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지식인을 그 자체로…….
때 : 2월 어느 날
곳 : 너른 터 한구석
등장인물 : 김 선생, 이군
김 선생 : 여보게, 지식인이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겠나?
이군 : 그렇죠. 그에 관해 또 다른 긴 정의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마는…….
김 선생 : 여러 가지 생경한 어휘를 사용하여 길게 내리는 정의는 다른 현명한 사람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우리는 한번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하세.
이 세상에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식인들이 있고 그 반면에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이 있지 않겠나?
이군 : 그렇습니다.
김 선생 : 그렇다면 대답해 보게.
누군가 의학을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고 그것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잘 치료한다면 그는 지식인인가 하는 것 말일세.
이군 : 그는 지식인입니다.
김 선생 :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이군 : 의술에 관한 지식입니다.
김 선생 : 즉, 그는 의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것이겠지?
아니면 그 외에 그가 지식인이라고 불릴만한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이군 :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김 선생 : 그럼 전산학을 공부하여 컴퓨터에 대해 보통사람보다 더욱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어떤가? 그도 지식인이겠지?
이군 : 당연합니다. 컴퓨터에 관한 지식이 그를 지식인이게끔 하는 거죠.
김 선생 : 법률을 공부하여 판검사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
이군 :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법률에 관하여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식인이며, 다른 어떤 이유로 그들이 지식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 선생 : 흠…….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떤가?
농사일에 관하여 고등학교나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오랜 경험에 의하여 자기가 짓고 있는 농사가 어떤 기후와 어떤 토양,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물과 비료가 공급되므로 해서 가장 많은 소출을 낼 수 있는지를 알고, 변화하는 기후나 기타 여러 자연 조건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 있는 다른 조건들을 적절히 공급하고 조정하므로 써 최대한의 수확을 올리는 농사꾼 말일세.
그는 자신이 짓는 농사에 관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또한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물고기를 기르는 어부도 물고기 양식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며, 목제품을 제작하는 목수도 역시 그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이군 : 글쎄요, 아니라고 하기는 곤란할 것 같군요.
김 선생 : 그럼 그들도 역시 지식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나?
이군 : 아마도 문자적인 해석만으로는 그렇게 말해야 하겠습니다마는 요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지식인이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 선생 : 단순한 농부나 어부나 목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단 말이지?
이군 : 그렇습니다.
김 선생 : 자네는 조금 전에 법률가가 지식인인 까닭은 단지 그가 법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의사가 지식인인 까닭도 역시 그가 의술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그 외 달리 그를 지식인으로 만드는 어떤 별도의 요소는 없는 것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이군 : 그렇게 말했죠.
김 선생 : 그럼 이어서 말해 보게.
자네는 농사를 짓는 지식과 물고기를 기르는 지식이 법률가나 의사의 지식과 비교하여 어떤 점에서 틀리기에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자는 지식인이 못 되는 반면, 후자에게는 지식인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인지 말일세.
이군 : 그건……. 굳이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경험에 의하여 그때그때 좋은 것이라고 알게 된 지식의 축적에 의거해서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을 역시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만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요.
김 선생 : 잘 말했네. 어쩌면 그렇게 의젓하게 말할 수 있나?
우리 둘은 마치 씨름판에서 샅바를 틀어쥐고 서로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는 선수들 같기도 하네.
그럼 자네의 말에 대해 자세히 살피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 보기로 하세.
이군 : 그러지요.
김 선생 :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 지식이라는 말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네.
현재 그러한 지식들이 인류문화의 유산으로 도서관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런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을 지식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어떤 범주에 있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군 : 무슨 말씀인지요……. 다시 한 번 들려주십시오.
김 선생 : 어려운 얘기는 아닐세.
자네가 말하는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는 말이지.
이군 : 글쎄요,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시니 답변하기가 곤란한 점이 있는 것 같군요.
그러나 그냥 논의를 위해서 단순하게 말한다면…….
우리시대를 기준으로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그런 학력이 없더라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어느 한 분야 이상의 전문지식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 선생 : 자네 말을 알아들었네.
