 결과 친구의 마음이 바뀌어 그가 부동산을 구입한 경우.
- 10+10=20 이란 걸 아이에게 가르쳐 주어 아이가 이해한 경우.
(그 아이는 그와 꼭 같은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경우 정답을 쓰겠죠.)
- 붕어 낚시를 할 때 어떤 낚싯대가 좋다는 내 설명을 듣고 친구가 그와 같은 낚싯대를 구입했을 경우.
반면에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 아침에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내 훈계를 들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녁에 거짓말을 하여 용돈을 타낼 경우 그 아이가 내 말에 설득된 건지.
-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비디오를 본 골초가 그 내용을 깊이 수긍하고 금연을 결심하였으나 일주일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운 경우 그 골초는 비디오 내용에 설득된 건지.
질문은 일단 여기까지 드리고 다음에 또 드리죠.
그리고 소피스트님이 마지막에 제게 물어 오신 것은 다음 부분이었죠.
"그렇다면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타인에게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힘이 있는 만큼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겁니까?"라는 제 질문에 대해 님의 답변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대답해 두겠습니다."라는 것이었고요.
제 질문 중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말은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술을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먹고, 연애를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고,
어쩌다 기분이 나빠 마음껏 욕을 하고 싶으면 아무나 붙잡고 욕설을 퍼부어도 좋으냐 하는 거죠. 즉, 나 자신이 마음속에서 요구하는 것이면 다 해도 되느냐 하는 얘깁니다.
그럼 이 부분도 다시 한번 답변을 부탁드려야겠군요.
그리고 어딘가 사과한다고 하신 부분은 그럴만한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저도 맞절하는 기분으로 일단 받고요. 말미에 저는 기분 상했던 것도 없었고요.
제가 소피스트님을 시험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하려는 건 아닙니다.
분명히 말씀드리면, 저는 소피스트님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좀 더 분명히 알고 싶다는 것. 그게 1차 목적입니다.
그리고 님의 말에서 뭔가 영감을 얻어 배우는 게 있다면 그건 제게 이득이고 그 이득의 일정 부분은 소피스트님 덕이죠.
이런 토론에서 다른 건 특별한 게 없습니다.
오늘은 사실상 질문뿐이니 요약은 생략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또…….
추: 철학 광장으로 옮기려 했는데 광고가 다 지워졌기에 그냥 씁니다.
소피스트
자유에 대한 정리. 그리고 새 이야기.
답변 잘 들었습니다. 님하고 저는 통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아님 님이 괜히 맞춰주시는 건지…….*^^*
맞습니다. 그걸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들,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를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는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이야기하면 명확하기 그지없는 결론이 나오지요. "자유"에 따라 "선택"했다는. 그 선택의 범위가 어떤 방식으로 한정되었든 말이지요. 이것저것 핑계 댈 것 없이,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이 선택하여 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맘대로 하는 것만 자유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 두면 나중에 다른 것들을 따질 때에도 매우 편리하답니다.
그럼 또 님의 질문에 대답드리겠습니다..
1. 소피스트님이 생각하는 자유란 좋은 것입니까?
=> 미리 정한 뜻대로 설명하면 바로 답이 나오겠죠. 자유는 그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를(혹은 신체에 대한 지배권을)갖고,(혹은 갖고 있다고 믿으며) 그에 따라 산다는 우리의 특성입니다. 좋고 나쁘고를 따질 대상이 아닌 것이죠. 머……. 제 경우에는 싫어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나의 특성인데 사랑하는 것이 좋겠죠.
2. 누군가의 욕망이 아편이나 헤로인으로 향하여 그것들을 즐기다가 마약중독자가 되었을 경우, 그도 어쨌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겠죠?
=> 그렇습니다.
3. 누군가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을 특히 좋아하게 되어 공부한 결과 박사도 되고 나아가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어떤 새로운 이론을 발견했다면 그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것도 그렇습니다.
4. 또 누구는 특히 예쁜 여자에게로 욕망이 향하여 자주 창녀촌을 기웃거리며 여자를 사서 즐겼다면 그도 역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 거죠. 그리고 후에 성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욕구충족의 결과로 얻은 걸 테고요.
=> 물론 그러합니다.
5. 바다구경을 못해본 내륙국가의 사람들에게 낙지를 보여주었더니 아이들 그림책만 보아온 그들이 모두 그 낙지를 문어라고 했다면, 그리고 낙지라고 말해주는데도 계속 그 사람들이 문어라고 우긴다면 그 낙지가 정말 문어로 변한 건 아닐 테죠.
=> 물론입니다, 설명해 주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내륙국가 사람들에게,(그들이 바다사람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낙지였던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문어였지요.
생물학 도감 따위에 따른다면 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간에 낙지는 결국 낙지가 아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보기에 그건 낙지가 맞는 것 같다."입니다.
