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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복권과 도박

 

심심풀이로 복권을 사는 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행위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 가를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복권은 전적으로 요행, 행운, 운수에 의지하여 이득을 기대하는 행위인데, 대개 복권을 사고 며칠 뒤 즉석복권일 경우는 바로 - 당첨이 되지 않아 휴지통에 버리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런 간단한 행위가 심적으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장애를 형성할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은 무엇을 구하든 그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데, 구하는 바에 따라 많은 노력, 긴 시간의 노력, 치밀하고 계획적인 노력, 집중적인 노력, 끊이지 않는 노력 등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노력 끝에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노력이 없이, 저절로, 뜻하지 않게, 단지 하늘의 도움으로 얻게 되는 것과 대비되는데 이는 플라톤이 말하는 차선의 항해, 그리고 순풍에 돛단배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고대에 항해를 함에 있어 만약 처음부터 끝까지 순풍이 불어준다면 힘들이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차선책으로 사람이 힘을 들여 노를 저음으로써 항해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복권을 사서 고액에 당첨된다는 것은 마치 순풍에 돛단배가 저절로 목적지에 이르는 것과도 같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우연적이고 재수가 좋은 것이다 - 세상사가 그처럼 순조로울 경우는 매우 적고 대개의 경우는 힘든 노력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런데 노력하는 마음은 넓게 보아 인간 理性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운수와 행운을 바라는 마음은 그 반대쪽을 향한 상태로써 그것이 작동할 경우 사람의 이성적 활동과 그 결과로 쌓인 것을 無化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뭔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사람을 반대쪽으로 당기고, 위로 오르려는 사람을 밑으로 당겨 선, 악의 구별이 어려운 영역으로 빠뜨리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며, 노력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복권을 사는 본인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이 습관적이라면, 최소한 나아가려는 사람을 제자리에서 맴돌게 하고, 현재 진행 중의 노력에 대해 패배감과 염증을 느끼게 하는 몇 가지 요인 가운데 하나로써 조그만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카지노와 같은 도박은 미약하나마 확률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복권보다는 운수 의존이 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프로급 도박사가 아닌 많은 사람들은 오직 본인의 직감과 같은 근거 없는 능력을 이용하여 선택을 해 나가게 마련이니 요행이나 운수를 바란다는 면에서는 복권과 크게 다르지 않고, 나아가 그 중독성과 폐해는 복권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욕망은 큰데 그 욕망을 이루려는 방법에 있어 오로지 운에 맡긴다는 것은 흘러가는 구름의 변화보다도 훨씬 허망한 짓이며, 理性과 법도, 계획과 실행, 대상의 관찰과 검토, 분류와 수정 등 인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합리적 능력의 사용을 배제하고 無化시키는 어리석음이며, 습관적인 복권과 도박은 승인된 중독성 마약처럼 합리적 선택이라는 방법적 가치를 멀리 하게 하면서 그 어리석음의 밑바닥으로 들어가게 하는 작지 않은 통로로 기능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에 따르면 플라톤은 어떤 사람이 주사위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나무랐다.

그러자 상대가 매우 사소한 것을 내기로 걸었을 뿐이라고 받아치자, “아니, 그 습관은 사소한 것이 아닐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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