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말하는 ‘그런 듯이 보이는 것’과 ‘실제로 그런 것’에 대하여 그의 사상에 구애받지 말고 현시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해 보자.
예를 들어 TV 드라마에서 의사가 나온다. 그는 실제로는 의사가 아니고 배우이다. 그는 흉내 내는 사람으로서 의사처럼 입고 의사처럼 말하고 의사처럼 행동한다. 그는 의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의사는 아닌데 그것은 그에게는 의학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가 진찰실이나 수술실에서 의사처럼 행동할 때 드라마를 보고 있던 진짜 의사 한 사람이 때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실제 의사라면 저 장면에서 저렇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러나 많은 시청자들은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배우의 연기를 판단할 만한 의학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배우와 시청자 모두는 연출된 것이 허구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긴다.
요즘 생활환경 중 예전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여러 가지겠지만, 그중 하나는 연출된 장면을 볼 기회가 매우 많아졌다는 것이다.
연출된 장면이란 보는 사람을 의식해 그런 듯이 보이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말인데, 영화, TV, 각종 동영상, 사진, CF, 화보 등의 내용물을 말한다. 내가 어릴 때의 영화나 TV 등 영상물을 떠올려보면, 지금과 비교하여 양적으로는 매우 적고, 질적으로는 촌스러웠다.
지금은 생활 형편이 나아지고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매우 생생한 장면들을 여기저기서 현실감 있게 보게 되었지만.....
나로서는 그런 것들의 범람이 사회의 미래와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런 문제 제기가 어리석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단도직입적으로 TV 드라마든 동영상이든 CF든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그 안에서 뭔가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보이는 장면이 연출되어 나온다고 하자. 그 내용은 연인들의 사랑이라도 좋고, 가족들의 오붓한 식사 때라도 좋고, 친구 간에 우정 어린 대화가 오고 가는 때라도 좋다. 그러한 장면들이 잘 만들어졌다면 보는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테지만, 내가 아는 한 그 장면들은 실제로는 출연자들이 제작 중 연출자의 지시를 듣고 NG를 되풀이하며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을 소모한 끝에 완성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위에서 말한 ‘보는 사람을 의식해 그런 듯이 보이게끔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제작자나 연출자, 대본 작성자, 출연진 등이 ‘행복’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알고서 만들었다면 그 영상들은 그런 듯이 보이는 것으로써 비록 모방품이긴 하지만 참된 것을 모방한 것이 되고, 제작 과정에서 검토와 수정을 거치면서 순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 된다.
하지만 모르고 만들었다면 그들은 단지 그러려니 생각되는 외형적 이미지만을 가지고, 그 이미지에 충실하게 검토와 수정을 거치며 참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많은 사람에게 그런 듯이 보이는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영상물들이 좋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일종의 동기 부여를 함으로써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나쁘게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사람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불필요하게 들뜨게끔 만든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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