6. 소피스트님이 자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했는데,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이 말 대로면 자유란 욕구와 동의어가 아닙니까?
=> 아니지요. "하고픈 것"이 욕구이고, "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7. 그리고 이어지는 말을 보면,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자유란 선택에 소용이 되는 Facktor와 그에 대한 가치부여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해서 다음 행동을 선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힘, 즉 강제력은 이 선택을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실제로 느끼는 그대로, 여기저기서 서로 부딪히는 각자의 "자유"를 이 "힘"이 부딪히는 것으로 보자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방법이니까요. 현실을 보십시오. 자유가 부딪히는 곳에서 항상 이기는 것은 힘이 더 강한 쪽입니다. 다른 경우는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전혀 없습니다.라는. 건데요.
*** 누군가 소주를 한 병 마셔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량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 한 병만 마시고자 했는데 마시고 보니 더 마시고 싶어 져서 한 병을 더 사 오라고 아내에게 요구했죠.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심부름을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아이 공부를 가르쳐주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둘이 계속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아내가 술을 사주었죠. 이 경우에, 소주를 마시고자 한 것은 남편의 자유요, 술을 못 마시도록 하고자 한 것은 아내의 자유죠. 여기서 두 힘이 부딪힌 거죠. 그리고 힘센(강제력 있는) 남편이 이긴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소피스트님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란 예를 들면 위와 같은 경우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습게 느껴지시나요? *^^* 그러나 본래 그렇게 우스운 것이지요. 제가 보아온 대부분의 문제는 이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8. 설득했다거나 설득당했다는 말이란 다음과 같은 뜻이 아닐까요?
- 주식을 사려는 친구에게 부동산이 지금은 낫다고 설명한 결과 친구의 마음이 바뀌어 그가 부동산을 구입한 경우.
- 10+10=20 이란 걸 아이에게 가르쳐 주어 아이가 이해한 경우. (그 아이는 그와 꼭 같은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경우 정답을 쓰겠죠.)
- 붕어낚시를 할 때 어떤 낚싯대가 좋다는 내 설명을 듣고 친구가 그와 같은 낚싯대를 구입했을 경우.
=> 맞습니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바뀌었고, 이해했고, 설명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 아침에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내 훈계를 들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녁에 거짓말을 하여 용돈을 타낼 경우 그 아이가 내 말에 설득된 건지.
-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비디오를 본 골초가 그 내용을 깊이 수긍하고 금연을 결심하였으나 일주일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운 경우 그 골초는 비디오 내용에 설득된 건지.
=> 와~ 벌써 이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오는군요! 그럼, 쉽게 보기 시리즈 두 번째입니다.*^^*
"세상을 보는 것은 '나'이다. 내가 보는 것에는 확실한 것이 없다(특히, 남의 생각의 경우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행동을 유추하는 것일 뿐.). 내가 확신하는 모든 것은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조건부로."
음……. 이건 정말 옳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저의 대답이라고 보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철학은 이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님이 긍정하실지 부정하실지 모르니, 일단 설명은 보류하겠습니다. 어떻든 이제 이 부분에 들어오면 "설득"이라는 말은 의미 없는 말이 되겠지요..
"아침에 난 아이가 내 말을 수긍했다고 믿었다. 아이는 어쩌면 정말 그러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지금 나는 아이가 내 말을 잊었거나, 혹은 수긍한 척만 했었다고 믿는다. “
"나는 골초가 비디오를 보고 피워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믿었다. 일주일간 그는 그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는 그 생각을 잊었거나, 그게 쓸데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다. “
음……. 설명하기가 복잡해지는군요. 간단히 말하면, 아침의 나는 그들이 설득된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혹은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나의 의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들이 원상태로 돌아온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혹은, 또 다른 행동의 변화가 일어났고, 이것이 나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입니다.)이 문제에 대해선 다시 찬찬히 이야기해 봅시다.
> 질문은 일단 여기까지 드리고 다음에 또 드리죠.
>
> 그리고 소피스트님이 마지막에 제게 물어 오신 것은 다음 부분이었죠.
>
> "그렇다면 누구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 타인에게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힘이 있는 만큼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겁니까?" 이라는 제 질문에 대해 님의 답변은,
>
>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고 대답해 두겠습니다." 라는 것이었고요.
>
> 제 질문 중 자기 자신에 대해서라는 말은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 말하자면, 술을 먹고 싶으면 마음대로 먹고, 연애를 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고,
> 어쩌다 기분이 나빠 마음껏 욕을 하고 싶으면 아무나 붙잡고 욕설을 퍼부어도 좋으냐 하는 거죠. 즉, 나 자신이 마음속에서 요구하는 것이면 다 해도 되느냐 하는 얘깁니다.
> 그럼 이 부분도 다시 한번 답변을 부탁드려야겠군요.
=> 그렇다면 답변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정말로"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럼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 볼까요.
