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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회상 15

 또한 그는 공예 솜씨가 좋아 이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눔으로써 이들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언젠가 소크라테스가 화공(畫工)인 팔라시오스35)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말했다.

팔라시오스, 그림이란 것은 눈으로 본 것을 베끼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자네들은 인체의 들쭉날쭉한 명암(明暗), 단단함과 부드러움, 거치름과 매끈함, 젊음과 늙음을 화구(畫具)로써 베끼고 이를 모방하고 있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자 원하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일체의 아름다움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자네들은 많은 사람 중에서 각자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모아들임으로써 그 신체 전체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자네들은 사람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감미(甘味), 우아함, 매력, 사랑의 극치인 영혼의 성질을 모방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모방할 수 없는 것인가?”

하지만, 소크라테스 선생님, 모습도 없고 색도 없으며, 조금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무것도 없고 더구나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모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이란 어떤 사람에게는 부드러운 눈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무서운 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눈에서만큼은 모방할 수 있지 않은가?”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자네는 친구에게 좋은 일이 있었을 경우, 또는 나쁜 일이 있었을 경우에 친구를 생각하는 자와 생각지 않는 자는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한 일에는 밝은 표정이 되고 흉(凶)한 일에는 어두운 표정이 되니까요.”

그렇다면 이것도 또 그대로 베낄 수 있지 않겠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고귀함과 자유, 미천함과 비굴함, 사려와 분별, 오만과 무례도 역시 표정에 의해서, 가령 인간이 정지하고 있든 움직이고 있든 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역시 모방할 수 있지 않은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아름답고 고상하며 사랑스러운 성격이 나타나 있는 인간과, 추하고 비열하며 싫증이 나는 성격을 풍기는 인간과 어느 편이 보기에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언젠가 또 조각가인 클레이톤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와 대화하면서 말했다.

클레이톤, 자네가 만드는 주자(走者), 장사, 권투 선수, 레슬링 선수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봐서 알고 있네. 그런데 자네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매혹하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어떻게 자네의 조각에 불어넣어 주고 있나?”

클레이톤이 당혹해하며 즉시 대답을 못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말했다.

작품을 살아있는 자의 모습과 꼭 닮게 함으로써 자네의 조각을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이 보이도록 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세를 어떻게 취하느냐에 따라 신체의 여러 부분이 끌어 내려지거나 달아 올려지거나, 압축되거나 늘어나거나, 팽팽하거나 늘어진 것을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각 부분을 훨씬 실물과 닮고 훨씬 진실한 것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인가?”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 육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정을 모방한다면 보는 사람에게 어떤 환희를 느끼게 할 수 있지 않겠나?”

그야 환희를 느끼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싸우고 있는 자의 무서운 눈을 묘사해야 하고, 승리한 자의 의기양양한 얼굴도 모방해야 하지 않겠는가?”

매우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조각가는 영혼의 변화를 외형에 나타내도록 해야 할 것이네.”

 

 

소크라테스가 갑옷의 턱받이를 만드는 피스티아스를 방문했을 때, 그가 훌륭하게 만들어진 턱받이 몇 개를 내보이자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피스티아스, 실로 턱받이로 인간의 가장 방어해야 할 부분을 가리고 게다가 손을 놀리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발명이군. 하지만 피스티아스, 자네가 만드는 턱받이는 다른 사람이 만든 것보다 튼튼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 것보다 비용이 더 들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자네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싼 값을 매기는지 내게 들려주게나.”

소크라테스 선생님, 그 까닭은 제가 다른 사람보다도 균형이 잡힌 것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자네가 균형이 잡혀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치수에 의해선가, 무게에 의해선가? 어떤 이유로 높은 가격을 요구하는 건가? 만약 자네가 각각의 신체에 맞게 만든다면 자네는 결코 모두 동일한 치수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네.”

물론 저는 몸에 맞도록 만듭니다. 그렇지 않으면 턱받이는 아무 쓸모가 없겠지요.”

하지만 인간의 몸이란 어떤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고 어떤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지 않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고말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몸에 맞는 턱받이를 알맞게 만드는가?”

신체에 알맞은 것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균형이 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잘 알았네. 자네가 말하는 균형이 잡혀 있다고 하는 것은 균형이라는 어휘 그 자체의 뜻이 아니라 사용자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걸세. 이는 곧 자네가 누군가의 몸에 방패가 잘 맞기만 하면 균형이 잡힌 방패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네의 말투에 따르면 짧은 옷이나 그 밖의 어떤 것이라도 모두 똑같이 말할 수 있네. 게다가 잘 맞는다고 하는 것에는 모름지기 한 가지 적잖은 이익이 있네.”

그걸 알고 계시면 가르쳐 주십시오, 소크라테스 선생님.”

잘 맞는 것은 맞지 않는 것보다 같은 중량일지라도 신체에 매달리는 무게가 적다네. 왜냐하면 몸에 맞지 않는 것은 전부 어깨에 축 매달리거나 신체의 어떤 일부를 몹시 압박하거나 하여 활동하기에 나쁘고 불편하게 되네. 그러나 몸에 맞는 것은 그 무게를 일부는 쇄골(鎖骨)과 견갑골(肩胛骨), 일부는 어깨에, 일부는 가슴에, 일부는 등에, 그리고 일부는 배에 분담시켜 마치 짐이라기보다는 부속물처럼 되어버리기 때문일세.”

제가 스스로 만든 것에 높은 가치가 있노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당신께서 대변해 주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고객 가운데 여러 가지 장식을 하거나 황금을 입힌 턱받이를 사고자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 그러한 것으로 인해서 몸에 맞지 않는 것을 산다고 하면, 황금을 입힌 장식용으로밖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추한 것을 사는 결과밖엔 생각되지 않네. 그런데 신체란 항상 일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세. 어떤 때는 굽히고, 어떤 때는 똑바른 자세가 되네. 그러니 꼭 끼는 턱받이가 어찌 몸에 맞을 수 있겠는가?”

결코 맞지 않지요.”

자네가 잘 맞는다고 하는 것은 꼭 껴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사용할 때에 아무런 고통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께서 제 뜻을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아니 전적으로 당신의 설명 그대로입니다.“

 

35) 팔라시오스는 에페소스 출신. 에페소스의 에우에노르의 제자로 아테네에서 살았다. 그가 대가로서 유명해진 것은 소크라테스의 사후(死後)였다. 그가 그린 영웅과 신들은 후일의 화가들의 표본이 되었다.

 

- 소크라테스 회상 크세노폰/최 혁순 역 중에서 -

 

이승과저승 생각 : 소크라테스는 예술가에게는 인간의 혼에 주목할 것을 요구하고, 匠人에게는 일에 대해 몸으로 익혀 알고 있는 것을, 조리 있는 분석을 통해, 마치 덮여 있는 덮개를 열어주듯, 하나하나 뚜렷이 그 의미를 알도록 하고 있다.

<잘 맞는다고 하는 것은 꼭 껴서 답답한 것이 아니라 사용할 때에 아무런 고통이 없는 것>이란 말은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이를테면 순수하게 정신의 영역에서도 -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에 있어 무엇이든, 함에 아무런 고통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그윽한 경지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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