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그는 최선의 교육을 받고 있다고 믿고, 크게 자신의 지혜를 자부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이야기해 보겠다.
수재(秀才)2) 에우튀데모스3)는 유명한 시인이나 학자의 책을 많이 수집하였는데, 그 때문에 벌써 자기가 동년배 중에서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연설 및 실행의 기능에 있어서도 모든 인간보다 우수하다는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알았다. 그런데 그는 소년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광장(廣場)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 해보려고 할 때에는 광장 가까이의 한 가게에 들어앉아 있다는 것을 우선 알고는 두세 명의 제자를 데리고 몸소 그 가게가 있는 곳으로 나가 보았다.
처음 갔을 때, 함께 간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에게 질문했다.
“데미스토클레스가 그만큼 모든 시민보다 뛰어나고 위대했던 것은 어떤 학자의 가르침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날 때부터 그러했습니까? 국가에 큰일이 있어 대인물의 필요성이 있을 때, 모든 사람의 기대는 저절로 데미스토클레스에게 집중되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다.
“하찮은 기술이라도 뛰어난 솜씨를 지니려면 훌륭한 스승에게 사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국가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일은 모든 일 중의 최대의 것으로 혼자의 힘만으로 그러한 능력을 갖출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네.”
그 후에 에우튀데모스가 소크라테스의 옆에 있을 때였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지혜에 감탄하여 좌담에 끼이기를 피하고 크게 조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이 말하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여보게, 우리 에우튀데모스가 성년(成年)4)이 되어 국가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토의를 할 때에는, 에우튀데모스의 평소의 언행으로 봐서 반드시 조언을 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네. 그리고 그때 그는 국민 연설을 위해 반드시 훌륭한 서언을 준비하여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조심을 할 것으로 나는 생각하네. 그는 이렇게 서언을 하고 나서 연설을 시작할 것이 명백하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는 누구에게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또 언변(言辯) 및 실행에 뛰어난 사람의 말을 듣고 그를 만나보려고 한 일도 없습니다. 또한 지식이 있는 어떤 사람도 나의 선생으로 삼으려고 한 일도 없습니다. 아니 모두 그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남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을 피해 왔을 뿐만 아니라, 배웠다고 생각되는 것마저 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뇌리에 저절로 떠오르는 것만을 여러분에게 권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서언은 의관(醫官)의 관직을 국가로부터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네. 그 사람들은 그들의 연설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대단히 적절할 것이네.
‘아네네 시민 여러분! 저는 아무에게서도 의술을 배우지 않았고, 어떠한 의사도 저의 선생으로 삼으려고 시도한 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의사로부터 무엇 하나 배울 것을 피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 기술을 배웠다고 생각되는 것조차 피해 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에게 의관의 관직을 수여해 주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여러분을 실험대(實驗臺)로 해서 이것을 배우려고 시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일동이 이 서언에 왁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에 에우튀데모스가 소크라테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보였지만, 그러나 자기가 먼저 입을 여는 것을 조심하고 침묵을 지키며 심려(深慮)의 태도를 보이자,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의 이러한 행동을 그만두게 하려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파를 타든가 피리를 불든가, 혹은 말을 타려든가, 또는 그밖에 이러한 종류의 일에 숙달하려고 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숙달하려고 원하는 길에 끊임없이 정진하는 법일세. 더구나 혼자 행하지 않고 그 분야에 가장 명수(名手)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사사하여 배우면서 온갖 일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일편단심으로 스승의 판단을 떠나서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려고 결심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는 명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당(政黨)에서 언변(言辯)의 명수가 되려고 원하는 자 중에는 준비도 없이 공부도 하지 않고, 갑자기 저절로 이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실로 이상한 일일세. 더구나 이 일은 실로 다른 일에 비해서 훨씬 습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이것에 열중하는 사람의 수효는 훨씬 많은 데에도 성공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이 길을 지향하는 사람들은 다른 기예(技藝)에 정진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이 훨씬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일일세.”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에우튀데모스가 듣고 있는 곳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러는 동안에 에우튀데모스가 즐거이 대화의 광장에 끼이게끔 되고 이전보다도 열심히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혼자 가게로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에우튀데모스가 곁으로 와 앉으면서 이렇게 말을 걸었다.
“나에게 얘기해 보렴, 에우튀데모스. 정말 자네는 옛 현자(賢者)라고 알려져 있는 사람들의 책을 많이 수집하였는가? 나는 자네가 많이 수집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네.”