*** 강의시간이 1시간 남았는데, 나는 지금 술을 무척 먹고 싶다. 그러나 나는 술을 먹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선택일까 아닐까? 나의 자유는 존중된 것일까 아닐까?
*** 기분이 나쁘던 나는 지나가던 사람을 잡고 욕을 퍼붓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선택일까 아닐까? 나의 자유는 존중된 것일까 아닐까?
이건 님의 답변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어제 질문과도 비슷한 내용이구……. 물론 당신은 당신의 자유를 십분 누리면서 결정을 한 것이겠지요. 강의 시간에 욕을 먹고, 수업에 빠지기보다는 술을 안 마시는 법을, 괜히 욕했다 얻어맞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거나, 혹은 미친놈 취급받기보다는 욕을 안 하는 편을 택한 것이지요. 당신은 당.신.의.마.음.이.요.구.하.는.대.로 (기분 나쁜 표현이라 생각지 마세요. 강조의 방법이 없어서…….*^^;;) 한 것이지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경우로 갈 수 있는 것이 자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해하시죠? 무슨 이야긴지..(우스운 이야기로 생각하시려나...-.-;)
그럼 요약하겠습니다.
님의 질문에 대해 제가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제가 말씀드린 자유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는 우리의 특성의 하나일 뿐입니다. 자유란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다음 행동을 선택한다는 의미로, 그 선택이 어떤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거나, 남을 존중하는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거나, 아님 누구에게 침해받을 수 있다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2. 새로 말씀드리게 된 내용도 있군요. "우리가 우리 주변에 대해 절대적인 진실을 알 방법은, 혹은 그게 절대적인 진실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을 믿을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필요하시다면 또 질문해 주십시오.
PS : 님의 말씀 고맙습니다. 그럼 용기를 갖고 대화를 계속하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큼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답니다.*^^*)
philebus(청년학도)
Re: 자유에 대한 정리. 그리고 새 이야기.
답변을 읽고 보니 어제보다는 뭔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아직은 분명치 않은 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이지만 힘을 내서 질문을 계속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에 보니 소피스트님도 이런 방식을 싫어하시지는 않는 것 같군요.
지난 질문에 이어서,
9.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고, 좋다고 생각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며,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시는지…….
뭔가를 먹는 사람은 그것이 건강유지를 위한 것이든, 즐거움을 위한 것이든 그렇게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먹는 것이며, 체조를 하는 사람도, 예방주사를 맞는 사람도, 바둑을 두는 사람도, 나아가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그 행위를 할 그 당시에는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10. 그리고 거리에 널린 오물을 피한다든지, 조직폭력배 같이 생긴 험악한 사람을 은연중에 피한다든지, 어린아이가 방과 후에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하여 집에 오지 않고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냄으로써 결국 가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들도 당시에 그 자신이 그런 것들은 피하는 것이 뭔가 당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지요?
11. 또, 위와 같이 좋다고 생각해서 행위를 했는데, 그 행위의 결과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겠죠?
어제 예를 든 것처럼 창녀와 즐겼는데, 며칠 후에 성병이 나타난 것처럼 말이죠.
또, 치과를 가지 않은 어린이가 결국 가벼운 충치를 심한 충치로 만들어 이를 뽑게 되었다면 이는 그 아이가 치과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판단한 적이 있었지만 종당에는 그 좋은 일이 이를 뽑는다는 나쁜 일의 원인이 되었다는 거죠.
12. 반대로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일로 연결되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어린이가 치과에 가지 않으려고 도망갔는데 어머니가 찾아내어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서 충치를 치료했다면 아이는 그토록 자신이 기피한 나쁜 일을 당했지만 그 결과 치아의 건강이라는 좋은 일을 만난 거죠.
13. 사람은 또한 더 좋은 것, 보다 좋은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그것을 얻기를 바라며, 실제로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토익 700점을 받은 사람이 900점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영어 공부를 하는 경우 말이죠. 또 과장으로 일하는 사람이 부장이 더 좋다고 생각하여 하루속히 부장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 열심히 애쓰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마릴린 먼로의 용모를 자신의 용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여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부러움에서 한발 나아가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들은 갖가지 방면에서 현재보다 더 나아지길 원하는 거죠.
14. 어제의 질문과 답변을 잠깐 다시 보면,
소피스트님이 자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했는데,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이 말 대로면 자유란 욕구와 동의어가 아닙니까?
