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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돼지저금통

 

 몇 년 전부터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시작한 까닭은 이렇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혼자 지내기 좋아하고, 세속의 가치에 비교적 무심하고, 감정보다는 理性의 역할에 주목한다고 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애정이 내게서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일종의 두려움이 생겼다.

본능적 욕구는 남아있는데 사람에 대한 호의나 기본적인 애정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그건 재앙일 것이다.

본능적 욕구가 남아있는 한, 동물과 다른 점으로써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호의, 온화함, 염치, 아량 등은 잃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내 나름대로 하나의 儀式과 같은 것으로써 동전 저축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런 美質을 소지하는 것과 동전을 모으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

전에 프로이트를 읽으면서 이해하기로 돈은 애정을 의미한다.

보이지 않는 애정에서 흘러나온 것이며, 보이는 것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아름다운 애정을 돈으로 표시할 수는 있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애정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정신적 자산이 감각적 물질로 치환되는 것은 가능하고 이치에 맞지만, 그 역은 대체로 불가하고 가능하더라도 順理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저금통에 동전을 모은다고 내게 애정이 저수지의 물처럼 고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난 그것을 애정이나 또는 흔히 말하는 人間性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작은 儀式처럼 생각했고 동전을 넣을 때마다 지금과 같은 생각을 언뜻 상기하곤 하였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모은 동전을 얼마 전 C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에게 건넸다.

그가 내게 돈이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보다 작은 저금통을 구입하여 다시 동전을 집어넣고 있다.

내가 동전을 저금통에 넣으며 내게서 사람에 대한 호의와 애정이 떠나지 않기를 기원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기원으로만 끝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 물질과 형식을 통한 기원에 그치는 것보다는 경전의 말씀에 따른 실제 수행이 더 본질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 된다.

佛家 수행에서라면 네 가지 無量心을 닦는 것이 근접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네 가지 무량심이란 자비,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의 네 가지를 말한다.

애정이나 호의라고해서 요즘 TV나 동영상에서 흔하디흔하게 연출되는 장면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호들갑스러울 것도 없고, 즐거움과 고통이나 행복감과 권태가 비교적 빠른 주기로 교체되는 상황을 유발하는 그런 감정일 필요도 없다.

예를 든다면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요구할 때, 여력이 있다면 그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질문을 해올 때, 알고 있다면 답변을 해주는 정도면 기본적으로는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자비심의 이면에 있는 중요한 덕은 악의 없음이다.

미친 사람이 뭔가를 애타고 간절하게 요구할 때 그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대체로 그의 병이 낫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정과 호의를 간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을 행사하는 것은 분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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