그러자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현재도 모으고 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으려고 수집을 계속할 심산입니다.”
“그것은 참 기특한 일이네. 지혜의 보화보다는 금은(金銀)의 재보를 쌓기를 택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일세. 왜냐하면 자네는 금은은 인간을 우수하게 만들지 않고, 현자들의 사상은 이것을 소유하는 자에게 미덕의 재보를 증대시킨다고 생각하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네.”
에우튀데모스는 이 말을 듣고 매우 득의양양해졌다. 자신이 올바르게 미덕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고 소크라테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 찬사에 즐거워하고 있는 것을 보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런데 에우튀데모스, 자네는 어떤 분야에 명수가 되려고 마음먹고 책을 모으고 있는 것인가?”
에우튀데모스가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또 말했다.
“혹시 의사가 되려는 것이 아닌가? 의학서라는 것은 꽤 많이 있는 법이니까.”
그러자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다.
“아니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건축가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것도 박학(博學)한 사람을 필요로 하니까.”
“아니요.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테오도로스5)와 같은 대수학자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수학자도 아닙니다.”
“그러면 천문학자이겠지?”
그것도 아니라고 부정하자, 그는 말했다
“그러면 시인인가? 자네는 호메로스의 시집을 전부 수집했다고 다들 말을 하던데.”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시인이란 자들은 시는 훌륭히 쓸 줄 알지만 인간 자체는 마치 바보인 걸요.”6)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하지만, 에우튀데모스. 자네는 정치가라든가 경제학자라든가 훌륭한 지배인이 되어서 다른 사람 또는 자신의 생활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미덕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자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다.
“바로 그것입니다, 소크라테스. 그 미덕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최고이며 최대의 기술을 구하려고 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이 기술은 실로 군주의 길이고 제왕(帝王)의 길이라고 불리고 있기 때문이네. 하지만 우선 올바른 인간이 되지 못하고 이러한 일을 행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네는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정의가 없어서는 좋은 시민도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떤가. 자네는 그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네, 소크라테스. 저는 자신이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올바른 인간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면 물어보겠는데,, 목수에게 일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인간에게도 일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가?”
“물론 있습니다.”
“그러면 목수가 그들의 일을 일일이 들어서 얘기할 수 있듯이 올바른 인간도 그들의 일을 설명해서 들려줄 수가 있는 것일까?”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정의로운 일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뿐만 아니라 저는 부정한 일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까닭은 저는 매일 마다 이러한 것을 굉장히 많이 보거나 듣거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쪽에 ‘정(正)’이라고 쓰고 이쪽 편에 ‘부(否)’라고 써보세. 이렇게 해두고, 우리들에게 정의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정’란에 표시하고 부정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부’란에 표시하도록 해볼까?”
“그러한 일이 어떤 필요가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가 말한 것처럼 쓴 다음 그에게 말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는 일이 있는가, 없는가?”
“그야 있지요.”
“그렇다면 이것을 어느 쪽에 표시할까?”
“그야 물론 부정 쪽입니다.”
“그리고 또 기만하는 일은 없는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느 쪽에다 표시할까?”
“이것도 물론 부정 쪽입니다.”
“나쁜 일을 행하는 것은?”
“이것도 역시 부정 쪽입니다.”
“인신매매는?”
“이것도 그렇습니다.”
“정의 쪽에 표시하는 것은 이 중에 하나도 없군, 에우튀데모스.”
“있으면 큰일 나겠지요.”
“그러면 어떤가, 누군가가 장군으로 뽑혀서 우리들이 부정하는 적의 도시를 노예에게 팔아넘겼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부정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는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쟁에서 적을 기만했다고 한다면”
“이것도 올바른 일입니다.”
“적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거나 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처음에는 당신이 친구의 일에 대해서만 물어보시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부정의 난에 표시한 것은 모두 정의의 난에도 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되는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시 이렇게 분류를 해볼까? 적에 대하여는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올바른 행위이지만 친구에 대해서는 올바른 일이 못 된다. 친구에 대해서는 철두철미하게 정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과연 그것이 좋겠습니다.”하고 에우튀데모스가 말했다.
“그러면 어떤가? 장군이 군대의 사기가 저상(沮喪)하고 있는 것을 보고 원군(援軍)이 조금 있으면 온다고 거짓말을 하여 이 거짓말 때문에 전군(全軍)의 사기가 저상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이 기만은 어느 쪽에 표시해야 하겠는가?”