=> 아니지요. "하고픈 것"이 욕구이고, "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라는 건데,
저는 왠지 아직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다음 질문의 예시에서 즉,
누군가 소주를 한 병 마셔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량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 한 병만 마시고자 했는데 마시고 보니 더 마시고 싶어져서 한 병을 더 사 오라고 아내에게 요구했죠.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심부름을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아이 공부를 가르쳐주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둘이 계속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아내가 술을 사주었죠. 이 경우에, 소주를 마시고자 한 것은 남편의 자유요, 술을 못 마시도록 하고자 한 것은 아내의 자유죠. 여기서 두 힘이 부딪힌 거죠. 그리고 힘센(강제력 있는) 남편이 이긴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소피스트님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란 예를 들면 위와 같은 경우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습게 느껴지시나요? *^^* 그러나 본래 그렇게 우스운 것이지요. 제가 보아온 대부분의 문제는 이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에서, 일단 제가 보기에는 어느 것 하나도 우스운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나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에도 이치는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남편의 자유는 무엇이고, 남편의 욕구는 무엇인지, 또 아내의 자유는 무엇이고 아내의 욕구는 무엇인지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마 더 이해가 쉬워질 것 같으니까요.
15. 그리고 다음과 같이 어제 문답을 나누었는데,
누군가의 욕망이 아편이나 헤로인으로 향하여 그것들을 즐기다가 마약중독자가 되었을 경우, 그도 어쨌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겠죠?
=> 그렇습니다.
누군가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을 특히 좋아하게 되어 공부한 결과 박사도 되고 나아가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어떤 새로운 이론을 발견했다면 그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것도 그렇습니다.
또 누구는 특히 예쁜 여자에게로 욕망이 향하여 자주 창녀촌을 기웃거리며 여자를 사서 즐겼다면 그도 역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킨 거죠. 그리고 후에 성병에 걸렸다면 그것은 욕구 충족의 결과로 얻은 걸 테고요.
=> 물론 그러합니다.
여기서 각각의 행위는 각자의 기준으로 보면 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여 욕구충족을 했죠. 그 점에 관한 한 셋이 동등하죠.
그런데, 셋이 모두 소피스트님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결정과 그에 따른 행위를 한 겁니까?
그리고 소피스트님의 주장은 여기까지 입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위 세 가지 경우에 각자의 자유로운 결정이면 되었지 무슨, 행위의 우열이나, 더 좋고 더 나쁨이나, 더 도덕적이고 더 비도덕적이냐 하는 걸 따지고, 사람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서로 권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금지하는 그런 행위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느냐 하는 말이죠.
16. 그리고 역시 어제의 문답에서 다음 부분,
바다구경을 못해본 내륙국가의 사람들에게 낙지를 보여주었더니 아이들 그림책만 보아온 그들이 모두 그 낙지를 문어라고 했다면, 그리고 낙지라고 말해주는데도 계속 그 사람들이 문어라고 우긴다면 그 낙지가 정말 문어로 변한 건 아닐 테죠.
=> 물론입니다, 설명해 주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내륙국가 사람들에게,(그들이 바다사람 놀리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낙지였던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문어였지요.
생물학 도감 따위에 따른다면 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간에 낙지는 결국 낙지가 아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보기에 그건 낙지가 맞는 것 같다."입니다.
제가 "생물학 도감 따위에 따른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가정된 기준이죠. 즉, 제 글 속에서는 기준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를 절대로 본다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던 간에 낙지는 결국 낙지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이 소피스트님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보기에 그건 낙지가 맞는 것 같다."라는 말보다 더 알기 쉬운 말이 아닐까요?
물론 생물학 도감이 옳게 편집되고 인쇄되었다는 전제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고 얘기가 쓸데없이 복잡해지죠.
소피스트님의 자세한 말의 의도를 짐작하긴 합니다.
진리나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각자 자신의 판단이나 믿음에 국한된다는 말일 테죠.
하지만 이야기의 레벨에 따라 그렇게 보아야 논변이 뚜렷해질 때가 있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있겠죠.
이건 별다른 문제도 아니고 중요한 얘기도 아니지만 그냥 짚어 봤습니다.
경우에 따라 앞으로의 얘기를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17. 그리고 다시 다음으로 가보면 이런 문답이 있는데,
설득했다거나 설득당했다는 말이란 다음과 같은 뜻이 아닐까요?
- 주식을 사려는 친구에게 부동산이 지금은 낫다고 설명한 결과 친구의 마음이 바뀌어 그가 부동산을 구입한 경우.
- 10+10=20 이란 걸 아이에게 가르쳐 주어 아이가 이해한 경우. (그 아이는 그와 꼭 같은 문제가 시험에 나오는 경우 정답을 쓰겠죠.)
- 붕어낚시를 할 때 어떤 낚싯대가 좋다는 내 설명을 듣고 친구가 그와 같은 낚싯대를 구입했을 경우.
=> 맞습니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 바뀌었고, 이해했고, 설명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런 경우는 어떻습니까?
- 아침에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는 내 훈계를 들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녁에 거짓말을 하여 용돈을 타낼 경우 그 아이가 내 말에 설득된 건지.
-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비디오를 본 골초가 그 내용을 깊이 수긍하고 금연을 결심하였으나 일주일 만에 다시 담배를 피운 경우 그 골초는 비디오 내용에 설득된 건지.
