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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복서伏鼠와 복서卜筮

2, 3개월쯤 전 저녁 무렵의 일이다.

가까운 마트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앞 동을 막 돌아서는데 땅바닥에 쥐가 한 마리 엎드려 죽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쉽게 보기 어려운 자세였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붙어 네 다리를 한껏 뻗고 있는 모양이 마치 발을 펴고 엎드린 쥐를 로울러로 살짝 밀어 놓은 것 같기도 하고 가죽을 벗겨 바닥에 좍 펴놓은 것 같기도 하였다. 비록 쥐라는 작은 짐승이었지만 그 죽은 모습이 가엾다기보다 약간 우스꽝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복서伏鼠.....

그리고 바로 이 장면이 일종의 계시啓示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서伏鼠는 복서卜筮와 통한다. 그리고 福徐와도 통한다.

이내 오늘이 연금복권 추첨일이라는 것과 지난주 산 복권 2장 중 당첨된 것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반신반의하다 9시 지나 번호를 맞춰보니 한 장의 숫자 5개가 나란히, 보기 좋게 맞아 있는 것이다.

41,000,000원 당첨.

복권 당첨 사실보다는 느닷없는 계시에 놀라 한참 그 의미를 되새기느라 시간을 보냈다. 요즘 주역에 신경을 쓰고 있었더니 잠시 그쪽 이 통했던 모양이다.

 

이 계시의 장면은 꿈과 아주 유사하다. 추상적인 사고를 감각적 실물의 그림과 어휘의 유사성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꿈의 특징인데 이번 계시가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또 꿈의 한 장면은 한 가지 의미가 아니라 몇 가지 다른 의미가 중첩되어 있게 마련인데 이번 경우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로 놓았으니 이 엎드린 쥐는 나 자신의 어떤 면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을 20년이 훨씬 넘게 이어져 온 자신의 철학적 사유와 실제적인 생활 태도, 그것을 간간이 기록했던 블로그의 글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네 다리를 사방으로 한껏 벌리고 있다는 것은 사유의 방향이 넷으로 갈라져 있다는 뜻인데 플라톤 철학, 儒家, 佛家, 실생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바로 그런 이유로 총체적으로는 어딘가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發展)이 아니라 복지부동의 자세로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꿈이 그 작업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와 정반대 되는 사물을 배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로울러에 밀린 듯이 납작한 쥐가 사실은 지상에서 위로 올라 공중부양의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어서 에는 굴복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면에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결의와 같은 것이 숨어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몇 년 전, 외삼촌의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는데, 폐질환으로 코에 호스를 낀 그 분은 40kg이 안 되는 깡마른 몸으로 반갑게 나를 맞아주며, 보자마자 마치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아주 우스운 농담을 들었을 때처럼 웃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웃음이었지만 상당히 유쾌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자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지만, 몇 마디만 하면 금새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 숨이 차고, 옆 간호사가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바람에 결국 간단한 안부 외 별다른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그 분은 어째서 나를 보고 그렇게 특별하게 웃으셨을까? 그 뒤 얼마 안 되어 돌아가셨으니 당시 저 세상에 가까이 있는 분의 지혜로 나를 들여다보고 내 꼴이 매우 우스웠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두려운 적보다는 우스운 아군이 낫지 않겠는가?’라고 플라톤이 농담조로 말했듯이 마지막 뵌 순간에 그렇게 유쾌하게 웃어주신 그분께 감사드린다.

 

당첨금은 세금을 제하고 780,220원을 받았다. 그것으로 PC 스피커를 바꾸고 주방용 팬을 몇 개 사고, 5종류의 생두(브라질 산토스, 에티오피아 시다모, 케냐AA, 인니 수마트라 만델링, 콜롬비아 메델린 수프리모)와 모친의 눈 영양제 몇 달치를 구입하는데 절반을 쓰고 반은 남았다.

그러고 보니 41,000,000원에 당첨되었다는 것도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당첨금 체계로 볼 때 복권을 구입할 당시 사람들이 품는 희망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적다고 무시해 버릴 수만은 없는 액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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