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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물 흐르듯이 살아남기

1. 생활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거나, 있으면 없을 때보다 조금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없어도 상관없는 어떤 물건이 때때로 좋게, 또는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에 대해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음식과 옷, 주거지, 의약품과 같은 것들은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 외 다른 것들은 각자의 삶의 방침에 따라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사물이 누군가에게 실제 필요한 정도를 넘어 더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부각될 때, 그런 상황을 만들어내는 원인으로서의 욕구는 해당 사물에 의탁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고 충족되는 종류일 것이며, 그것은 오로지 생명을 유지한다는 1차적, 본능적 삶의 욕구와는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구석기 시대라면, 예컨대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면 생명 유지와는 무관한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테고, 기타 수렵이나 채집에 필요한 도구와 기본적인 생활상의 도구들, , 주거지 등 많은 것들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을 것이다. 또 무늬가 없는 토기와 무늬가 있는 토기는 똑같이 생활에 필요한 도구였겠지만, 아마도 그 두 가지를 만들게 된 동기로서의 각각의 욕구는 아주 똑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사정이 크게 바뀌어 단순한 삶(생명 유지)과는 무관하게 대부분 특별한 욕구의 충족과 표현을 위한 물건들과 행위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 와중에 적지 않은 경우에 그것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는 큰 불편이 없는 물건이 나에게 없다고 해서 종종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또는 지금보다 약간 더 편리함을 구현할 뿐인 발명품에 정도 이상으로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종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그리고 인류 전체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내 능력으로 인류 전체가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는 논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필수적이지는 않은 外物에 의존하여 그때그때 만족하는 생활 외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지거나 사라져 간다는 점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버금가는 대가는 물론 그런 욕구 충족을 위한 개인의 노력과 분투, 그에 따르는 희망과 절망, 성취감과 괴로움 등을 겪는 일이 될 것이다.

 

2.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또는 이러한 사회나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과 같은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데, 여기서 살아남는다는 어휘의 뜻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생각건대 분명 생물학적으로 생명을 유지하려면하는 뜻만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그곳의 主流에 포함되어 살아가려면이나 그곳에서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범주에 들어 살아가려면이라는 뜻이 들어 있을까? 아니면 나 자신이 그곳에서 지속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생활의 조건을 획득하여 살아가려면이라는 의미일까. 셋 모두 일리가 있지만 그중 마지막 것은 특히 각자 자신의 고려와 결단에 좌우되는 주관적 의미가 크면서 요즘 같이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에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나 자신이 견뎌낼 수 있는 생활의 조건이라는 것이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그러면서도 그런 생활로 인해 주위의 비난이나 지탄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간혹 경우에 따라 비웃음은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는 점 때문이다.

 

3. ‘물 흐르듯이 살아간다는 말이나 바람처럼 구름처럼 걸림 없이 산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물은 조건에 이의 없이 따른다. 낮은 곳으로 흐르고, 걸리면 돌아가고, 더우면 올라가고, 차면 응결하는 데, 이런 점을 사람의 생활에 견주어 보자.

더우면 옷을 벗고 추우면 옷을 입는다. 밤이면 잠들고 해가 뜨면 움직여 일을 한다.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쉰다. 이런 것은 확실히 자연의 에 부합하는 것이지만 사람의 는 그것만으로 한정할 수는 없으니 별도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고로 위와 같은 자연의 에 자본주의 욕망의 <물 흐르듯이> 추가한다면 그 큰 전제는 있으면 먹고(사고), 없으면 안 먹는다(안 산다).”가 될 것이다. 그럼 혹자가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꼭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느냐고. 없어도 빚을 내어 사야할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그렇다면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삶의 절반 정도는 포기해야 하고, 그 아래 또 다른 준칙이 들어서야 하는데, 그것은 법이 허용하면 하고, 법에 어긋나면 하지 않는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여기서 법은 실정법과 자기 자신 내면의 법을 모두 아우른다.

 

지금과 같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하는 말을 위 논의에 비추어 조금 바꾸어 말한다면, “이 시대에 내가 自足하면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일 것이다.

외부 조건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면 내가 변하는 것이 물 흐르는 듯한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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