이런 내용이었죠.
그리고 아래는 지금까지 소피스트님이 말씀한 바, 철학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 관계되는 말들입니다.
"사회의 사상적 흐름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학문"입니다.
상아탑을 벗어나자는, 그리고 방법론을 개혁하자는,
상당히 진부한 이야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철학이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함은 그 설득의 종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종류의 설득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제 이야기는, 철학이 학문이고자 한다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대중을 설득하여 어떤 행동을 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학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같은 소피스트님의 주장이 저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기 힘듭니다.
그러니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위에 제가 든 5가지 예에 비추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무엇을 가지고 설득하느냐 하는 설득의 내용은 저나 소피스트님이나 모르는 거니까 건드리지 말고, 어떤 수준의 설득이어야 하느냐 하는데 초점을 맞춰 주시죠.
즉, 위의 예시 중 처음 세 가지 예와 같은 수준의 설득인가(이해와 행위가 일치하는), 아니면 그 밑에 있는 두 가지처럼 이해와 행위가 따로 노는 설득인가, 아니면 그 중간에 있는 다른 무언가 하는 것 말입니다.
비스마르크나 처칠과 같은 설득도 아니라고 하였으니까 뭔지 더 궁금합니다.
18.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으로 조금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죠.
소피스트님은 누군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서 서로 완전히 똑같은 사물은 어디에도 없다." 라고 한다면 그 말이 옳다고 믿습니까?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내가 무슨 시험관이나 된 것 같네요, 쩝…….)
하지만 재미도 있고, 님의 말대로 서로 발전의 여지도 있을 수 있으니까 별다르게 생각지 마시길.
그럼 안녕히…….
소피스트
답변
9.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고, 좋다고 생각되는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며,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피하려 한다는 것을 인정하시는지……. 뭔가를 먹는 사람은 그것이 건강유지를 위한 것이든, 즐거움을 위한 것이든 그렇게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먹는 것이며, 체조를 하는 사람도, 예방주사를 맞는 사람도, 바둑을 두는 사람도, 나아가 도둑질을 하는 사람도 그 행위를 할 그 당시에는 결국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서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10. 그리고 거리에 널린 오물을 피한다든지, 조직폭력배 같이 생긴 험악한 사람을 은연중에 피한다든지, 어린아이가 방과 후에 치과에 가기를 두려워하여 집에 오지 않고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냄으로써 결국 가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들도 당시에 그 자신이 그런 것들은 피하는 것이 뭔가 당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지요?
11. 또, 위와 같이 좋다고 생각해서 행위를 했는데, 그 행위의 결과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겨날 수도 있겠죠? 어제 예를 든 것처럼 창녀와 즐겼는데, 며칠 후에 성병이 나타난 것처럼 말이죠. 또, 치과를 가지 않은 어린이가 결국 가벼운 충치를 심한 충치로 만들어 이를 뽑게 되었다면 이는 그 아이가 치과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판단한 적이 있었지만 종당에는 그 좋은 일이 이를 뽑는다는 나쁜 일의 원인이 되었다는 거죠.
12. 반대로 나쁘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했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일로 연결되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위 어린이가 치과에 가지 않으려고 도망갔는데 어머니가 찾아내어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서 충치를 치료했다면 아이는 그토록 자신이 기피한 나쁜 일을 당했지만 그 결과 치아의 건강이라는 좋은 일을 만난 거죠.
13. 사람은 또한 더 좋은 것, 보다 좋은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그것을 얻기를 바라며, 실제로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토익700점을 받은 사람이 900점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하는 경우 말이죠. 또 과장으로 일하는 사람이 부장이 더 좋다고 생각하여 하루속히 부장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여 열심히 애쓰는 경우도 있을 테고요. 마릴린 먼로의 용모를 자신의 용모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여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부러움에서 한발 나아가 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들은 갖가지 방면에서 현재보다 더 나아지길 원하는 거죠.
=> 여기까지 모조리 그렇습니다.
14. 여기서 각각의 행위는 각자의 기준으로 보면 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여 욕구충족을 했죠. 그 점에 관한 한 셋이 동등하죠. 그런데, 셋이 모두 소피스트님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결정과 그에 따른 행위를 한 겁니까?
=> 물론 그렇습니다.
15. 그리고 소피스트님의 주장은 여기까지 입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위 세 가지 경우에 각자의 자유로운 결정이면 되었지 무슨, 행위의 우열이나, 더 좋고 더 나쁨이나, 더 도덕적이고 더 비도덕적이냐 하는 걸 따지고, 사람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서로 권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금지하는 그런 행위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느냐 하는 말이죠.
=>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주 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행위의 우열이나, 더 좋고 더 나쁨이나, 더 도덕적이고 더 비도덕적이냐 하는 걸 따지고, 사람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서로 권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금지하는 그런 행위"마저도 "여러 행동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행위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 어떤 경우이든 "꼭"이라는 단서는 붙지 않습니다.
