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팁포스가 소크라테스에게 끝까지 따져 물으려고 한 적이 있다. 이것은 그가 소크라테스와 담화 중에서 자신이 캐물음을 당했듯이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심산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동석한 제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배려하는 한편 말의 뜻이 왜곡(歪曲)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무리들과 같은 답변을 하지 않고, 바로 해야 할 바를 행하려고 무엇보다도 노력하는 사람들처럼 답변했던 것이다.31)
아리스팁포스는 그에게 무언가 좋아하는 것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것은 혹시 소크라테스가 음식이라든가 음료라든가 금전이라든가 건강이라든가 힘이라든가 무용이라든가 하는 따위의 한 가지 것을 들어 말하면, 그것이 때로는 해독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무엇인가 달갑지 않은 것 때문에 괴로움을 당할 때에는 이것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한 것32)이라고 믿고 있었으므로 참으로 훌륭한 답변을 했던 것이다.
“자네는 나에게 무언가 열병에 좋은 것이 있음을 알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건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안질(眼疾)에 좋은 것 말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공복(空腹)에 좋은 것 말인가?”
“공복도 아닙니다.”
“자네가 무엇 때문에 좋지도 않은 것을 알고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런 것은 알지도 못하고 또 알려고 생각지도 않는다고 대답하겠네.”
또다시 아리스팁포스가 그에게 무언가 아름다운[美]33)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많이 알고 있네.”
“그러면 그 좋아하는 정도가 모두 비슷합니까?”
“웬걸 천만에, 어떤 것은 전혀 다르지.”
“그렇다면 어째서 미(美)와 비슷하지 않은 것이 미(美)일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이렇다네. 달리는 일에 있어서 미(美)일 수 있는 인간과 이것과는 다른 씨름에 있어서 미(美)일 수 있는 인간은 서로 다르네. 그리고 힘차게 내밀어 방비함으로써 미(美)일 수 있는 방패(方牌)는 강하게 재빨리 내던짐으로써 미(美)일 수 있는 창과 전혀 다르다는 것일세.”
“그것은 아까 제가 무언가 좋은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의 답변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답변이군요.”
“그러면 자네는 선과 미는 각각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자네는 동일한 것에 있어서는 일체의 것이 아름답고 선하다는 것을 모르는가? 이제 알 만한가? 첫째로 미덕은 어느 것에 있어서는 선이고, 어느 것에 있어서는 미라는 것이 아닐세. 다음에 인간은 동일한 점에서 동일한 사항에 관해서는 아름답고 선하다고 불리어진다네. 인간의 신체도 동일한 것에 있어서는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며,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도 모두 동일한 것에 있어서는,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점에 있어서는 아름답고 선하다고 생각되는 것일세.“
“그렇다면 똥통도 미입니까?”
“그렇고 말고, 그리고 황금 방패조차 추(醜)하다고 말할 수 있네.
그것은 각기 용도에 따라서 한편으로는 훌륭하게 만들어져 있고, 한편으로는 형편없이 만들어져 있다면 말일세.”
“그렇다면 동일한 물건이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는 말씀인가요?”“암 그렇고말고. 그리고 모두 선하기도 하고 또한 악하기도 한 것일세. 왜냐하면 때로는 공복에는 좋은 것이 열병에는 나쁘고, 열병에는 좋은 것이 공복에는 나쁘기 때문이네. 또 가끔 경주에는 아름다운 것이 씨름에는 추한 경우도 있다네. 그 까닭은 모든 만물이 그 목적을 훌륭히 이룬다면 아름답고 선한 것이지만 서투르게 되어 있으면 추하고 악하기 때문이네.”
그리고 또 집에 관해서도 똑같은 집도 경우에 따라서 아름다운 집이며, 동시에 유용한 집이라는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집은 어떠한 모양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기억이 난다. 그의 말을 음미(吟味)해보면 다음과 같다.
“집을 쓸모 있게 지으려고 생각하는 자는 가장 기분 좋게 살 수 있고 가장 편리하도록 연구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승인되었을 때, 그는 또 말했다.
“여름엔 시원한 것이 기분 좋고 겨울엔 따뜻한 것이 기분 좋지 않겠는가?”
이에도 일동이 찬성했을 때, 그는 또 말했다.
“그런데 남향으로 지은 집은 겨울엔 햇볕이 대청 안까지 비치고, 여름에는 우리의 머리 위와 지붕 위를 지남으로써 그늘지게 해야 하네. 그러니까 만일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남쪽을 높게 지어 겨울 햇살이 가로막히지 않도록 하고, 북쪽을 낮게 하여 찬바람이 안 들어오도록 지을 필요가 있을 걸세. 요약해서 말하면 모든 계절을 통해서 늘 살기 좋은 안락한 장소가 될 수 있고, 자기의 재산을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집이 아마도 가장 살기 좋고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집일 것이네. 벽화라든가 모르타르 장식 따위는 기분 좋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분을 잡치게 하는 경우가 많을 걸세.”
또 신전(神殿)과 제단(祭壇)으로 가장 적당한 장소는 조망(眺望)이 좋고 인가에서 떨어진 장소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것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릴 때도 기분이 좋을 뿐 아니라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찾아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31)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답변의 특질이며 궤변적 결론으로 유도하려고 하는 소피스트들의 문답법과는 대립한다.
32)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선(Agathon)’의 개념이 나타난다. 소크라테스의 선의 개념은 절대적인 선이 아니라 개개의 사물에 대해서만 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33) 여기서의 미(美)는 한자(漢子)의 양(良)으로 나타낼 수 있다.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 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위와 같은 부분이 실제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작품 속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러셀 같은 학자는 현명한 이에 대한 어리석은 자의 보고는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지만 이 작품 소크라테스 회상 전체를 고찰할 때 위 부분과 같은 내용이 거짓이거나 실제와 달리 왜곡된 기록이라고 볼 이유는 없다.
위에서 소크라테스는 선과 미는 다른 것이 아니며 무엇이든 각각의 기능에 충실하여 용도에 잘 부합한다면 좋은 것(善)인 동시에 아름다운 것(美)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 사람들이 흔히 아름다움이라고 말하는 사물이나 작품의 예술적인 면은 철저히 도외시하고 있다.
그럼 플라톤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그와는 매우 다른 위와 같은 생각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할까?
내가 볼 때 크세노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철학과 관련하여서는 실용주의적인 생각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최상의 그것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자제력, 信心, 知力, 호의, 인내심 등)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복잡한 다른 사상에 기대거나 그런 걸 도입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즉, 한 마디로 그는 최선의 생활을 위한 최단 코스를 살았다.
반면에 플라톤은 (아마도 당연히) 소크라테스처럼 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세계와 우주, 그리고 인간을 탐구하는 소위 철학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동시대 함께 살다 간 이웃들에게 훌륭한 삶의 표본을 자신의 생활로써 직접 보여주었다면 플라톤은 동시대와 후대에 글로 쓰인 작품을 남겼다. 소크라테스의 생활은 위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고상한 삶을 향한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플라톤의 작품은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여유를 준다.
단 前者는 경계해야 할 요소가 없지만, 後者는 그런 요소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플라톤도 말했듯이 우리가 일생 동안 훌륭하게 산 대가로 죽은 뒤 도달하게 되는 행복의 섬에, 지금 이미 와 있다는 심정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즉, 플라톤을 읽으며 즐겁고 고양된 기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철학의 목표인 참된 행복이라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잊고 있는 게으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각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크세노폰이 전해주는 그대로이며, 현대에서는 그 외 붓다나 공자, 예수와 같은 다른 성인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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