“정의의 난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누군가가 아들이 약을 먹을 필요가 있는데 약 먹기를 싫어할 때, 맛있는 음식물이라고 속여서 약을 먹게 하여 이러한 기만으로 인해서 건강을 회복하게 됐다면, 이 기만은 또 어느 쪽에 표시해야 하겠는가?”
“이것도 같은 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친구가 우울증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살할까 봐 겁이 나서 칼이라든가 그 밖의 어떤 것을 훔치거나 빼앗았다면 이것은 또 어느 쪽에 표시해야 하겠는가?”
“그것도 물론 정의 쪽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친구에 대해서도 하나에서 열까지 정직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군.”
“그렇게 되는군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저는 제가 얘기한 것을 취소하겠습니다, 다 취소해도 괜찮다면.”
“물론 괜찮지. 틀린 표를 만들기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낫지. 그런데 친구를 기만해서 이것이 해가 될 경우도 생각해 볼 것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기만하는 것과 고의가 아닌 기만과는 어느 쪽이 더 부정한 것일까?”
“그러나, 소크라테스. 저는 이제 대답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이야기한 일 하나하나가 이번에는 그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말해 본다면 고의적인 사람이 고의가 아닌 사람보다 부정합니다.”
“읽고 쓰는 공부나 학문이 있듯이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공부와 학문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의로 잘못 쓰거나 잘못 읽거나 하는 자와, 실제로 틀리는 자와 어느 쪽이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고의적으로 틀리는 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하려고만 생각하면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고의적으로 올바르게 쓰지 않는 사람은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고, 고의가 아닌 사람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군.”
“그렇게 되겠군요.”
“그리고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기만하거나 하는 자와, 고의가 아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자는 어느 쪽이 사물의 올바름을 알고 있는 것일까?”
“물론 고의적으로 속이는 인간입니다.”
“자네는 읽고 쓸 줄 아는 자는 읽고 쓸 줄 모르는 자보다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군.”
“네.”
“그런데 사물의 이치를 올바르게 알고 있는 자는 모르는 자보다 올바른 사람인가?”
“그렇게 되는군요. 그러나 이것도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어떤가, 사실을 말하려고 생각하면서도 한 가지 일에 관해서 하는 말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인간은? 같은 길을 가리키면서 어느 때는 동이라고 하고 어느 때는 서라고 하며, 같은 계산을 하는 데도 어느 때는 답이 크고 어느 때는 답이 작은 이런 경우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은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네는 어떤 부류의 인간이 노예라고 불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가, 그렇지 않으면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는가?”
“물론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대장간 일에 관하여 무지하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는가?”
“아닙니다.”
“그러면 목수 일을 모르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가죽 가게 일을 모르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거꾸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왜냐하면 이러한 일을 체득하고 있는 인간의 대부분은 노예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아름다운 것, 선한 것, 올바른 것을 모르는 인간에게 이러한 이름이 붙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모든 노력을 경주해서 노예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걸세.”
2) ho kalos 문자 그대로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3) 디오클레스의 아들. 후에 소크라테스의 열렬한 제자가 되었다.
플라톤의 <<에우튀데모스>>의 주인공과는 다른 사람. 플라톤의 에우튀데모스는 병학가 디오뉘소도로스의 형제이다.
4) 성년(nélikia)은 남자인 경우 18세 이상을 말함.
5) 퀴레네 사람. 기원전 460년경에 태어남. 뛰어난 수학자. 플라톤 및 테아이테토스의 스승.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147d~148b) 참조
6) 소크라테스 시대의 시인 Rhapsōdoi에 관한 비평임에 틀림없다.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여기 지혜를 위해 책을 수집하는 에우튀데모스는 플라톤의 대화편 파이드로스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문자를 발명하여 그 사용을 종용하는 테우트에게 왕 타무스는 말한다.
“그러니 당신이 발명한 것은 기억의 묘약이 아니라 상기의 묘약이지요. 그대가 그대의 제자들에게 주는 것은 지혜의 겉모양이지 진상이 아니라오. 왜냐하면 <그들은 그대 덕분에 가르침을 받는 일 없이 많은 것을 듣게 되고>, 자신들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대부분 그들은 무지하고 상대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그들은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 겉보기에 지혜로운 자인 까닭이오."
이 포스트와 이어지는 다음 포스트에서 에우튀데모스는 소크라테스에게 철저히 논파당하여 의기소침해지고 허탈해 하지만, 결국 그로 인해 쓸데없는 생각을 비워버림으로써 대신 삶에 있어 꼭 알아야 할 실천적인 지식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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