16. 제가 "생물학 도감 따위에 따른다면"이라는 전제를 붙였는데 이것은 하나의 가정된 기준이죠. 즉, 제 글 속에서는 기준에 표시되어 있는 대로를 절대로 본다는 거죠. 그렇다면 제가 "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든 간에 낙지는 결국 낙지가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한 것이 소피스트님이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내가 보기에 그건 낙지가 맞는 것 같다." 라는 말보다 더 알기 쉬운 말이 아닐까요? 물론 생물학도감이 옳게 편집되고 인쇄되었다는 전제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고 얘기가 쓸데없이 복잡해지죠. 소피스트님의 자세한 말의 의도를 짐작하긴 합니다. 진리나 사실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각자 자신의 판단이나 믿음에 국한된다는 말일 테죠. 하지만 이야기의 레벨에 따라 그렇게 보아야 논변이 뚜렷해질 때가 있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도 있겠죠. 이건 별다른 문제도 아니고 중요한 얘기도 아니지만 그냥 짚어 봤습니다. 경우에 따라 앞으로의 얘기를 필요 이상으로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 몰론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전 님이 다른 몇몇 분들처럼 혼동하실까 봐 적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나누어주는 편이 나중에 안 헷갈리는 면도 있고요.
17. 이와 같은 소피스트님의 주장이 저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알기 힘듭니다. 그러니 대중을 설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위에 제가 든 5가지 예에 비추어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한번 말씀해 보시지요. 무엇을 가지고 설득하느냐 하는 설득의 내용은 저나 소피스트님이나 모르는 거니까 건드리지 말고, 어떤 수준의 설득이어야 하느냐 하는데 초점을 맞춰 주시죠. 즉, 위의 예시 중 처음 세 가지 예와 같은 수준의 설득인가(이해와 행위가 일치하는),아니면 그 밑에 있는 두 가지처럼 이해와 행위가 따로 노는 설득인가, 아니면 그 중간에 있는 다른 무언가 하는 것 말입니다. 비스마르크나 처칠과 같은 설득도 아니라고 하였으니까 뭔지 더 궁금합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설득할 수 있는"입니다. "객관적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군요.(사실, 저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여기에선 사용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누군가가 "이것이 삶의 목표이다."라고 주장한다고 해 봅시다.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고 해 봅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완전히 긍정하게 될까요? 아마 20~30퍼센트가 안 되겠지요. 만약 더 많은 사람이 긍정할만한 말을 한다면 그는 세계적인 철학자요, 역사에 기록되는 철학자로 남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정말 "철학적"이유에서 사람들이 받아들였는지는 고려치 않는다 하더라도요. 그러나 그의 말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건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이요, 세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옳고 그름에 대한 주장들은 돌고 돌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한 걸음을, 반복을 위한 걸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더 옳은 사고를 위한 기반이 될 한 걸음을 디뎌보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쌓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설득적인 주장, 직접적인 확인이 가능한 사실부터 찾아나가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들이 설득적인 주장,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행동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것이라면, 그걸 하고 싶어 하는 개개인이 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정리가 되시나요?
18.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으로 조금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리죠. 소피스트님은 누군가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서 서로 완전히 똑같은 사물은 어디에도 없다"라고 한다면 그 말이 옳다고 믿습니까?
=> 이것도 조건부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구분할 수가 없겠죠. 적어도 위치는 다르지 않겠어요?*^^* 물론, 둘을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았다면, 우리는 둘이 다른 것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비교를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있다면, 둘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설혹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이론으로 둘에게서 동일한 근사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더라도.
문답법이란 정말 좋은 것이지요. 생각이 변하고 발전하는 것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새로운 질문에 부딪혔을 때이니까요.*^^* 그럼 계속 잘 부탁드리고, 더욱 발전적인 토론이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전 님을 만난 게 무척 기쁘답니다.
philebus(청년학도)
자유와 설득 등- 문답
절 만난 것이 기쁘다니 저로서도 역시 작지 않은 기쁨입니다.
앞으로도 잘 보아주시기 바라고, 제가 들은 말로는 사람들과 밥이나 술을 같이 먹으면서 친구가 되긴 쉽지만 철학적인 토론을 나누면서 친구가 되긴 훨씬 어렵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이라고 하다가 서로 낯을 붉히며 돌아서는 것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플라톤의 말대로 '질이 나쁜 수탉'처럼 정밀한 논박도 없이 성급하게 남의 이론 위에 올라타서 자신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려는 사람들도 여기저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토론이라고 해도 당사자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거겠죠.
지금의 우리야 그렇게 될 것 같진 않으니까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럼 이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제의 제 질문에 대해 답변이 빠진 것이 있네요.