그 점은 일단 그렇다 치고 다음과 같은 점을 함께 생각해 보세.
우리가 아까 얘기한 사람 중 농부는 지식인은 아니지만 그가 짓는 농사에 관한 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군 : 그렇습니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이나 서투르게 짓는 사람에 비하여 분명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김 선생 : 또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를 거쳐 의사가 된 사람은 지식인이며 의술에 관해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야겠지?
이군 : 그도 역시 그렇습니다.
김 선생 : 그럼 농부가 자기의 지식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이군 : 농산물이죠. 쌀이나 콩 같은 것 말입니다.
김 선생 : 의사가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것은…….?
이군 : 환자의 건강이지요.
김 선생 : 지식인인 법관이 만들어 내는 것은 송사의 판결이며 지식인이 아닌 어부가 만들어 내는 것은 수산물이 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해야 할 걸세.
그렇다면,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 인간들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같네. 그렇지 않은가?
이군 : 맞습니다.
김 선생 : 그럼, 잘 생각해 보게.
자넨 지식인이 만들어 낸 것들이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에 비하여 더 훌륭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 반대로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 더욱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인가?
이군 : 저로서는……. 그건 어느 쪽도 아니라고 해야 될 것으로 압니다.
쌀이나 콩과 같은 농산물이나 물고기 등의 수산물, 그리고 법관의 판결이나 의사의 진료 등등은 모두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생산자 스스로가 노력한 만큼 말입니다.
억지로 말하자면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이 오히려 우리 생활에 보다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까요?
김 선생 : 알겠네, 우리의 논의를 위하여 일단 위의 생산물들은 모두 같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해두세.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내가 자네를 안다리걸기로 공격할 테니 조심하게나.
즉, 지식인이나 지식인이 아닌 사람이나, 체계적인 지식이든 단순히 경험에 의한 지식이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 대중에게는 같은 가치를 가지는 생산물을 만들어 내어 공급하는 것이라면 대체 우리는 무엇으로 지식인과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을 의미 있게 구분하는가 하는 걸세.
단순히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또는 경험에 의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만이 그 구별의 척도가 된다는 것인가?
또한 그 생산물의 주관적인 효용가치는 같다고 할 때 그러한 지식인 여부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단지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지식인이 되기 위한 충분한 조건이 되는가, 아니면 반면에 만약 지식인을 지식인이게끔 하는 불변하는 자질이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자넨 지금 내가 말하는 뜻을 알고 있겠지?
이군 :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뭐라고 답변할 수가 없군요.
김 선생 : 이것 보게, 자네는 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갈림길에 와 있네. 그 갈림길의 분기점에 서있는 푯말은 '생산물의 가치에 관하여'라고 되어 있지. 거기서 우리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체계적인 지식이나 아이디어나 자본이나 토지 같은 것들이 노동과 함께 생산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맞물려 그에 어울리는 가치체계와 계층이 형성되네.
반대로 왼쪽 길로 들어서면 조금 전에 자네가 말한 대로 누구든지 노력을 투입하여 만들어 낸 생산물은 그 가치에 있어 투입된 노력만큼 동일하네.
그리하여 이후로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가치체계와 계층은 대체적으로 평탄하게 형성되는 것이지.
자넨 이미 왼쪽 길을 선택한 셈이지만 나도 역시 그래야 할까 보네.
왜냐하면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넓고 푸른 목초지와 풍요로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또한 어쩐지 우리의 논의에서 본의 아니게 지식인들을 진흙탕 속으로 밀어 넣게 되거나 아니면 우유부단한 기회주의자로 만들어 버리게 될 것 같아서이네.
우리는 어떠한 논의에서든 가능하면 희망적인 견해를 말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이군 : 그건 선생님 의도대로 하시죠.
다만, 그전에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 계열로 들어서고 있는 건가요?
김 선생 : 흠……. 자넨 생각이 빠르기도 하네.
방금 내가 사용한 용어로 보아 그렇지 않느냐는 거지?
그 점에 관하여는 이 논의가 끝날 때쯤이면 자네도 알게 되겠지만 기왕에 물어왔으니 대답하기로 하겠네.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개인에 있네.
