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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뇌와 정신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뇌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져 정신 활동의 거의 전부를 뇌 안의 생화학적 변화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공부를 할 때는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된다든가,, 조용한 음악을 들을 때는 뇌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되어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든가, 정신병이나 신경증 환자는 뇌 안의 어떤 부위가 비정상인데 어떤 특정 물질을 넣어주면 증상이 완화된다든가, 사랑을 할 때는 뇌의 어떤 부위에서 어떤 물질이 분비되어 황홀함을 느낀다든가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인간 정신은 뇌 활동의 산물이지 뇌(육신)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점차 힘을 더해가고 있는 것 같다.

난 과학이나 의학에는 상식에도 미달하는 지식밖에 없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특정 정신 활동은 특정한 뇌의 상태변화와 대응관계에 있다고는 믿고 싶다. 이 말은 사람의 정신 활동은 곧 뇌의 활동에 의존한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 말은 뇌의 활동이 정지하면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모든 게 끝이며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말과는 다르다.

그리고 특정한 행복감이나 안락함을 느낄 경우, 뇌가 없으면 그런 느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뇌가 행복감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청명한 가을 아침에 창가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고 하자. 그는 잠시 안락함과 행복감에 젖는다.

그가 행복감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 그의 뇌에서 일정량의 세로토닌이 분비되었기 때문이라고 해보자. 세로토닌이 분비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분위기를 만든 한 셋트의 조건, 즉 맑은 가을 아침, 에스프레소 커피, 클래식 음악 등의 조합이 이유라고 해야겠지만, 최초에 그런 분위기를 원하고, 그 조건을 만든 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정신(욕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한 최초에 그가 그런 분위기를 원할 때 그의 뇌에서 뭔가 그에 걸맞은 활동이 있었다고 해도 좋다. 예컨대 그의 뇌 전두엽 x 지점에서 a라는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가 그런 분위기를 원하게 되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무슨 이유와 원인으로 그때 그의 전두엽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났단 말인가? 무슨 이유로 그 시각에 뇌에서 특정 변화가 일어나 그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를 원하게 한단 말인가?

결국, 원인은 정신적인 것, 즉 그의 욕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가 원하였기 때문에 그 소원에 걸맞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 것이며 세로토닌은 그 목적에 부응하기 위하여 생성, 이동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그의 욕망이 특히 육체(뇌 포함)와 함께하는 결과(만족)를 원하였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뇌의 활동은 일반적으로 그 정신(욕망)에 부응하는 결과를 산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알기 쉽지 않을까?

이 점을 비약적으로 확대하면 물질은 정신에 비하여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게 된다. , 조금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가정을 해보면, 사람의 머리 위에 감각을 넘어서는 정신의 덩어리가 있는데, 그 정신의 정밀하고도 강력한 흡인력에 의해 그가 살아있는 동안 그에게 속한 물질(뇌를 포함한 육체의 구성 원소)이 계속 끌려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러 정신에 의한 그런 물질 견인 작업은 끝나고 정신만이 자유를 얻어 육신을 떠나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그때 그 사람 자신은 그 강력한 정신의 일원으로 함께 어딘가로 따라갈 수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 생명이 끊어져 따로 남겨진 물질 주위를 배회하다 다른 정신에 참여하여 새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과학은 아직 이런 상상을 거짓이라고 단정할만한 증거를 제시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직 이렇다 할 단서도 잡지 못한 것 같으니까)

어째서 이런 상상이 필요한가?

그 한 가지 이유는 정신을 원인이라고 하는 것이 각 개인의 인격을 인정하고, 나아가 여러 가지 고상한 인격을 향한 인간의 의도적 노력이나 기타 정신 활동을 정당화하는데 무리가 없지만, 단순히 육체 내 물질의 생성과 이동이나 생화학적 반응을 <원인>이라고 하면 그런 목표제시나 목표를 향한 의도적 노력이나 기타 가치 있다고 믿어지는 정신 활동의 근거가 미약해지고 정신의 고귀함과 가치를 옹호하는 주장도 결국은 농담으로나 여겨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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