(14).어제의 질문과 답변을 잠깐 다시 보면,
소피스트님이 자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씀했는데,
말 그대로 하고픈 것을 "하.고.자.하.는.것". 이 말 대로면 자유란 욕구와 동의어가 아닙니까?
=> 아니지요. "하고픈 것"이 욕구이고, "하고자 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라는 건데,
저는 왠지 아직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다음 질문의 예시에서 즉,
누군가 소주를 한 병 마셔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량을 알기 때문에 처음에 한 병만 마시고자 했는데 마시고 보니 더 마시고 싶어져서 한 병을 더 사 오라고 아내에게 요구했죠. 그런데 아내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해서 심부름을 거부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아이 공부를 가르쳐주길 바랐거든요. 그래서 둘이 계속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커지는 것을 우려한 아내가 술을 사주었죠. 이 경우에, 소주를 마시고자 한 것은 남편의 자유요, 술을 못 마시도록 하고자 한 것은 아내의 자유죠. 여기서 두 힘이 부딪힌 거죠. 그리고 힘센(강제력 있는) 남편이 이긴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이길 수도 있겠지만…….
소피스트님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란 예를 들면 위와 같은 경우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습게 느껴지시나요? *^^* 그러나 본래 그렇게 우스운 것이지요. 제가 보아온 대부분의 문제는 이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여기에서, 일단 제가 보기에는 어느 것 하나도 우스운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나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에도 이치는 있으니까요.
그럼 여기서 남편의 자유는 무엇이고, 남편의 욕구는 무엇인지, 또 아내의 자유는 무엇이고 아내의 욕구는 무엇인지 지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아마 더 이해가 쉬워질 것 같으니까요.
이상이었죠. 다시 한번 답변을 부탁드리고…….
19. 사람은 때때로 상반되는 두 욕구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일이 있다는 점에 동의하시죠?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욕구와 건강을 위해 끊어야겠다는 욕구, 빵을 먹고 싶다는 욕구와 다이어트를 위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욕구, 자고 싶다는 욕구와 경비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면 안 된다는 욕구 등등. 따져보면 많을 것 같습니다.
20. 어제 질문 9-13에 있었던 내용을 모조리 긍정해 주셨습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구하고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을 피한다는 거죠. 그리고 더 좋은 것을 바란다는 거구요.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누구나가 자신에게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구하지만 그 구함이 항상 성공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죠?
시험에 떨어진다거나 구애에 실패한다거나 하다못해 도둑질에 실패한다거나 하는 것 말입니다.
그렇다면 구함에 성공하는 사람은 바로 그 점에 있어 실패한 사람보다 현명하거나 지식이 있거나 지혜롭거나 능력이 있거나 한 것이 아닐까요?
운수를 제외하면 말이죠.
또한 그런 식의 성공과 실패는 인간사의 모든 부문에 있게 마련이니까 사람들 중에는 필연적으로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또는 능력 있는 사람도, 무능한 사람도 있는 거겠죠?
21.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구하는데 그 좋은 것을 손에 넣었을 때 누구나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이 행복하려면(행복감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어리석지 말고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좋다고 생각되는 것을 얻는데 가급적 실패가 없을 테니까요.
22. 그럼 여기서 소피스트님이 얘기하는 자유를 가진 사람, 즉 자유로운 사람은 위에 예로든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또는 지혜나 능력과 무지나 무능력은 자유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23. 그리고 어제 님의 답변 중에서,
=> 아닙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주 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행위의 우열이나, 더 좋고 더 나쁨이나, 더 도덕적이고 더 비도덕적이냐 하는 걸 따지고, 사람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서로 권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가급적 금지하는 그런 행위"마저도 "여러 행동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행위도 마찬가지로, 개인의 자유에 따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단, 어떤 경우이든 "꼭"이라는 단서는 붙지 않습니다. 라는 것이 있었는데,
여기서 소피스트님이 방관자나 제삼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어서 한번 생각해 보시죠. 소피스트님은 주변인들의 특정한 행위에 대해 행위의 우열이나, 더 좋고 더 나쁨이나, 더 도덕적이고 더 비도덕적이냐 하는 걸 가만히 따져보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좋다고 생각되는 것은 적극 권하지만 더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적극 금지하는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면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나 이외의 타인이 더 나쁘거나 비도덕적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저 수수방관하는 사람입니까?
24. 그리고 소피스트님이 말씀하는 설득의 의미에 대해서인데, 다음 답변 말이죠.