그 개인이 설사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데올로기에 쉽게 끊어질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전적으로 지배당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를 구원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내려지는 행운이 아니라면 스스로의 자각 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네.
나는 제도의 개혁이나 대중적인 홍보를 통하여 현재의 인간 개개인이 궁극적으로 선량해진다고는 생각지 않네.
또한 현자가 말한 바와 같이 누구든 외부로 시선을 돌려 바깥 세계를 정복하거나 개혁하거나 하여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 스스로가 선량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편이 훨씬 용이하면서도(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훌륭한 일이라는 말이 옳다고 믿고 있네.
그러므로 나는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어떤 피상적이거나 거대한 전체에 대해 꼭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면 깊이 논의하고 싶지 않네.
사실은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말이 더 옳은 말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논하면서 정치, 사회, 경제적인 구조와 이데올로기를 함께 묶어 얘기하는 대로로 나가고 있지만 나로서는 그 큰길 옆에 난 한적한 오솔길로 자네와 같이 가보고자 하네.
따라서 우리가 아까 동의한 지식인의 생산물이나 지식인이 아닌 사람의 생산물이나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말은 우리의 논의가 앞으로 마르크스적인 사회 쪽으로 향한다는 말은 아니네.
단지, 재차 이야기하지만 체계적인 지식이든 경험에 의한 지식이든 지식을 가지고 있고 또한 그 지식으로 인하여 산출된 생산물이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가 특별히 지식인을 구별하여 말하려 하는 것은 어떠한 기준으로 인가 하는 말일세.
자넨 오로지 경험적인 지식과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의 소유라는 외형적인 종류의 차이만으로 지식인의 특질로 삼는 것에 만족하는가?
이군 : 저도 그런 분류 기준만으로는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덧붙여 특별히 말할 만한 점이 제겐 없군요.
김 선생 : 그렇다면 다시 물을 테니 대답해 주게.
지식인과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이 두 가지 종류로써 분명히 따로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둘이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건가를 자세히 살펴보세.
지식인은 비지식인에 비하여 육체적으로 어떤 다른 특징이 있는가?
이군 : 육체적인 면에서 지식인에 관하여 특별한 분포나 상관관계가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김 선생 : 지식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어떤 특별한 취미나 오락을 가지고 있는가?
이군 : 꼭 어떤 특별한 취미나 오락을 가진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김 선생 : 지식인은 돈이 상대적으로 많은가?
이군 : 그렇다고 말할 개연성도 있지요.
하지만 지식인을 분류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기에는 충분치 못한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지식인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김 선생 : 그럼, 지식인은 비지식인에 비해 뭔가 보다 많이 먹는 사람인가?
이군 : 원……. 별 말씀을, 그런 거야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김 선생 : 그럼 대체 어디서 본질적인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이군 : 그러고 보니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정신에서'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고체계라든가 사유의 능력 같은 부분이죠.
지식이라는 말 자체가 정신의 영역에서 쓰이는 어휘 아닙니까?
아! 지금 방금 제게 떠오른 생각이 있는데요.
김 선생 : 어서 얘기해 보게.
이군 : 조금 비약적인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지식인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그가 습득한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여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지식의 속성을 원용할 줄도 안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 : 무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게. 답답하네.
이군 : 이런 말이지요…….
의사는 그가 소유한 의학지식을 그대로 환자에게 적용하여 의술을 베풀고, 법률가는 역시 그의 법률지식을 판결이나 변호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렇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적인 지식 그 자체 외에 그러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얻어진 어떤 정신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일상적인 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나은 행동양식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선생 : 거 참……. 자네는 대단한 발견을 했네 그려.
또한 그것은 지식인에게 커다란 명예를 안겨주는 말이기도 하군.
이군 : 허튼 소리였다면 당장 취소하겠습니다.
김 선생 : 그럴 수야 있나, 어렵게 생각해낸 것을…….
그런데 그에 대해 한 가지만 물어 보세.
