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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지식인에 대하여 2

[먹물/대화] 지식인을 그 자체로…….보충

 

이군 :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지식인의 특질에 관해 돌아가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아무래도 확실치 않은 점이 있는 것 같아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김 선생 : 그런가? 올바른 질문이야말로 그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 다 같이 유익한 것이 아닌가 하네.
그래, 그게 무엇인가? 내가 답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루어 두지 않고 모두 얘기할 테니 말해 보게.

이군 : 그러죠. 제 질문이 약간 피상적으로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이렇습니다. 지식인의 특질이란 그의 사고 중에 떠오르는 이미지성 생각을 뒤따라오는 언어적 사고로써 비판함에 있다.
또한 그 비판의 기준은 다양하며, 금전적 이익이나 체면, 명예나 자신의 안위 혹은 올바름이나 정의가 될 수도 있다고 하신 걸로 아는데요.

김 선생 : ……. 그랬지. 계속해 보게.

이군 : 이후는 저의 추측입니다.
어쩌면 제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라면 지금 선생님께 드리려는 질문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배우지는 못했으나 평범한 사람으로서 거의 나무랄 데 없는 도덕성을 발휘하며 평생 동안 살아가는 농부나 어부나 단순 노무자를 나름대로 높이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일반적인 의미에서 아는 것이 없다는 말은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지식인들에게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철학이나 신학적인 제 문제들을 물었을 때 지식인들은 대체로 자기 입장에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지만 다른 쪽은 모른다고 말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도덕성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며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마음이나 타인에 대한 단순한 호의에서나 정직함이나 기타 인간관계에 있어 우리가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 관한 한 저는 결코 그들이 지식인들에게 뒤떨어진다고 생각되지는 않는군요.
, 무슨 말씀인가 하면 지식인은 분석 비판하여야 할 것을 이미 앞에 가지고 난 뒤에 그를 비판하는 말이 뒤따르게 되며 필연적으로 그에 부수되는 노고를 감당하여야만 하게 되지만 지식인이 아니면서도 올바른 사람들은 그런 수고가 필요치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 그들은 대체로 비판이 필요치 않는 참된 생각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그 생각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는 한 상대편이 말이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지식인보다 별로 못할 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올바른 행위를 함으로써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을 때 배우지는 못했어도 참된 생각을 마음속에 굳게 간직하고 그것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비지식인들은 이미 본인도 모르는 행운을 받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지식인들은 자신의 앞선 생각을 스스로 비판하며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야 하는 노고를 운명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 선생 : 대단하군. 계속해 보게, 아직 질문이 나오지 않은 것 같으니까.

이군 : 그러죠. 그렇다면 다음으로 지식인의 자기 비판적 사고의 기준이 금전적 이익이나 체면이나 명예와 같은 것들도 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저는 바로 그 점에 관하여 질문코자 합니다.
선생님께선 또한 올바름을 기준으로 자기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같은 두 경우에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선생 : 그야 사사로운 개인적 이익보다는 올바름 쪽이 훨씬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그에게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말이야.

이군 : 그러실 테지요. 그럼 이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2차적인 비판적 사고가 필요 없는 참된 생각을 이미 보유하고 그에 따라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비지식인들은 역시 그에 따라 그 자신의 구원을 약속받아 놓은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뭔가 스스로를 비판하며 바른 길을 찾아가야 하는 지식인에게 있어 올바름을 기준으로 한 비판과 그에 따른 행위는 또한 구원에 다가가는 방편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올바름과 충돌하는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그렇지 못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김 선생 : 그렇지 않고…….

이군 : 그럼 결국 질문의 의도는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간을 맞추겠는가' 하는 이야기와 같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저는 지난 선생님의 말씀을 지식인의 비판적 특질은 그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비할 수 없는 재산이나 도구로 생각했었는데, 그 비판에 금전적 이익이나 명예나 체면 등 올바름이 게재되지 않는다면 큰 가치도 없는 것들이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하시는 말씀을 되새겨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특질 외에 또 다른, 올바름에 근접하여 항상 그와 함께하는 특질을 생각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김 선생 : 자네의 말은 잘 알아들었네만…….
자네는 아무래도 그냥 지식인이 아닌 참된 지식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군 그래. 만약 지식인을 다시 그렇게 나눌 수 있다면 말이지.

이군 : 그렇다고 해 두죠.

김 선생 : 나도 자네의 이론 전개와 지적이 옳다고 생각하네.
단지 그 때는 그러한 결론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못했고 단정적으로 2차적인 비판적 사고는 오로지 올바름이나 정의와 같은 것을 기준으로 한다고 말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였지.
이제 그럼 자네 덕택에 그 결론을 보완하기로 하세.
지식인 중에도 그 혈통이 우수한 참된 지식인은 그의 사고체계에 있어, 1차적으로 총체적 이미지의 형태를 띠고 닥쳐와 자신의 행위를 요구하는 그러한 생각을 음미하고 비판하는 2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의 형태로 진행되네.
또한 이것은 새로운 것이지만 그는 아직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고 무지하므로 그 말은 대체로 의문문의 형태를 띤다고 생각되네.
그리고 말은 곧 로고스라는 얘기도 있고, 말이 이치에 닿지 않으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얘기도 있듯이 가장 내밀한 그의 말도 이치를 따라 발 빠른 그 자신을 제어하네.
물론 올바름을 기준으로 말일세.
어떤가, 우리가 지난번에 내린 결론을 이렇게 보완하면…….

