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acaphilo.or.kr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던 질문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최**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고 머릿속에서 언어를 뱅뱅 돌려가며 사고하는 개념적 사고의 훌륭한 점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개념적 사고는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나요?
공허한 사변이나 지적인 만족 말고, 현실적으로 말이지요.
philebus 답변1
님이 지적인 만족을 얻는다고 했을 때,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경험해 보셨나요? 만족이나 즐거움이라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충분히 알 수 없죠. 그리고 말씀하시는 현실적인 이득이 무언지 구체적으로 모르겠는데, 이른바 지적인 만족이 현실적인 이익보다 본인에게 크게 느껴질 경우에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을 현실적인 다른 즐거움을 얻는 일보다 더 선호하게 되겠죠. 그렇게 되면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 때로는 저지르게 되는 과오나 불법이나 비굴함도 그 사람은 되도록 저지르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좀 더 재수가 좋으면 흔히 얘기하는 진리라든가, 해탈이라든가 하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도 더 어리석고 현실적응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성격이 더 우유부단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지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책을 많이 읽으면 바보가 된다는 제 명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hilebus 답변2
어떤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걸 살펴봐야 되겠죠. 책이라고 포장해 놓았다고 해서 어떤 책이든 누구에게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많이 읽는다고 해서 꼭 좋은 것도 아닙니다. 많이 읽은 사람이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자신이 별로 뚜렷하게 아는 것이 없는데도 뭘 잘 알고 있는 듯이 착각한다는 거죠. 또 비판력이 부족한 사람이 특정한 책을 읽었을 때, 엉뚱한 선입견을 가지기도 쉽죠. 말하자면 책을 많이 읽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에게 해로울 수도 있다는 얘기죠. 그리고 최**님이 말씀한 현실적응력이란 것도 좀 애매하게 들리는데요, 책을 많이 읽어서 실제로 최**님이 말하는 그런 바보가 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최**님에게는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그가 아주 똑똑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어떤 현실 속에서 그 어떤 쪽을 택하더라도 그 결과 자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지, 신통치 않은 결과가 올지, 잘 알 수 없어 당황하는 사람이 님에게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그도 꽤 사려 깊은 사람인데도 말이죠. 그리고 한 치 앞만을 내다보았을 때는 그에게 분명히 좋으리라고 생각되던 결정이 두 치 앞을 내다보았을 때, 나쁜 결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망설이고 있을 때 님은 그를 판단력이 흐린 사람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두 치 앞을 잘 내다보고 결정을 내렸을 때, 만약 님이 한치 앞만을 보고 있었다면 그가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한치 앞을 정확히 내다보고 즉각 결정을 내린 다른 사람을 님은 화끈하고 머리 좋고 박력 있는 사람으로 칭찬할 수도 있겠죠.
최**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 눈을 돌리라는 위정자들의 계략이 숨어있는 것이 아닐까요?
philebus 답변3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개의할 것이 무어 있겠습니까? 현실에 눈을 돌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을 하든 사전지식이라는 것은 필요할 것이고 그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이 좋겠죠. 덧붙인다면 그냥 책을 많이 읽는다는 말은 허무맹랑하리만큼 피상적인 얘기입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책을, 어떤 방법으로 읽고,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을 잘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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