자네가 한 말 중에서 지식인이 아닌 사람들보다 더 나은 행동양식을 보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더 나은 행동양식'이라는 것 속에는 '보다 올바른 행동'이라는 개념도 포함되나?
다시 말하면 지식인이 일상적인 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비지식인보다 더 나은 행동양식을 보인다고 했을 때 그 더 나은 행동이라는 말이 보다 올바른 행동이란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 더 나은 행동이라는 말은 어디에 기준을 두고 더 낫다는 말인가 하는 얘기지.
이군 : 올바른 행동이란 개념을 포함한다고 보아야지요.
김 선생 : 그런가? 그럼, 예를 들어 누군가 불법적인 돈을 지식인인 의사나 법률가, 그리고 비지식인인 농부나 어부에게 가져다주며, 그냥 가지던가 아니면 그 대가로써 부당한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 자네 의견에 따르면 지식인인 의사나 법률가가 농부나 어부보다 그 유혹을 더 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학문적인 지식을 습득하며 덩달아 얻은 어떤 정신적인 특성을 활용해서 말이야…….
이군 : 음……. 이제 보니 그렇게 단정 지을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정직한 농부나 어부, 그리고 부도덕한 지식인은 찾으려 들면 여기저기 많이 있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제가 의미 없는 말을 한 것 같군요.
제 말을 취소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지식인의 정신적 특성에 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에 관해 선생님이 한마디 해주시죠.
지금까지 제게 묻기만 하지 않으셨습니까?
김 선생 : 여보게, 묻는 게 내 특성일세. 나는 사실 아는 게 없거든.
무지한 자의 특성이란 묻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겠는가?
어쩌다 간혹 내 의견인 것처럼 자네에게 얘기하는 것도 실제로는 어느 책에서 본 것이던가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얘기라네.
이군 : 좋습니다. 그런 얘기라도 한마디 해주십시오.
사고체계에 있어 지식인의 특질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선생 : 자네가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예전에 누구에게서 들었던 얘긴지, 어느 책에서 보았던 얘긴지, 아니면 꿈결에 어렴풋이 떠오른 것인지 오래되어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를 핵심만 들려줄 테니 잘 들어 보게.
참, 그전에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네.
자네가 만약 푸른색의 속성에 대해 연구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연구결과를 얻으려고 하면 그 연구 대상을 어떻게 선정해야 하겠는가?
무슨 말인가 하면, 푸른색에도 여러 종류이며 가장 짙은 푸른색다운 푸른색이 있는가 하면 아주 엷은 푸른색도 있고 그 중간에도 단계별로 여러 가지 농도가 있단 말이지.
내가 생각하기에는 푸른색의 속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가장 짙은 푸른색다운 푸른색이 아닐까 하네.
또한 그것을 관찰할 때가 다른 희미한 푸른색을 관찰할 때보다 더 그것의 속성을 쉽고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생각되네.
따라서 지식인의 특질을 관찰할 때도 그 특질을 최대한 보유하고 있어 쉽게 관찰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네.
그러한 사람들의 수는 내가 보기엔 많지 않네.
그러나 진리가 숫자나 커다란 함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도 그런 점엔 개의치 말기로 하세.
또한 보다 많은 지식인들은 우리가 지금 관찰하려고 하는 그런 지식인보다 종류는 같되 보다 희미한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기로 하세.
그럼 소박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지식인의 사고에 있어 내가 생각하는 특성은 첫째 무엇에 관하여건 어떤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고 나서 그 생각이 무의식적이거나 그저 잠깐 스쳐가는 헛된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그 생각의 뒤를 이어 그 생각을 검토하고 음미하는 2차적인 비판의식이 그의 사고 과정 속에 생겨난다는 것일세.
그 2차적인 사고가 생겨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 같네.
즉, 첫 번째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그를 음미하는 비판의식이 뒤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참 후에 가서야 자기의 처음 생각에 대한 검토와 음미가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이지.
이군 : 별로 듣지 못했던 얘기지만 흥미 있는 구석이 있군요.
그렇다면 동일한 사람에게 있어서 두 가지 생각이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데, 그 나타나는 형태는 어떻습니까?