=>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설득할 수 있는"입니다. "객관적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군요.(사실, 저는 객관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로 여기에선 사용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누군가가 "이것이 삶의 목포이다."라고 주장한다고 해 봅시다. 혹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주장한다고 해 봅시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중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의 주장에 완전히 긍정하게 될까요? 아마 20~30퍼센트가 안 되겠지요. 만약 더 많은 사람이 긍정할만한 말을 한다면 그는 세계적인 철학자요, 역사에 기록되는 철학자로 남을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정말 "철학적"이유에서 사람들이 받아들였는지는 고려치 않는다 하더라도요. 그러나 그의 말도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건 사람들이 변하기 때문이요, 세상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옳고 그름에 대한 주장들은 돌고 돌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한 걸음을, 반복을 위한 걸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과 더 옳은 사고를 위한 기반이 될 한 걸음을 디뎌보자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하나 쌓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설득적인 주장, 직접적인 확인이 가능한 사실부터 찾아나가야 할 것이고, 이러한 사실들이 설득적인 주장, 설득할 수 있는 주장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행동을 바꾸도록 설득하는 것이라면, 그걸 하고 싶어 하는 개개인이 해 나가면 되는 것이지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정리가 되시나요?
이상이 님의 답변인데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님이 "설득"이라는 어휘를 과연 무슨 의미로 사용했느냐입니다..
"설득할 수 있는"이라거나 또는"설득하여야 하는"이라거나 하는 것은 지금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설득이라는 어휘를 사용한 이상 그것이 무의미한 것일 수는 없고, 어떤 의미가 들어 있을 텐데 그 의미 중에서 내용이 아니라 수준에 대해 알고자 하는 거죠.
말하자면 님이 말하는 설득이란 듣는 대중의 마음과 행위를 어떤 식으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는가 하는 얘기죠.
위 답변을 보면 많은 사람이 긍정할수록 얘기를 한 사람은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는 거죠.
그럼 함께 한번 생각해 볼까요.
일요일 오후에 쇼펜하우어나 니체나 헤겔이나 사르트르를 읽고 누군가의 사상에 흠뻑 젖어 과연 하고 무릎을 치며 그의 사상에 동조하더라도, 월요일 아침이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더 이상 어떤 철학적 사상에 젖어 있지도 않고 씩씩하게 출근하여 오늘은 어떻게 영업을 전개함으로써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느냐 하는 심정으로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퇴근 후에 회식자리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즐겁게 할까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젊은이는 쇼펜하우어를 매우 그럴듯하게 생각했지만 회사 내의 아름다운 아가씨를 한번 보고 나서 낮이나 밤이나 그녀 생각에 들떠 있고 한편으로 그녀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는 상상을 곧잘 하게도 되지 않을까요?
대개의 경우가 이러하다면 세계적인 철학자는 그의 구독자들에게 어떤 좋은 변화나 영향을 주었다고 말해야 할까요?
이건 좀 가혹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그들은 그의 독자들에게 단지 립서비스를 한 것이라고 보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읽는 동안의, 또는 생각하는 동안의 즐거움을 선사하긴 했지만 그 이상의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가 아닌가 하는 거죠.
하긴 꼭 그런 것이 아니라 쇼펜하우어를 읽고 세상에 염증을 느끼던 중 다시 불교 서적을 읽고 입산하여 승려가 되든지 불교신자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사례는 20-30%가 아니라 0.1%도 안 될 것 같고요. 또 종교의 영향일 테니 철학과는 또 다른 얘기가 될 테고.
대개의 경우는 위에서 제가 말하는 대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철학이 대중을 설득할 수 있는" 학문이 된다는 것도" 철학은 대중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는 말이 될 것 같은데…….
제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고 의견을 정리해서 좀 명료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25. 그럼 다음을 보면 이런 답변을 주셨지요,
=> 이것도 조건부로 옳은 이야기입니다. 완전히 같은 것이라면 우리가 구분할 수가 없겠죠. 적어도 위치는 다르지 않겠어요?*^^* 물론, 둘을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았다면, 우리는 둘이 다른 것이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비교를 하게 되는 상황에 처해있다면, 둘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설혹 우리가 완전히 동일한 이론으로 둘에게서 동일한 근사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더라도.
말씀대로 비교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 중에서 라고 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보면 위치야 다르다고 해야겠죠.
님의 답변은 서로 완전히 똑같은 사물은 없다는데 동의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소피스트님은 그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알았다는 말이 맘에 안 들면 고쳐도 되죠.
똑같은 사물은 없다는 것을 어떤 근거로 믿게 되었습니까?라고 말이죠.
26. 그리고 그 이전 답변내용을 보면,
새로 말씀드리게 된 내용도 있군요. "우리가 우리 주변에 대해 절대적인 진실을 알 방법은, 혹은 그게 절대적인 진실인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을 믿을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필요하시다면 또 질문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지금 위 글을 글자 모양 그대로 보는 것도, 그리고 그 글이 무슨 의미라고 이해하는 것도 모두 '지금 이 순간', 진실이라 '믿어지는 것'일뿐이라는 얘기죠?
그리고 그것이 절대적인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절대적으로 신뢰할만한 글도 아니라는 셈이 되는 거겠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제가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올리고 아니면 월요일에 올리겠습니다. 그럼 주말 잘 보내시고, 이만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