이군 : 저로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 : 그럼 그렇다고 하고…….
난 자네의 정성어린 반박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참된 지식인의 특질로써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외부의 세계에 대해서 행하는 구체적인 작업 중 하나를 자네에게 들려줄까 하는데 어떤가?

이군 : 저야 물론 듣고 싶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뒤로 미루어야 하는 바쁜 일이 제게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김 선생 : 그럼 들어 보게.
그러나 기대만큼 가치 있는 이야긴지는 잘 모르겠네.
자넨 TV를 자주 보는가? 난 요즘에는 우연히 보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쳐다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군 : 저는 가끔 봅니다.
뉴스나 오락 프로그램, 그리고 사극 정도죠.

김 선생 : 그럼 개그나 코미디물도 더러 보겠군 그래.
요샌 누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 주는지 모르겠으나 전에는 구 아무개, 곽 아무개, 배 아무개 그리고 젊은 뚱뚱한 회장 김 아무개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이야.

이군 : 요즘은 그곳도 세대교체가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이름은 다 모르겠지만 꽤 웃기는 것 같더군요.

김 선생 : ……. 그럼 자네는 그런 웃기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모르겠네.
웃기는 프로그램은 매번 다르지만 그 프로그램 속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웃기는 이야기의 근본적인 속성은 무엇인지 말이네.
, 매번 틀려지는 프로그램이나 이야기의 외형은 고려하지 말고 그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코미디나 개그의 특성을 말하는 걸세.
무엇이 코미디나 개그를 그것답게 하는가?
그 안에 어떤 성질이 우리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가?

이군 : 글쎄요, 잘 모르겠군요.

김 선생 : 자넨 아마 그동안 그런 점에 유의하면서 그것들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일 걸세. 그럼 내 생각을 들어 보게.
그 화면들을 자세히 보면 코미디나 개그나 시청자를 웃게 하는 요소로써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은, 의도적으로 거꾸로 놓는 것, 잘 나가던 사람이 스스로 터무니없이 무지하게 구는 것,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섞어 혼란스럽게 해 놓는 것, 전체의 한 부분으로써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엉뚱한 것을 갖다 붙여 놓는 것 등이네. 자넨 이해가 가나? 아니면 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야 할까?

이군 : ……. 알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예는 드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김 선생 : , 그 속성들은 대체로 도치, 불균형, 무질서, 무지 등과 같은 것들이네. 그러한 것들을 보고 시청자들은 즐거워 한다는 거지.

이군 :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김 선생 : 그럼 그 코미디언들이나 개그맨들은 그러한 방법에 의해 노골적으로 대중을 즐겁게 해 주고 대가를 받지만 그보다 은밀하고 낭만적이거나 환상적인 즐거움 또는 위안을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네.

이군 : 그렇습니다.

김 선생 : 어떤 때는 그들이 진리와 관계되는 말을 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인생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아는 듯이 대중에게 얘기할 때도 있네만 내가 보기에는 대체로 그들은 진리를 엉뚱하게 모방하는 사람들이며 단지 특정한 즐거움이나 위안을 그와 관계되는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그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일 뿐이네.
지금까지 왜 이런 얘기를 앞세워 늘어놓는가 하면 그것이 참된 지식인이 행하는 작업과 관련되기 때문이네.
참된 지식인이란 위에서 말한 도치, 불균형, 무질서, 무지, 엉뚱한 모방으로 은밀하게 진리인 체 하는 것들을 이 세계에서 발견하고 그에 관하여 지식인의 작업 속성 중 분리, 분류, 정렬, 논박 등을 통하여 그것들을 올바로 놓는 일을 하는 걸세.

이군 : 엄청난 말씀을 하시는 군요.
그러나 그러한 작업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드러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대중에게로 향한다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그런 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만약 어떤 참된 지식인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그런 작업을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펼친다면 그는 그들로부터 분노와 그에 따르는 폭력을 되돌려 받게 될 뿐일 것입니다. 대중은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는 대신 자신들에게 남은 어떤 즐거움과 생의 의미에 관한 뿌리를 뽑아버리려 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증오할 것입니다.

김 선생 : 그건 자네 말 대로네.
그리하여 역사상 많은 참된 지식인과 그들 중 정상에 오른 자들이 소극적인 실천가, 또는 은자의 형태로 일생을 보냄으로써 스스로의 명을 보존하였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 그러한 작업을 행하다가 시대상황에 따라 대중의 분노를 입어 죽음을 당했던 게 아니겠나?

이군 :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어느 편으로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 걸까요?

김 선생 : 이 사람, 따라가긴 어딜 따라가나?
우리같이 뭘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이야 주변에서 여러 현명한 사람들의 언행을 자세히 보고 배우거나 정 모르면 그들에게 정중히 물어보면서 한 가지씩 진리를 향해 터득해 나가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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