김 선생 : 내가 생각하기에, 첫 번째로 찾아오는 생각은 총체적 이미지의 형태로 한꺼번에 닥쳐와 그 사람의 행동을 재촉하지만 두 번째로 찾아와 그 첫 번째 생각을 음미하고 검토하는 생각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일세.
즉, 내가 지금 자네에게 하는 말을 그대로, 필요하다면 나 자신에게 하는 형태라는 것이지.
따라서 두 번째 생각은 첫 번째에 비해 그 자체의 진행 속도가 늦네.
실제로 말하는 것과 꼭 같은 속도이니까. 내 말을 이해하겠나?
이군 :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만 혼란스럽기도 하군요.
어쨌든 저도 다시 선생님께 질문을 드려야겠습니다.
아까 제가 받았던 질문을 그대로요…….
즉, 두 번째 생각이 찾아와 첫 번째 생각을 음미 검토할 때 그 검토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 기준 속에 올바름도 포함되나요?
김 선생 : 기준은 다양한 것 같네.
자신의 금전적 이익이나 신체의 안위, 또는 체면이나 명예 등이 기준이 되며, 물론 올바름이나 정의가 기준이 될 수도 있네.
또한 덧붙여 말하면 자신의 첫 번째 생각에 대한 검토와 음미뿐 아니라 타인의 생각이나 행위, 또는 주변에서 보이는 것들 모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음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네.
그 경우에도 비판적 사고의 형태는 총체적 이미지의 형태로 단번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의 형태를 띤다는 것일세.
자네가 올바름을 이야기했지만 지식인의 특성으로써 2차적인 자기 비판적 사고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면 그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닌 사람 중 이기적인 사람과 별로 다를 게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교활함으로 인해 경우에 따라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더욱 못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네.
반면에,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익, 사회적 정의와 원만한 방법론을 생각하며 조화를 맞출 줄 안다면 그는 보다 건전한 지성을 가진 셈이며 조금 전의 유형보다는 사회적 책무를 다한다고 볼 수 있겠지.
어떤가? 이제 자네의 올바름에 관하여는 답변한 셈이 되겠지?
이군 : 잘 들었습니다.
그럼 지식인의 사고에 있어 두 번째 특성은 무엇인지요?
김 선생 : 두 번째 특성은 바로 첫 번째 것과 관련되네.
즉, 그는 그가 음미한 것을 말이나 글로, 지식인이 아닌 사람보다는 훨씬 쉽게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지.
단, 그가 말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말일세.
그의 2차적인 비판적 사고가 자신에게 하는 말의 형태로 진행된다고 했으니 그것은 아마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군 : 알겠습니다.
세 번째 특성도 있나요?
김 선생 :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네.
현실적으로 그러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즉, 위에서 말한 지식인에게 만약 큰 행운이 다시 뒤따른다면 그는 주위에서 보고 듣는 일상적인 여러 가지, 말하자면 정치, 사회, 문화의 말단과 먹고 살아가기 위해 부딪히는 여러 가지 문제, 거기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사회적 정의의 문제,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자기 자신을 음미하는 대신 본능적으로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어떤 종류의 물고기처럼 항상 눈앞에 보이는 현상의 본질과 근원을 찾아 올라가 불변하는 존재들을 음미하면서 단순하게 즐기며 살아갈 걸세.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한도이네.
이군 : 선생님의 말씀이 아름답게 들리기도 하지만 저로서는 이제 따라가기가 힘드는군요.. 조금 피곤하기도 하고요..
말씀은 잘 들었지만 저로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오늘의 대화는 즐거웠습니다.
김 선생 : 자네가 즐거웠다니 나 역시 기분이 좋네.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를 돌아가서 다시 음미해 보게.
그리고 다음번에 오늘 내가 한 말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모조리 반박해 주게.
내가 오늘의 대화 중에 혹시 무의식적으로라도 자네를 속였을지도 모르니까 말일세.
그렇게 성심껏 반박해 준다면 그것이 지식인 사이의 우정이며, 또한 서로 간의 사례가 아니겠는가?
이군 : 잘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김 선생 : 잘 가게. 다음에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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